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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밤

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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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는 한

내 영혼 속에 완전히 꺼지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게도 진심으로 그렇게도 나지막이

언젠가 신이 당신에게 다른 사랑을 준다 해도…

러시아의 대문호 푸슈킨의 시에 곡을 붙인 러시아 로망스의 노랫말이다. 떠나간 사랑에 대한 한없는 기다림을 절절하게 담아낸 간절한 연가(戀歌)로, 러시아인의 사랑이 가슴 깊숙이 아픔으로 밀려온다. 흔히 러시아 음악은 우리 정서와 비슷한 한(恨)을 담고 있다고 한다. 모진 자연환경을 감내하며 대륙을 일구어온 그들의 인내는 음악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글린카로부터 시작해 러시아 5인조,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위대한 작곡가 그룹이 세계 음악계의 한 축을 형성하게 했다.

러시아의 예술가곡을 ‘로망스’라고 한다. 작품에 기본적으로 낭만과 애환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로망스의 가사는 대부분 이루지 못한 사랑과 연인과의 슬픈 이별을 읊는다. 그리고 그 사랑은 베토벤의 가곡 ‘당신을 사랑해’와 같은 현재 진행형도 아니고 희망적인 미래형도 아닌, 빛바랜 과거형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서로를 축복하며 찬연히 빛난다. 이러한 면은 기악곡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잘 드러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서, 심지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구현했다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에서조차 러시아의 서정성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찍이 푸슈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칭송한 ‘성스러운 돌의 도시’다. 러시아의 북쪽, 발틱해와 인접한 핀란드 만에 위치한, 구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광대한 러시아, 그중에서도 유럽의 문화와 양식에 익숙한 도시다.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스웨덴의 침입을 막고자 1700년부터 요새를 건설하면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전쟁에서 승리한 표트르 대제는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200년 동안 러시아 정치,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영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2500만명 가운데 1000만명 이상이 희생된 곳이 바로 러시아다. 그 중심에 독일군에게 900일간 포위되어 100만명의 목숨과 맞바꾸며 사수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다. 도시 입구에 조성된 전몰용사 기념비 위로 솟구친 오벨리스크는 당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2006년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진정한 이름은 ‘문화의 도시’, 그중에서도 ‘음악의 도시’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하얀 자작나무 숲이 생각납니다.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이 광활한 숲, 하늘을 찌를 듯이 자란 나무들, 여기에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자작나무 잎은 왁자지껄 소리를 내고 소란스레 웃는 것만 같았습니다. 펄럭이는 자작나무의 잎사귀 사이에 파랗게 질려 있는 하늘과 숲의 광활함과 평안함이 이루는 이국적 분위기에 보는 이는 숨이 막혀버릴 지경입니다.”

언젠가 러시아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첫 장면을 배경으로 감명 깊게 읽은 단상이다. 자작나무는 옆으로 엷게 벗겨진 흰색 나무껍질이 애처로운 러시아의 국목(國木)이다.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목재는 가구용으로, 껍질과 수액은 약재로 쓰여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러시아인의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효자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천마총의 ‘천마도’와 팔만대장경에 자작나무가 쓰이는 등 귀히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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