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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나

  • 가미야 다케시(神谷毅) / 일러스트·박진영

한국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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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나
만으로 여섯 살이 된 딸은 잠꼬대를 한국말로 한다. 나는 가족을 이끌고 2005년 4월 서울에 부임했다. 한국을 피부로 느끼고 싶어해서 나와 아내는 딸을 일본인학교 부속유치원이 아닌, 동네에 있는 한국 유치원에 다니도록 했다. 이 시도는 요즘 들어 부쩍 딸의 일본어가 이상해지고 있으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한반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언제쯤이었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역사선생님인 덕분에 자연히 일본과 주변 국가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가족여행으로 오사카 지방의 나라현에 있는 절들을 돌아다녔는데, 불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 눈에 조금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본 불상과 아버지가 보여주신 사진 속의 한국 불상이 너무나 비슷하게 생겨서 충격을 받았다. 그때의 일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역사를 ‘로망’이라고 느끼는 사람과 엄연한 사실의 ‘연쇄’라고 느끼는 사람 두 부류가 있다. 나는 전형적인 전자이다. 나에게 한반도는 ‘고대(古代)를 품고 있는 도쿄(東京)’와도 같았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그런 식의 순진함만을 갖고 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주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나 할까. 재일교포 지인들을 통해 차별문제나 근대·현대의 역사 문제 등에 대해 자문을 구한 적도 있고, 내 눈으로 직접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됐다. 신입기자 시절 어느 선배기자로부터 “저널리스트는 시인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의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기쁨이나 괴로움, 분노나 거짓말을 로망이나 감상으로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가냘픈 나에게는 큰 충고였다.

10년이 지났다. 다행히 희망이 이루어져 서울특파원으로 한반도 땅을 밟았다. 하지만 2005년 봄은 한일관계가 다케시마(한국명 독도)나 역사교과서 문제 등으로 다시 악화되던 시기였다.

부임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딸의 유치원에서 ‘민족 운동회’가 열렸다. 딸이 “선생님이 내일 입고 오라고 이것을 주셨어요”라며 보여준 것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크게 프린트된 티셔츠였다. 딸은 그 티셔츠를 입고 운동회에 참가해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맞춰 친구들과 춤을 추었다. 딸은 노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론 이해할 수 있었더라도 양국의 영토분쟁을 깊게 생각할 수준까지는 안 됐겠지만) 즐거운 듯 보였다.

그런 딸의 모습과 함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유치원 선생님들이 “자, 더 활기차게 솜씨를 발휘해 춤추자!”라고 하면서 마치 스포츠라도 하는 것처럼 춤과 노래 지도를 하던 장면이다. 심각한 한일 갈등이 이런 무덤덤한 생활의 한 장면으로 이미 흡수돼 있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여기서 나는 영유권이나 역사인식 문제를 논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생활에 기인하고 있는 한국과, 많은 국민이 섬(다케시마)의 위치조차 모르는 일본과의 인식 차이를 느끼면서 양국민이 논의하는 기반이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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