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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생각해보는 훈민정음 미스터리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한글날에 생각해보는 훈민정음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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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생각해보는 훈민정음 미스터리

훈민정음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 ‘뿌리 깊은 나무’와 ‘훈민정음 암살사건’.

쉬는 날이 아니니 자꾸 잊게 되는 한글날. 한글날은 2006년부터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과 함께 국경일로 지정됐지만 ‘빨간 날’은 아니다. 한글날이 10월9일인 것은 “정통 11년(1446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한다. 즉 상순의 끝날인 9월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10월9일로 정해졌다.

한편 북한에서는 ‘세종 25년인 1444년 1월(음력 1443년 12월)에 창제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1월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창제일을 기념하든 반포일을 기념하든 훈민정음이 남북한에 모두 귀중한 문화유산임은 분명하다.

한글이 모방한 옛 글자는 무엇인가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것은 1940년대. 경북 안동의 이한걸 가(家)에 전해지던 것을 간송 전형필이 구입해 6·25전쟁이 나자 오동나무 상자에 이 책만 넣어 피난을 갔고 밤에는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금은 국보 70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으로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다는 한글 창제의 원리가 밝혀지고 세종 친제설이 굳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모든 궁금증이 속시원하게 풀린 것은 아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28자는 옛 전자(古篆)를 본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옛 전자가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훈민정음 반포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추측을 낳았다. 성종 때는 옛 전자를 산스크리트 문자로 보았고, 18세기 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라고 했으며, 최근엔 ‘단군세기’에 나오는 정음 38자, 즉 가림토 문자가 전자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고대 근동지역 언어와 역사 전문가인 조철수 박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훈민정음 음운체계가 유대교 신비주의 기본서에 나오는 히브리어 음운체계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즉 한글이 히브리 문자에서 왔다는 것이다(‘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새겨진 한국신화의 비밀’, 김영사, 2003).

한글 창제의 원리뿐 아니라 국보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그 자체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난해 국보 제1호를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0순위로 거론된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이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공감했으나 최규일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최근 학계에서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 경위와 원본 유출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마당에, 진본 여부가 분명치 않은 책을 국보 1호로 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중앙일보 칼럼, 2006.6.20).

이러한 문제 제기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이미 2001년 경상대 국문과 려증동 명예교수는 ‘배달글자’(한국학술정보, 2001)에서 애초에 ‘훈민정음 해례본’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붓글씨로 썼을 뿐 중국을 의식해서 간행하지 못했고 다만 책 내용이 ‘세종실록’에 실려 전해졌는데,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국대 오구라 신페이 교수가 ‘세종실록’의 훈민정음을 베낀 것과 1940년대 규장각에서 발견된 ‘붓글씨로 쓴 훈민정음 해례’라는 책을 하나로 편집해 간송 전형필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역사는 50여 년밖에 안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2005년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힘을 잃는다.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는 앞의 2장이 떨어진 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뒷면에 빽빽하게 적힌 한글을 조사했다. 그 결과 중국 명나라 때 왕실 자제 교육서인 ‘십구사략통고’를 한글로 풀어쓴 ‘십구사략언해’임을 밝혀냈고, 한글 문법 등으로 보아 18세기 전후에 씌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훈민정음 해례본의 뒷면 글 내용과 그에 관련된 몇 문제’, 2005). 그러므로 적어도 18세기 이전부터 이 책이 존재했으며 누군가 책 뒷면에 글을 베껴 쓴 직후 앞의 2장이 떨어져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문이 발표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이 나왔다. 부산 동래여중 박영진 교사가 한글학회 기관지 ‘한글새소식’ 2005년 7월호에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안동 이씨 가(家)의 것이 아니라 같은 안동 지역 광산 김씨 종택인 긍구당 소장본이었다”고 쓴 것. 김씨 집안 사위이던 이용준씨가 허락 없이 가져가 간송에게 넘겼다는 주장이다. 박씨는 긍구당 종손 김대중씨의 증언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원리부터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 경위까지 아직도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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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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