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스카치위스키 ‘랜슬럿’ 이색 마케팅

“한국인 입맛대로 주문 생산한 위스키 맛보세요”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7-01-15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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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치위스키 ‘랜슬럿’ 이색 마케팅
    한국은 세계 위스키업계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한국은 연간 위스키 소비량이 태국에 이어 아시아 2위이고, 특히 17년산 이상의 슈퍼 프리미엄급 선호도가 높다. 위스키 본고장인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에서 12년산 이하의 저연산(低年産) 제품 소비가 절대적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에서는 위스키가 소주나 맥주와 구별되는 ‘고급술’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연산 위스키 선호도가 높은 건 애주가들이 그 향과 맛의 차이를 알기 때문이라기보다 한국 특유의 위스키 문화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지금껏 위스키는 ‘접대용’ 술자리의 꽃이자 ‘폭탄주’의 뇌관으로 대접받아왔다. 하이트맥주 계열사로 ‘랜슬럿’ ‘커티샥’ 등을 수입판매하는 하이스코트에 따르면 ‘랜슬럿’ 매출의 90%는 룸살롱과 바(Bar)에서 일어난다. 이런 사정은 다른 위스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을 위스키 소비 강국으로 키운 건 8할이 룸살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년 전부터 위스키 시장 정체

    덕분에 위스키를 생산하거나 수입 판매하는 업체는 굳이 소비자를 공략하지 않고도 꾸준한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저 업소 관계자를 잘 구슬리기만 하면 됐다. 하이스코트 임헌봉 상무는 “그동안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업소에 집중되어온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신제품이 나오면 소비자를 대상으로 홍보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동안 양주업계는 대외 홍보에 소극적이었다. 업소를 상대로 한 영업경쟁은 치열했으나 소비자를 향한 마케팅엔 열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위스키시장의 이런 관행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 2∼3년간 위스키시장의 성장이 주춤하고 있는 것.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데다, 2004년부터 기업의 접대비가 건당 50만원으로 제한되고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것이 결정타였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업체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치고나온 곳이 하이스코트다. 하이스코트는 위스키가 접대용 술자리에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위스키를 즐기는 애호가들에게 소비되기를 기대하며 2006년 11월 이후 소비자 중심 마케팅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랜슬럿 매출에서 룸살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바에서의 소비량이나 선물세트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소비자의 적극적인 선택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는 설명이다.

    하이스코트는 술자리가 많은 11월과 12월, 서울 대구 부산 전주에서 음주운전 방지 및 안전 귀가를 강조하는 ‘안심귀가 캠페인’을 벌였다. 랜슬럿을 마신 이들에게 무료로 대리운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술 약속이 많은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엔 도심에서 지하철 티켓을 무료로 증정하는 행사도 개최했다. 스코틀랜드 최고의 마스터 블렌더로 손꼽히는 존 람지(John Ramsay·왼쪽 사진)씨와 함께한 마스터클래스와 20, 30대 미혼 남녀를 초대한 ‘싱글 파티’도 열었다.

    특히 30,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대거 참여한 마스터클래스는 위스키 생산공정에서 위스키를 제대로 마시는 법까지 오감으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참가자의 호응을 얻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위스키는 주로 어떤 오크통에서 숙성되나요?”

    “스페인산 오크통과 미국산 오크통 중 어디서 나온 위스키가 더 비쌉니까?”

    2006년 11월10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 위스키 애호가 100여 명을 초청해 마련한 ‘랜슬럿 마스터클래스’는 후반부로 갈수록 열기가 뜨거워졌다. 세계적인 스카치위스키 제조사 에드링턴 그룹의 마스터 블렌더 존 람지씨를 향해 갖가지 질문이 쏟아졌다.

    스카치위스키 ‘랜슬럿’ 이색 마케팅

    지난 11월에 열린 ‘랜슬럿 마스터 클래스’.

    이날 람지씨는 참석자들에게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 증류액을 맛보게 했다. 랜슬럿, 매캘란, 하이랜드 파크, 페이머스 그라우스 등 이름난 위스키 증류액의 각기 다른 색과 향, 그리고 맛을 경험하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람지씨는 ‘위스키의 맛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위스키 증류액이 위스키로 완성되기까지의 공정을 찬찬히 설명했다.

    오크통이 맛 결정

    그는 “위스키의 맛은 위스키 원액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에 달려 있다”고 했다. 나무가 미국산인지, 스페인산인지, 잘 재단되어 오랫동안 햇볕에서 말랐는지, 그리고 통 안쪽이 정교하게 그을렸는지에 따라 위스키 맛이 달라진다는 것. 참석자들은 영상자료를 통해 오크통이 만들어지는 공정을 살펴보고, 스페인산 오크통과 미국산 오크통의 향도 비교해보았다. 대부분이 스페인산 오크통 향을 선호했는데, 실제로 스페인산 오크통에서 나온 위스키의 향이 더 강하고, 색깔이 진하며 가격도 비싸다고 한다.

    람지씨의 위스키 블렌딩 시연은 작품을 완성해가는 예술가를 연상시켰다. 그가 눈을 가린 채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만으로 위스키 연산을 정확히 구분해내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인은 위스키 특유의 향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그 맛과 향을 음미하기 좋아하는 반면, 한국인은 진한 향보다 부드러운 목 넘김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람지씨가 한국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는 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블렌딩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위스키가 랜슬럿이다. 그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블렌딩한 랜슬럿은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위스키로, 본고장에서 제조돼 세계 여러 나라로 동시에 수출되는 인터내셔널 브랜드나 본고장에서 원액을 들여와 국내에서 블렌딩하는 로컬 브랜드와 구별된다. 쉽게 말해 한국 시장만을 겨냥해 주문 생산한 스카치위스키다. 그는 “랜슬럿은 알맞게 숙성되어 달콤한 맛이 일품이며 다른 스모키 스타일 위스키보다 훨씬 부드럽다”고 자부한다.

    “스카치위스키 12년산은 미네랄워터나 소다를 섞어 마시면 천천히 향을 음미할 수 있고 목 넘김도 부드러워요. 17년산도 마찬가지인데 물을 적당히 넣어 알코올 도수를 25도 정도로 유지하는 게 좋아요. 21년산이나 30년산은 물을 아주 조금 섞어 마시거나 아무것도 섞지 않은 위스키를 입안에 넣고 혀를 굴리면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어요.”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옥희씨는 “위스키 한 병이 만들어지기까지 다년간 축적된 경험과 고도의 감각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위스키 문화를 바꾼다

    하이스코트는 소비자 중심 마케팅이 시작단계라 당장 그 효과를 내긴 어렵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소비자들과 접촉해 시장 분위기, 제품에 대한 호감도를 체감한 것 자체가 고무적이며, 그동안 판매에만 주력하고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드는 데 소홀했다는 사회적 부채감도 더는 기회가 됐다고 자체 평가한다. 임헌봉 상무의 말이다.

    “‘랜슬럿 마스터클래스’에서 위스키를 제대로 알고 마시자는 취지로 제공한 위스키에 관한 상식은 술자리뿐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대화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20, 30대 미혼자들을 초대한 ‘싱글 파티’는 잠재적인 위스키 소비자들이 즐기는 위스키 문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기초를 다진 셈이고요. 위스키도 와인 못지않게 향도 깊고, 맛도 다양하다는 걸 알리고,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드는 소비자 중심 마케팅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업계는 2007년 국내 위스키시장이 2006년 대비 1%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하이스코트는 소비자 중심 마케팅 열기를 기회로 삼아 4∼5%인 시장 점유율을 7%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맥주 주세요’ 하던 소비자들이 ‘하이트맥주 주세요’ 하는 풍토가 조성됐듯, 자신이 좋아하는 맛과 향의 위스키를 선택할 수 있는 음주 문화를 만들어야죠. ‘나는 랜슬럿’이라고 말하는 분위기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랜슬럿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하이스코트의 전략이 폭탄주가 점령한 위스키 문화도 개선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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