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프랑스인이 과거사를 대면하는 방식 ‘비시 신드롬’

  • 이용우 서울대 강사·서양사 greve@hanmail.net

    입력2007-01-15 1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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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인이 과거사를 대면하는 방식 ‘비시 신드롬’

    ‘비시 신드롬' 앙리 루소 지음/ 이학수 옮김/휴머니스트/ 664쪽/2만5000원

    우리 사회는 지금 과거사 청산 중이다. 2005년 5월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필두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그리고 지난 8월에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십수개의 정부 산하 위원회가 일제 강점기부터 군부 독재시기에 이르는, 즉 20세기 한국 근현대사 대부분에 걸쳐 반민족행위, 고문, 학살, 의문사 및 여타의 인권유린에 대해 조사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프랑스인은 암울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까

    식민통치, 전쟁과 학살, 독재로 얼룩진 암울했던 우리 과거사에서 가장 오래된 과거이자 종종 다른 과거들의 ‘원죄’ 격으로 간주되는 과거는 단연 일제강점기일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 청산, 더 정확하게는 그 시기의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진상 규명이 과거청산의 대명사가 되고 법 제정 단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에 관해 가장 격렬한 논란이 빚어진 것도 ‘친일’이라는 유령(혹은 잔재)의 뿌리가 여전히 깊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우리와 비슷하게 이웃 나라에 점령당하고 비슷한 시기에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는 과연 암울하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청산했을까. 최근에 번역 출간된 ‘비시 신드롬’은 바로 그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좁은 의미의 과거사 청산, 즉 우리가 철저하고 단호한 과거사 청산의 ‘모범적’ 사례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대독(對獨)협력자 처벌에 국한하고 있는 건 아니다. 훨씬 넓은 의미의 과거사 청산, 아니 과거사 ‘청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과거와의 대면, 즉 해방 후 반세기 동안 프랑스인이 자신의 암울했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기억이 프랑스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 책은 다룬다.

    ‘비시 신드롬’의 저자인 앙리 루소(Henry Rousso)는 현대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파리 제10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가다. 1987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국역본은 1990년 개정판을 번역했다)은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그러면 ‘비시(Vichy)’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광주’가 단순한 지명을 넘어서 1980년 5월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떠올리게 하듯 오늘날 프랑스인에게 비시는 단지 중부의 온천휴양도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일 강점기(1940∼44)라는 ‘암울했던 시절’과 대독 협력이라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다. 1940년 6월 패전에 이은 휴전협정(사실상 항복)에 따라 국토가 반으로 쪼개지고 파리를 포함한 북쪽 절반 지역에는 독일 군당국이, 남쪽 절반 지역에는 비시를 수도로 하는 프랑스인 정부가 각각 들어섰는데 이 ‘비시 정부’는 독일의 괴뢰 정부는 아니었지만 공식적으로 대독협력을 천명하고 그러한 협력을 존재이유로 삼았다.

    자발적 대독협력의 대가

    1972년에 ‘비시 프랑스’를 내놓아 비시 체제에 대한 기존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인 역사가 로버트 팩스턴(Robert Paxton)에 따르면 비시 정부의 대독협력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요구나 압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것이었다. 비시 정부 인사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국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 예단하고 전후(戰後) 독일이 지배할 ‘새로운 유럽 질서’에서 프랑스가 제2의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독협력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비시 정부의 ‘국가적 대독협력’의 대가는 끔찍했다. 7만6000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절멸’수용소로 보내졌고, 6만3000명의 레지스탕스 활동가, 정치범, 인질 등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약 3만명의 민간인이 인질로서, 혹은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유로 총살당했고, 65만명이 독일의 공장들로 징용됐다.

    앙리 루소가 ‘강점기 신드롬’이나 ‘친독 신드롬’이 아니라 ‘비시 신드롬’이라고 저서의 주제명을 정한 것도 상당 정도 팩스턴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독일의 지배나 강점이 아니라 ‘비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무엇보다도 협력의 자발성과 프랑스인들 사이의 내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시 신드롬’은 독일 강점기이자 비시 정부 시기인 1940∼44년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기억하고 해석하고 대면해온 방식을 가리킨다. 루소는 해방 후부터 오늘날까지의 비시 신드롬을 네 시기로 나눴다. 그 첫 시기인 1944∼54년은 ‘미완의 애도’기로,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프랑스군인, 독일군과 비시 정부에 의해 총살된 레지스탕스 대원이나 인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된 유대인,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민간인, 그리고 레지스탕스에 의해 처형된 대독협력자에 이르기까지 어떤 부류의 희생자를 추모해야 할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시기였다.

    다음 시기는 1954∼71년의 ‘억제’기로, 레지스탕스의 기억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기억이 억제된 시기다. 항독운동의 화신을 자임한 드골이 ‘전국민의 일치단결한 레지스탕스’라는 신화를 ‘공식적 기억’으로 뿌리내리게 한 시기였다. 이 신화에 걸맞지 않은 측면들, 이를테면 대독협력의 실제 규모, 비시 정부가 추구한 ‘민족혁명’, 프랑스 자체의 반(反)유대주의 등에 대한 논의는 축소되거나 억제됐다.

    이러한 신화와 공식적 기억은 세 번째 국면인 ‘깨진 거울’ 시기(1971∼74)에 무너졌다. 1968년 5월 정신의 영향, 드골의 정계 은퇴와 사망, ‘슬픔과 연민’이라는 비시 시기에 대한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친독민병대 간부 투비에에 대한 퐁피두 대통령의 사면조치 등이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일그러진 거울을 깨고 강점기에 대한 여러 기억을 폭발적으로 분출시키는 데 일조했다.

    ‘깨진 거울’은 오늘날에 이르는 ‘강박’의 시대(1974∼ )로 이어졌다. 비시 시기에 대한 기억의 폭발과 강박은 한편으로는 유대인 기억의 급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의 비시-대독협력 전력(前歷)에 대한 끊임없는 폭로전으로 표출됐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친일’에 대한 인적, 제도적 청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친일파’라는 용어가 무시무시한 낙인이 될 수 있었다면, 프랑스 사회는 해방 직후에 ‘대독협력’에 대한 대규모의 사법적 청산이 이루어졌음에도 수십년 뒤까지 여전히 ‘콜라보(대독협력자)’나 ‘비시’ 전력의 ‘발견’과 폭로가 정적(政敵)들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다.

    끝나지 않은 비시 신드롬

    앙리 루소는 이렇듯 4단계에 걸쳐 비시에 대한 기억의 변화과정을 살펴본 뒤에 기억을 전달하는 ‘매체’들과 그러한 기억의 수용 및 확산과정을 분석했다. 기억의 매체들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5월8일)로 대표되는 ‘공식적’ 매체, 2차대전기를 다룬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적’ 매체, 그리고 비시 시기를 다룬 역사서라는 ‘학문적’ 매체가 분석대상이 됐다. 이어서 영화의 흥행 성적, 역사서의 판매부수, 여론조사결과 등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수용되고 확산되는지가 분석됐다.

    기실, 비시 신드롬은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 1990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나기는커녕 책 출간 뒤에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비시 경찰 총수 부스케의 재판 직전 피살(1993년 6월), 투비에 재판(1994년 3~4월), 미테랑 대통령의 비시 전력 폭로(1994년 9월), 파퐁 재판(1997~98년) 등 비시 신드롬을 더욱 뜨겁게 달굴 계기들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애도에서 망각으로, 억제에서 폭발과 강박, 그리고 과열로 이어지는 이 기억의 역사는 단 4년간에 불과했던 독일강점기-비시 체제 시기(1940∼44)가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프랑스 사회에서 얼마나 ‘뜨거운 감자’였는지, 그리고 프랑스인들에게 얼마나 깊은 트라우마이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현재 과거사와의 대결이 한창 진행 중인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결코 모범 사례가 아님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지, 반대로 역시나 모범적이었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가 될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닐지를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끝으로, 소소한 실수에서 결정적인 오역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고도 정확한 일독(一讀)을 방해하는 오류들이 개정판에서는 부디 바로잡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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