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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공부를 시작하다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마흔에 공부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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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공부를 시작하다

‘촉처통연’의 경지에 이를 날은 언제일까.왼쪽부터 ‘개념어 사전’ ‘논어-사람의 길을 열다’ ‘장정일의 공부’.

마흔 즈음에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고전 읽기에 재미를 붙였다. 아직 해설서를 봐야 뜻풀이가 되지만 …인대, …호대, …이라, …인저 하는 식으로 구결(口訣) 토를 다는 데 조금 익숙해지니 그럭저럭 글이 입에서 나온다. 지난해 여름 동안 ‘중용’을 읽고 ‘논어’를 잡았는데 어느 날 ‘논어’ 위정편을 읽다가 촉처통연(觸處洞然)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其聞夫子之言에 默識心融하여 觸處洞然하여 自有條理라.

공자의 말씀을 들음에 묵묵히 이해되고 마음에 융통하여 닿는 곳마다 막힘이 없고 환하여 스스로 조리가 있었다.(논어 위정 제2)

촉처통연하여 자유조리한 이가 바로 공자가 그토록 아꼈다는 제자 안회다. 안회는 3000명에 이르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학문과 덕을 고루 갖춰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나오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회가 31세(41세라는 설도 있다)로 요절하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다”며 통곡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흔히 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도 안회를 두고 한 말이다.

안회는 이미 20대에 막힘이 없이 트여 환한, 뭘 해도 이치에 딱 맞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걸 시대의 천재요 성인인 공자가 인정했으니…. 마흔 고개를 넘긴 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촉처통연의 경지가 뭔지 맛이나 보고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논어’에는 범부들이 위안을 삼을 만한 내용도 많다. 다음은 한문 시험에서 빈 칸 채우기 문제로 자주 나와 아주 친숙한 구절이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慾호대 不踰矩라.

무슨 위안이 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공자가 “난 서른에 뜻을 세우고, 마흔엔 불혹했거든” 하고 잘난 척하는 대목 아닌가. 영산대 배병삼 교수의 뜻풀이에 따르면 ‘논어’ 위정편은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라고 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공자 같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웬만한 사람은 마흔에 사리에 어긋나지 않기 어렵고, 쉰에 천명을 알기도 어렵고, 예순에 이르러도 이순(耳順·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됨)하기는 더더욱 어려우니, 다만 그리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이라도 하라는 뜻 아니겠는가. 나이가 찼다고 저절로 ‘종심소욕 불유구’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중용’은 앎을 3단계로 설명한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도를 아는 것을 생지(生知)라 하고, 배운 뒤 비로소 아는 것이 학지(學知), 배워도 알지 못하고 경험을 쌓고 애써서 비로소 아는 것이 곤지(困知)다. 웬만한 해설서들은 ‘타고난 능력에 다름은 있으나 한번 알고 나면 다를 바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하지만, 이 또한 필부들을 위로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생지’는 공자 정도는 돼야 말할 자격이 있고, 웬만해서는 ‘학지’도 언감생심, 나 같은 사람은 ‘곤지’에라도 이르면 다행이기에.

중용은 사람이 성실해서 도를 얻으려면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히 묻고(審問), 조심스럽게 생각하고(愼思), 분명하게 판별하고(明辯), 독실하게 행하는 것(篤行), 이렇게 다섯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범부는 이렇게 배우고자 죽도록 힘을 쏟으면 겨우 ‘곤지’ 쯤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공부하는 시인’이 돌아왔다

시인 장정일이 ‘공부’(랜덤하우스)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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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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