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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음악가 안익태의 은폐된 삶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 이승원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woogong72@empal.com

음악가 안익태의 은폐된 삶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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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안익태의 은폐된 삶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이경분 지음/휴머니스트/268쪽/1만3000원

‘에키타이 안(Ekitai Ahn).’ 우리는 그를 모른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했던 애국가의 작곡가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사람이 서재필이 아니라 미국인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이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그처럼 에키타이 안은 우리에게 몹시 낯선 이름이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안익태와 에키타이 안, 그리고 서재필과 필립 제이슨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이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안익태와 에티카이 안이라는 호명의 심연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가야 했던 조선 지식인의 고뇌와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까지 안익태는 안익태일 뿐 ‘에키타이 안’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안익태라는 이름을 송덕(頌德)했다. 애국가는 그에 대한, 또한 우리를 위한 일종의 ‘송덕비’였다. 송덕이란 자신의 이름을 영구화하려는 세속적 방식이자 불멸성의 가장 확실한 형식이다. 이는 당사자의 의지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 더욱이 누군가에 대한 송덕이 애국과 민족이라는 말과 결합되면 그 파급효과는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송덕의 최고 형식이 명예의 전당이나 기념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지는 골 깊은 기억이다. 그렇다면 안익태가 남긴 ‘유물’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왔던가.

봉인된 시간

우리가 그에 대해 가진 지식이라곤 애국가와 ‘코리아 판타지’의 작곡가이자 스페인 여성 롤리타와 결혼한 조선인,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세계적인 음악가였다는 ‘사실’이 거의 전부다. 한국인의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 속에서 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한 위대한 애국자다.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은 그를 언제나 순결한 성역에 존재하는 애국자의 ‘표상’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1938년부터 1944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으로 가열하게 뛰어들었다. 파시즘체제가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잠식할 무렵, 조선의 청년 안익태는 ‘일본의 토스카니니’라는 극찬을 받으며 나치 점령하의 유럽에서 에키타이 안으로 살았다. 지금까지 그의 전기(傳記)에서 봉인된 시간인 1938~1944년에, 에키타이 안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살았을까.

독일월드컵 열기가 아스팔트를 녹일 만큼 후끈거리던 2006년 6월 중순이었다. ‘잃어버린 시간 1938~1944’의 저자 이경분은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베를린에 도착한 저자는 독일팀의 월드컵 4강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경기를 보기 위해 브란덴부르크 광장으로 가려는 거대한 인파를 뚫고 60여 년 전 안익태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섰다. 땀 냄새와 맥주 냄새로 뒤범벅된 길을 헤매다보면 과연 안익태에 대한 망각된 시간을 복각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애국가의 작곡가로 한정된 안익태의 이미지를 걷어 내고 작곡가로서, 지휘자로서 그의 삶을 복원하고 싶었다.

독일에서 활동했던 안익태의 흔적은 조각조각 분산되어 있었고, 그 흔적의 조각들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심정으로 수많은 문서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먼저 베를린 국립문서보관소로 발길을 옮겼다. 안익태에게 다가가기 위한 열쇠는 ‘R 64 Ⅳ’였다. 이는 일독회(日獨會)의 문서 분류 번호였다. 그리고 저자는 다시 코블렌츠 국립문서보관소, 슈트라우스 가족문서보관소,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문서보관소를 방문해 안익태가 남긴 흔적을 ‘온몸’으로 뒤졌다. 저자는 안익태에 관한 자료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기도 하고 때로는 며칠 동안 손으로 베끼기도 했다.

‘코리아 판타지’의 판타지

문서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안익태가 살그머니 되살아났다. 그러나 되살아난 사람은 안익태가 아닌 에키타이 안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피가 역류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독일의 문서고에 피신하고 있던 안익태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키타이 안은 ‘선동가’의 표정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외치며 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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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woogong72@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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