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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늘날의 性역할이 비롯된 그곳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 권인숙 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교수·여성학 ikwon@mju.ac.kr

오늘날의 性역할이 비롯된 그곳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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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性역할이 비롯된 그곳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문승숙 지음 / 이현정 옮김 / 또하나의문화 / 1만5000원

1998년 한국의 유명한 정치학자를 만나서 군사주의에 대해 연구한다고 나의 연구 분야를 소개하니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군사주의, 그게 뭐예요?” 단순히 군사주의라는 말에 낯설어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한 여성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같은 식으로 내 소개를 하면 군사주의를 군대와 관련된 무엇이라고 여기는지 “그런데 내가 군대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징병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몇 가지 주장을 피력하다 “사실 징병제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보는 거예요. 우리 오빠도 군대에서 다쳐서 왔는데 왜 나는 징병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요?” 하고 반문하는 이가 많았다. 비단 용어뿐 아니라 군사화와 관련된 제도나 현상에 대해 우리가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오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다.

필자도 그랬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세미나를 통해 한국사회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분석하고 비판했지만 한 번도 군대라는 기관과 징병제라는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군사주의(militarism) 또는 군사화(militarization)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 사회와 연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의 삶을 군사화라는 틀에서 생각해보면 소재가 무궁무진했다.

군사주의와 함께한 성장기

속초에서 반공 깃발을 들고 흔들던 어린 시절, 군사도시 원주에서 군대기지 몇 개를 지나며 등하교하던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때 교련교육, 군대식 조직관이 힘을 발휘하던 학생운동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인임을 자처하면서도 군대와 징병제에 대해 망각하는 이유, 그것과 군사주의나 군사화는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 군사화의 실체는 북한과 대립하는 군사적 긴장과 위기의식, 그에 따른 군비 경쟁이나 높은 국방비 지출에서 끝나지 않는다. 2005년 윤종빈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를 출품하면서 아무도 군대가 어떤 곳인지 말해주지 않아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변(辨)을 내놓았다. 술자리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개그 소재로까지 반복적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소위 진보적 남성 지식인 중 군대를 진지하게 분석하는 글을 쓴 사람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며 영화나 소설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았다. 1997년 이회창씨 아들 병역 면제를 두고 논란이 있기 전까진 징병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도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는 군사화 한 삶에 익숙한 나머지 문제의식의 싹이 제대로 키워지지 않았다는 분석을 낳는다.

군사화를 통해 한국현대사의 근대성을 분석한 문승숙의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는 이런 점에서 무척 적절하고 필요한 책이다. 차분하게 여러 역사적 사실을 군사화된 근대성이라는 틀에 맞추어 젠더적, 계급적, 포스트 모던적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을 실은 연구서다. 문승숙은 현대사를 1기 ‘군사화된 근대성과 성별적 대중동원, 1963~1987’과 2기 ‘군사화된 근대성의 쇠퇴와 성별화된 시민성의 대두, 1988~2002’로 나눠 분석한다.

1기에서는 군사정권하에서, 특히 박정희 시대에 부국강병을 모토로 징병제와 경제개발을 통해 근대성을 실현하려 하면서 남녀의 역할이 어떻게 다르게 규정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 동원방식으로 남녀의 정체성을 규정해 나갔는지를 설명한다. 남성은 사병과 노동자, 그리고 생계부양자인 가장으로 만들어지고, 여성은 새마을운동이나 가족계획운동의 담당자 역할을 하면서 주부로서 재조직되는 한편 노동에서는 그 역할 비중과 상관없이 주변화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2기에서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을 통해 시민성을 획득해 나가는 흐름을 남과 여로 구분해 분석했다.

대체복무제와 여성노동자 주변화

문승숙의 연구에서 그만의 새로운 내용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1973년 병역특례법 시행에 따라 대체복무제가 한국산업의 남성화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를 분석한 대목이다.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근간이었고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는 명분이었던 방위산업의 활성화와 이들 방위산업체에 대규모로 고용됐던 대체복무 남성의 취업과정에 관한 의미 고찰은 그동안 징병제 연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병역특례를 위해 남성노동자들은 직업훈련 프로그램, 기술자 자격증, 직업훈련을 받았고 중화학산업에 대거 진출하면서 이후 이 분야의 숙련노동자로 변신했다. 문승숙은 이 점에 대해 “여성노동자는 성별 노동 분리시장에서 취업과 직업훈련의 첫 단계부터 주변화되었다”(91쪽)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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