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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진보와 야만’

동전의 양면 같은 ‘20세기 역사’

  •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brilsymbio@hanmail.net

‘진보와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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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종은 근육이 발달돼 강제로 일을 시켜야 하고 지각능력이 약해 마취 없이 수술할 수 있을까. 자신의 경험만 인정하는 중심부는 사회진화론을 내세우며 착취를 정당화했다. 중심부 국가들은 배타적인 자본과 과학기술로 주조한 무기를 앞세워 반주변부와 주변부의 자원을 독차지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을 멋대로 지배했다. 그 결과 자원 소비와 영양, 질병과 수명의 현저한 차이를 가져왔고, 에너지 소비와 생산의 격차는 심화됐다. 주변부를 소외하는 무역의 증가로 중심부의 부는 한층 집중됐으나 주변부의 상대적 빈곤은 악화됐다. 자본과 과학기술로 중심부가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는 만큼 주변부의 환경은 피폐해지고 말았다.

‘진보와 야만’은 국제사와 국내사적으로 20세기를 주제별로 들춰낸다. 이를 위해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중심부와 반주변부와 주변부 사람들에게 미치는 고통의 크기, 생산력과 환경 피해의 격차, 무역이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경제와 사회적 불평등을 살펴본다. 이어 제국주의 경쟁과 그로 인해 유발된 식민지들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의 원인을 추적하고, 중심부가 설정한 국가와 허구가 지배하는 민족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투쟁과 전쟁을 짚어본다. 중심부는 중심부대로, 반주변부와 주변부는 그들대로 겪는 갈등은 진보를 위한 피치 못한 투쟁이라기보다 끔찍한 야만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한다.

국내의 전통은 보수화하는 정치와 경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일 때가 많다. 야만의 극치였던 나치즘과 파시즘은 단지 과거사가 아니다. 중심부든 반주변이나 주변부든, 권력을 쥔 자들의 욕망을 위한 독재와 그로 인한 불평등은 20세기 내내 진행됐다. 참다 못한 혁명세력이 민중의 환호를 받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파시즘으로 귀결되고, 민주주의는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숱한 희생을 바탕으로 중심부에서 반주변부로 민주주의는 조금씩 자리잡는데, 주변부의 민주주의는 여태 시행착오가 끝나지 않았다. 이는 차별과 억압을 넘어 끔찍한 제노사이드(Genocide)까지 이행하는데, 그 대목을 읽은 독자는 진보의 탈을 쓴 인간의 야만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야만이 결국 진보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걸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진보, 압도적 다수에겐 야만

인종과 남녀 편견에 이은 생태계 편견은 후손의 생명을 식민지로 하는 21세기를 지나고 있다. 다가올 20세기를 낙관적으로 보고 또 음울하게 읽은 두 시인의 시를 소개한 클라이브 폰팅은 “20세기 동안 세계가 진화해온 길과 세기말 경제력과 정치력의 분포를 고려해볼 때, 세계는 다음 수십년 동안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줌의 소수에게는 진보로, 압도적 다수에게는 야만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면서 방대한 분량의 ‘진보와 야만’을 맺는다.



최근 잉카 후예들이 과거 자신의 금을 탈취한 스페인에 투자에 대한 이자를 요구한다고 한다. 중심부가 진보를 위해 반주변부와 주변부에 저지른 야만에 대해 배상한다면 현재의 경제성과는 더는 유지되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반주변부로 위상을 달리한 우리는 누구를 착취했으며 현재 착취하려드는지 반성해야 한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민주주의의 반대는 경제개발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중심부에서 주변부까지, 20세기 이전부터 21세기마저, 진보를 위해 농업이 착취되는 측면을 추적하지 않은 아쉬움은 남지만 ‘진보와 야만’은 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젖은 우리에게 성찰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경제!” 하면 모든 가치가 하위로 처져야 한다고 믿는 ‘거꾸로 된 세상’에서, ‘진보와 야만’은 책 두께만큼이나 기대를 갖게 한다. 지구 온난화라는 부메랑이 다가오는 21세기를 극복할 내일을.

신동아 200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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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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