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지구가 버린 씨앗이 화성에 생명을 잉태한다?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7-05-02 18: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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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스크 두 병으로 생명의 기원을 탐색하던 실험은 이제 외계에 지구의 생명체를 잉태하려는 시도로 발전하고 있다. 생물체 탄생의 비밀이 밝혀진다면 태양계 행성에 지구 생명체를 이식하지 못하리란 법도 없으니까. 이런 꿈이 먼 미래의 일 같지만, 생명의 신비로운 고리는 점차 풀려가고 있다.
    지구가 버린 씨앗이 화성에 생명을 잉태한다?

    미국의 화성궤도탐사선에 잡힌 화성에 물이 흘렀던 흔적. 먼 옛날 화성의 생물체가 지구에 유입됐던 것은 아닐까.

    생명은 무엇일까?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런 질문은 인간의 의식이 각성한 이래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세계 창조의 신화와 종교들이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고 있으며, 온갖 철학자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다윈은 그 질문의 방향을 과학 쪽으로 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모든 생물이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썼다. 소심한 편이던 그는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인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암모니아와 인산염과 빛, 열, 전기 등이 있는 따뜻한 작은 연못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최초의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 생겨났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최초의 생명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났는지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생물은 무생물과 비교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대사 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유지하고, 닮은 점과 다른 점을 고루 지닌 자손을 낳고, 환경에 적응한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맞게 환경을 변화시키는 등의 복잡한 특성을 지녔다. 이런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생겨났다고?

    그 어려운 문제를 풀 실마리를 처음 제공한 것은 밀러-우레이의 실험이었다.

    초기 지구엔 누가 살았나?



    1953년 미국 시카고대 해럴드 우레이 교수의 지도를 받는 대학원생이던 스탠리 밀러는 생명이 아직 없던 초기 지구에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는 위와 아래에 플라스크를 하나씩 놓고 두 개의 관으로 양쪽을 연결했다. 아래쪽 플라스크에는 물을 넣었다. 그것이 지구의 바다였다. 위쪽 플라스크에는 여러 가지 기체를 넣었다. 지구의 대기였다.

    밀러는 원시 지구의 대기가 어떠했는지 추정한 러시아 과학자 오파린을 비롯한 과학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위쪽 플라스크에 메탄, 암모니아, 수소를 넣었다. 그리고 아래쪽 플라스크를 가열하면 관을 따라 수증기가 올라가서 위쪽 플라스크로 들어가도록 돼 있었다. 위쪽 플라스크에는 전극을 달아 전기 방전이 일어나도록 했다. 전기 방전은 번개였다.

    밀러는 아래쪽 플라스크를 가열해 수증기를 순환시키면서, 위쪽 플라스크에 계속 전기 방전을 일으켰다. 그러자 기체들끼리 반응하기 시작했다. 반응으로 생긴 산물은 관을 따라 내려와서 냉각된 다음 아래쪽 플라스크로 들어갔다. 바다와 대기 사이에 물질 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가 지나자 바다가 분홍색을 띠기 시작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짙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밀러는 짙은 색으로 변한 바닷물을 꺼내어 성분을 분석했다. 거기에는 세포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 20종류 중 11가지가 들어 있었고, 유전물질인 핵산의 전구물질이라고 할 만한 것도 있었다. 즉 생물의 활동이 없는 상태에서 생명의 원료인 유기물질이 생성된 것이다.

    밀러의 실험은 생명체 자체가 아니라 간단한 유기물질을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생명체가 초기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너무나 놀라운 의미가 함축돼 있었기에 과학자들은 처음에 그의 실험 결과를 믿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논문은 머지않아 유명한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실렸다.

    밀러-우레이 실험은 문제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단순하면서도 산뜻했으니까. 게다가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화학자인 레슬리 오겔은 1969년 호주에 떨어진 머친슨 운석이 우연찮게 그 실험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했다고 말한다. 그 운석을 분석해보니 아미노산의 종류와 비율이 밀러의 실험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지구 생명체는 외계에서?

    지구가 버린 씨앗이 화성에 생명을 잉태한다?

    1953년 스탠리 밀러가 전기방전을 이용해 아미노산을 합성한 실험장치. 원시 지구를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밀러의 실험 이후에 과학자들은 기체의 종류와 비율을 달리하면서 비슷한 실험을 해보았다. 밀러가 조성한 대기는 화학적으로 환원성 대기라고 하는데, 과학자들은 환원성 대기에서는 아미노산이 쉽게 생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정반대 특성을 지닌 산화성 대기에서는 아미노산이 전혀 생성되지 않거나 아주 소량만 생성됐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유전물질인 핵산의 기본 단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생물의 두 가지 주요 성분인 단백질과 핵산의 원료가 초기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고무적인 결과가 나온 셈이었다. 게다가 우주 공간에도 그런 물질들이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과학자들은 실험의 전제에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밀러는 원시 대기가 암모니아와 메탄처럼 쉽게 반응하는 기체들을 섞은 형태라고 보았다.

    그런데 초기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원시 대기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초기 지구는 불안정한 상태였고 우주로부터 혜성과 유성의 세례를 받는 일도 잦았으니, 암모니아와 메탄 같은 반응성이 강한 기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반응성이 약한 이산화탄소와 질소가 원시 대기의 주성분이라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초기 지구는 밀러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세계인 셈이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대안 가설을 제시하는 과학자들이 나타났다. 생명이 지구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라 외계에서 왔다는 이른바 범종설(汎種說)이다.

    범종설은 사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낙사고라스로부터 이어지는 오래된 가설이다. 그는 우주에 아주 작은 씨앗이 무수히 흩어져 있으며, 그것들이 조합해 생명을 비롯한 만물을 낳는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 견해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됐지만, 그 가설을 부활하려는 시도가 어쩌다가 한 번씩 일었다.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의 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1973년 레슬리 오겔과 함께 어떤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에서 DNA를 담은 일종의 씨앗을 지구로 보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DNA가 지구에서 진화를 거듭하면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외계 문명의 씨앗이 지구를 생명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든 셈이다. 물론 크릭과 오겔은 그 외계 문명은 무생물에서 생성되는 과정을 거쳐 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크릭과 오겔의 주장은 다소 장난기가 어린 듯했기에 과학자들은 그들의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가 외계 생명체를 지구로?

    하지만 분광 분석법 등을 통해 우주 공간을 살펴보고 우주 먼지와 지구에 떨어진 운석을 분석한 결과, 우주에 아미노산 같은 생명의 원료가 되는 물질이 풍부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범종설은 새롭게 힘을 얻었다. 굳이 외계 문명이 파종을 하지 않았더라도, 지구가 형성될 때인 약 45억년 전부터 생명이 탄생한 시기라고 여겨지는 약 35억년 전까지, 10억년 동안 지구에 떨어진 그런 물질들의 양을 더하면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 지구의 대기 조건이 아미노산 같은 물질을 생성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도 생명의 원료 물질들은 운석과 우주 먼지를 통해 계속 지구로 유입돼 많아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생명이 출현할 유기물로 가득한 이른바 ‘원시 수프(primordial soup)’가 생겼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아예 생명체 자체가 우주에서 왔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그들은 최근 들어 급속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행성학, 우주론, 우주생물학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논거로 제시한다.

    1990년대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해외 화제에 오르곤 하는 화성에서 온 운석들이 한 예다. 1984년 남극대륙에서 발견된 ALH84001이라는 운석이 있다. 이 운석은 약 1500만년 전에 화성에서 떨어져 나와 약 1만3000년 전에 지구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됐다. 1500만년을 우주에서 떠돈 셈이다. 1996년 미국 항공우주국의 데이비드 매케이 연구진은 이 운석에 지구의 세균과 아주 흡사하게 생긴 생명체 화석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것이 정말로 생명체 화석인지를 놓고 많은 논쟁이 벌어졌지만, 아직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 논쟁의 와중에 벤저민 웨이스 연구진은 다른 각도에서 그 운석을 분석했다. 그들은 자기적 특성들과 운석에 갇힌 기체들의 조성을 분석해 운석이 수백℃ 이상 가열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게다가 100℃ 이상으로 가열되지 않은 화성 운석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우주 왕복선이 지구 바깥을 오갈 때 뜨겁게 달구어지듯이, 무언가 행성 바깥으로 빠져나오려면 대기와의 마찰열 때문에 뜨겁게 달궈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운석들은 화성에서 어떻게 달궈지지 않은 채 나온 것일까. 무언가 다른 탈출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연구자들은 혜성이나 유성이 화성에 충돌할 때 생긴 상승 충격파 덕분에 달궈지지 않은 채 튀어나간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아무튼 그 운석 속에 세균 같은 미생물이 들어 있었다면 수백℃ 정도의 온도에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생물은 온도나 대기 조건이 열악해지면 휴면 상태에 들어가서 오래 견딜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 복사선은? 우주에는 태양의 자외선을 비롯해 강력한 복사선들이 있다. 자외선은 생물의 DNA를 파괴하므로 강력한 자외선은 생물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자외선에도 견딜 수 있는 미생물이 있다. 유럽 연구자들은 곰팡이 포자를 알루미늄으로 감싸서 우주에 보내는 실험을 했는데, 80%의 곰팡이가 살아남았다.

    생명의 요람 ‘원시 수프’

    또 연구자들은 행성이 대략 수백만년마다 혜성이나 유성과 충돌해 대량의 물질을 우주로 뿜어낸다고 추정한다. 달도 그런 충돌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지구와 화성은 고립된 채 마냥 태양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끊임없이 물질을 주고받는 셈이다. 화성에서 튀어나온 먼지나 운석은 수백만년이 지난 뒤에 지구로 들어올 수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빨리 지구로 들어오는 것도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먼 과거에는 화성이 지금처럼 황무지가 아니라 생명이 살 만한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당시 살던 생물들 중 일부가 지구로 유입됐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위에 말한 연구 결과들을 찬찬히 훑어보면 생명체가 외계에서 지구로 유입됐다는 말이 그런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접했을 때보다 덜 황당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벤저민 웨이스는 범종설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론일 뿐 아니라, 단계별로 실험을 통해 검증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설령 생명이 지구에서 출현했다고 할지라도 우주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미노산 같은 원료들을 우주에서 많이 공급받았을 테니까.

    하지만 최근 미국의 화학자 제프리 바더는 전세를 다시 역전시킬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바더는 밀러가 1983년에 한 실험을 다시 해보았다. 그는 그 실험에서 아질산염도 생성되며 그 물질이 생성된 아미노산을 금방 파괴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 아질산염은 물을 산성으로 변화시켜 아미노산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했다. 하지만 초기 지구에는 아질산염과 산을 중화시키는 철과 탄산염 광물이 많았을 것이므로 바더는 그 물질들을 넣고 실험을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미노산으로 가득한 바다가 형성됐다. 따라서 다시 아미노산이 지구에서 생성됐다는 쪽으로 견해가 기우는 셈이다.

    하지만 핵산은? 여전히 우주에서 온 듯하다.

    밀러-우레이 실험은 원시 지구에서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그 뒤의 과학자들은 우주로부터도 유기물이 많이 유입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유기물이 바다에 쌓여서 이른바 생명의 요람인 원시 수프가 형성됐다는 데까지는 이제 수긍할 수 있을 듯하다.

    ‘RNA 세계 가설’

    그 다음 단계는 유기물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복제해 증식할 수 있는 분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복제와 증식을 하려면 원료가 필요하며, 유기물이 바로 그 원료다. 따라서 자기 복제 분자는 유기물을 소비하면서 증식하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한때 이 단계를 주도한 것이 단백질인지 DNA인지를 놓고 둘로 갈려서 열띤 논쟁을 벌였다. 문제는 단백질과 DNA는 서로 있어야만 복제와 증식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단백질은 DNA를 자르고 붙이는 효소 노릇을 함으로써 DNA의 복제에 관여하며, DNA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주형 노릇을 한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제대로 증식할 수 없다. 그렇다고 둘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논쟁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서히 제3의 대안이 떠올랐다. 바로 DNA의 친척인 RNA였다. RNA가 부상한 계기는 리보자임이라는 특이한 종류의 RNA의 발견이었다. 리보자임은 자기 자신의 합성을 촉매한다. 즉 주형과 효소 기능을 동시에 하는 셈이다.

    따라서 단백질이 먼저냐 DNA가 먼저냐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RNA가 먼저였고 그 뒤에 둘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RNA가 세계를 주도했다는 의미에서 ‘RNA 세계 가설’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RNA는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중에 이중 나선을 형성하는 좀더 안정한 물질인 DNA가 주형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하지만 원시 지구에서 자기 복제자인 RNA가 등장해 유기물을 소비하면서 증식했는지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RNA는 분자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단백질과 핵산이 결합한 PNA 등의 물질이 초기에 주형 노릇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밀러가 시작한 생명의 기원 실험을 둘러싼 논쟁은 그치지 않았다. 밀러-우레이는 원시 바다를 생명의 모체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다윈의 계승자이기도 하다. 다윈의 ‘따뜻한 작은 연못’이 바다로 바뀌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생명이 바다에서 출현했다고 보는 과학자들은 원시 바다의 해안가로 유기물이 밀려드는 광경을 상상한다. 유기물들은 파도에 밀려 바위 해안의 웅덩이로 들어왔다가 햇볕에 증발되면서 점점 더 진하게 농축된다. 이윽고 그 진한 유기물 수프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하지만 이 바닷가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요동치는 불안정한 바다보다는 더 안정된 곳이 생명이 출현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가령 진흙탕의 점토 입자 표면이나 암석의 작은 틈새 같은 곳이다.

    미국의 지구과학자 로버트 하젠은 더 대담한 주장을 편다. 그는 암석과 광물이 생명의 기원에 적어도 몇 가지 방향으로 관여했다고 본다. 먼저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안정한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둘째, 간단한 분자들이 붙었다가 서로 결합해 성장할 표면을 제공했다. 셋째, 생명이 특정한 방향의 분자들만 사용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많은 유기물 분자가 그렇지만 아미노산도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두 형태는 서로 거울상, 즉 방향이 반대다. 화학적으로는 L형과 D형이라고 한다. 밀러의 실험에서처럼 화학적으로 아미노산이 형성될 때에는 L형과 D형의 비율이 50대 50이다.

    반면 지구의 생물들은 D형은 쓰지 못하며, L형만 쓸 수 있다. 따라서 생물이 만드는 아미노산은 모두 L형이다. 하젠은 방해석 같은 암석의 매끄러운 결정면들은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L형과 D형을 선택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왼쪽 결정면에는 L형만 달라붙고, 오른쪽 결정면에는 D형만 달라붙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국지적으로 L형과 D형의 아미노산이 축적됐다가 어느 한쪽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다른 설명을 내놓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운석에 든 아미노산들을 분석하면 D형보다 L형의 양이 좀더 많다고 말한다. 즉 우주에 원래 L형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 하젠은 광물이 자기 복제자 형성을 촉진하고, 철과 황처럼 용해됨으로써 생명을 출현시킬 화학 반응의 중심 역할을 한다고도 본다. 그는 심해의 열수 분출구처럼 햇빛이 없고 압력과 온도가 높은 곳에서 생명이 번성하는 것도 녹아 나온 광물질 덕분이라고 본다. 심해 열수 분출구 같은 곳이 생명의 출현 장소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인류의 조상, 인류의 미래

    밀러-우레이 실험과 그 뒤에 벌어진 다양한 실험과 이론은 인류의 미래에 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로 우주 개척이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물질을 갖가지 방식으로 조합해 어떤 생명 분자들이 생성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를 달이나 화성에 적용한다면?

    지구가 버린 씨앗이 화성에 생명을 잉태한다?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다른 행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바꾸는 것을 테라포밍이라고 한다. 테라포밍은 예전에는 과학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였지만, 앞서 말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그것을 실현할 계획을 짠다고 해도 이제는 그리 허황되게 여겨지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태양계 행성들의 테라포밍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알랴? 인류가 우주로 쏘아대고 있는 우주 탐사선들, 지구 궤도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먼 미래에 화성과 달에 생명을 출현시킬 씨앗이 될지. 우주 탐사선을 멸균시켜 보내는 것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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