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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 5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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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쯤 뒤면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 이들이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고, 이 아이들이 또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고…. 나는 갑자기 살아 있는 동화를 한 편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자연의 삶을 점점 잃어버리는 세상, 아이다운 마음과 호기심을 가진 어른이 드물어지는 세상에서 우린 작지만 동화 같은 마을을 지키고 산다.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계곡에서 고기를 잡다가, 물놀이를 하다가, 바위타기 놀이로 바꾸어가는 아이들. 자연은 살아 있는 놀이터이자, 변화무쌍한 놀이터다.

싱그러운 봄이다. 풀도 나무도 곡식도 마음껏 봄을 누린다. 아이들은 어떨까. 이번 호에는 내가 사는 마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아이들 자라는 건 정말이지 잠깐이다. 우리 아이 자라는 것도 빠르지만 이웃 아이 자라는 건 더 금방이라 느껴진다. 아이들 자라는 걸 지켜보는 건 행복하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활력을 주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따금 이 아이들 성장에 내가 도움이 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하지만 무언가를 주거나 가르치기 이전에 먼저 아이들을 이해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내 자식’보다 ‘우리 아이’

우리 마을은 새로 생겼다. 오래전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1996년부터 한두 가정씩 모여들어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그 사이 다시 떠난 이웃도 있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웃도 있다.

우리 마을은 산골치고 젊은이가 많고 덩달아 아이도 제법 있다. 아이만 손으로 꼽아보니 아홉이다. 다섯 살부터 열세 살까지. 남자아이가 여섯, 여자아이가 셋이다. 이 아이들은 나이나 성별을 크게 따지지 않고 어울리는 편이다. 아이들이 고만고만해서 이웃집을 자주 오고 가며 어울려 자란다. 여기 아이들은 어떤 점에서는 ‘내 자식’보다 ‘우리 아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태어나 부모 따라 이곳으로 온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지금은 아홉 살이 된 채연이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여러 사람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우리 이웃이 됐다. 그 기억을 조금 더듬어본다.

채연이에게는 두 살 많은 오빠 현빈이가 있다. 현빈이도 처음에는 집에서 낳으려고 출산 준비를 했다가 양수가 일찍 터지는 바람에 병원에서 유도 분만으로 태어났다. 현빈 엄마는 첫아이 경험을 밑천 삼아 둘째아이 채연이는 집에서 낳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한 데는 본인의 준비도 철저했지만 가까이에 든든한 이웃이 여럿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었다. 그이들 이름이 윤희, 근희, 현희라 자칭 ‘희자매’다. 윤희씨는 도시 살 때부터 아이를 받아본 약사 출신이라 산모는 그이를 의지할 수 있었다. 채연이를 낳던 날 진통이 시작되자 희자매를 집으로 불렀다.

채연이가 우리 곁에 온 시각은 새벽 세시쯤. 은은한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전깃불 없이도 사람 움직임은 다 알 수 있는 그런 어둠. 갓 태어날 아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전깃불을 밝히지 않았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 침묵과 이따금 들리는 산모의 신음 소리.

산파를 해주던 윤희씨는 산모랑 함께 호흡했다. 산모가 진통을 느끼면 같이 숨을 길게 내쉬고, 진통이 물러간 사이는 숨을 길게 들이쉬고. 근희씨는 큰아이 현빈이가 엄마 신음 소리에 놀랄까봐 돌봐주었다. 현희씨는 무사히 아이가 나오게끔 곁에서 기도했다.

“생일에 아저씨 가도 되니?”

남편은 방을 따뜻이 하려고 아궁이에 군불 지피고 물을 데웠다. 드디어 마지막 진통이 오고 산모가 한껏 힘을 주자, 아기가 빙그르르 돌면서 ‘쑥’ 빠져나왔단다. 그리고 태반이 나오고. 기다림 끝에 탯줄에서 일어나는 호흡이 자연스럽게 멈추자, 남편이 탯줄을 끊었다. 이렇게 채연이가 태어나고 이웃들이 산후 수습을 다하고 나자, 겨울 아침 햇살이 유난히 밝고 따뜻했단다. 이날 채연이가 우리 곁에 온 이야기는 마을 역사에서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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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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