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숲 속 산방에서 꽃뱀과 동거 중입니다”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입력2007-05-04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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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을 만나고 오는 길에 반짝반짝한 단어들이 떠올랐다. 연필로 손바닥 공책에 이렇게 적었다. 충청도, 구룡산, 법주리, 구구산장, 살쾡이 똥, 생강꽃차, 민들레, 다람쥐와 꽃뱀, 북두칠성, 까치와 까마귀, 해인(海印), 편지, 혼혈아, 호아빈(평화), 벌레, 옥수수와 누룽지, 장작패기, 풍경, 우편집배원…. 이 단어들로 도종환 시인을 그려봐야겠다.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살다가 시가 된 사람들이 있다. 시를 읽다보면 한 인간이, 구체적인 한 인물이 시 속에서 살아 숨쉬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 친구,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 평범하게 살았지만 비범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 시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시 속에서 되살려낸다. 시 속에서 그들은 모두 한결같다. 성자와 청소부,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이 모두 한결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시는 아름다운 조화이기도 하다. 도종환(都鍾煥·53) 시인이 살고 있는 산방으로 가는 마을에서 나는 시인의 시를 몇 편 읽었다.

    시집 ‘접시꽃 당신’에서부터 최근의 ‘해인으로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중적으로 이미 유명한 시인이면서도 소월의 시에 나오는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과 같이 살았다. 참으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삶이다. 부러운 삶이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법주리’라는 마을 이름을 보고서 나는 무릎을 쳤다. 참으로 어려운 말이면서도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말이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이름이었다.

    법주리

    압구정동, 상계동과 같은 동네 지명에 익숙한 사람들은 법주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덜컥 걸린다. ‘법이 머문다’는 말은 어렵다. 법이 머무는 곳은 불가의 절이거나 암자이리라. 그리고 그곳에는 반드시 그 법을 지키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이 마을에는 시인이 그 법을 지키고 있었다. 혹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시인은 아닐까. 법주리 초입에 내려 큰 나무 아래에 잠시 머물렀다.

    까마귀가 낯선 사람의 침입을 경계한다. 마치 동네사람들에게 다 알리려는 듯이 울어댄다. 개가 짖는 것 같다.



    한적한 오후다. 마을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을이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형세였다.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청주에서 보은 쪽으로 피반령을 넘어서서 지방도 변에 위치한 법주리는 도로를 마주 보고 두 개의 큰 당나무가 있고, 그 나무 아래에 돌부처가 모셔져 있다. 법주리라는 마을 이름은 아마도 이 돌부처에 머무는 법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법주리에서 구룡산 쪽으로 난 길을 걸어간다. 혹시 도종환 시인을 찾아갈 일이 있다면 마을 어귀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기를 권한다. 좁은 산길을 차를 몰고 갔다가 낭패를 본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견인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산길이다.

    시인을 만나기 전에 이미 이 마을에서 나는 한마음을 놓았다. 고속도로에서 밀리는 차량 때문에 불편했던 마음이 이곳에서 풀어졌다. 이렇게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다 시인 덕이다. 시인은 이렇게 세파에 찌든 중생의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마을의 초입에 있는 돌부처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배고프니 밥 주랴, 배고프니 법 주랴”

    어제 낮엔 양지 밭에 차나무 씨앗을 심고

    오늘 밤에 마당에 나가 별을 헤아렸다

    해가 지기 전에 소나무 장작을 쪼개고

    해 진 뒤 침침한 불빛 옆에서 시를 읽었다

    산그늘 일찍 들고 겨울도 빨리 오는 이 골짝에

    낮에도 찾는 이 없고 밤에도 산국화뿐이지만

    매화나무도 나도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매화는 매화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고요하였다

    - 시 ‘산가’ 전문

    이 시는 시인의 요즘 생활을 잘 보여주는 풍경화다. 시인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낮과 밤, 볕과 별이 모두 시인의 품에 머물고 있다. 한 인간이 어떻게 한 우주가 되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좋은 시처럼 그가 사는 곳이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으로 오게 됐는지 궁금했다.

    구구산장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5년 전에 몸이 아파서 찾아온 곳입니다. 이곳에서 처음 1년은 그냥 쉬었지요. 병든 몸을 후배들이 떠메고 와서 던져놓은 곳이니까요. 1년이 지나자 몸이 다시 살아났어요. 마치 봄에 새 기운이 돋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실 그동안 너무 무리했지요. 10년 만에 복직을 했으니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이런저런 강연에 TV 방송 진행까지 했으니까요. 몸이 간헐적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무시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푹 쓰러진 겁니다.”

    구구산장은 거북 구(龜)자가 두 개다. 두 마리의 거북 산장이라는 뜻인데, 건축을 해준 사람이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아픈 몸을 쉬는 곳이라 거북처럼 오래 살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지만, 도종환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산방에서 거북처럼 느리게 살라는 뜻입니다.”

    구구산장은 병들고 지친 몸을 치유한 곳이다. 이제 5년째 이곳에 머문다. 청주 집에 있는 시간보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구구산장에서 머무는 시간은 거북처럼 느린 시간이다. 시인은 그 시간을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면 그 시간은 바쁘고 시끄러운 시간이다.

    느릿느릿한 도종환 시인이 마치 거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큰 아픔을 겪고 난 뒤에 체득한 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인가. 시인은 지인들에게 성품이 착한 분으로 소문이 나 있다. 산방 안에는 작은 서재와 책상, 그리고 벌레 한 마리가 조용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시인은 조용히 벌레를 집 밖으로 내보내면서 말했다.

    “이놈아, 여기보다 밖이 더 살기 좋아. 먹을 것도 많고.”

    海印

    서재를 보니 불교에 관한 책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최근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은 불교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책이다. 해인은 불경 화엄경의 한 구절인 해인삼매에서 나온 말이다. 즉, 세상을 큰 바다에 비유하고 그 바다에 이른 거친 파도와 비바람이 현세를 사는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이다. 이 번뇌망상이 멈추는 경지가 해인삼매다. 바닷물(海) 속에 떠오르는(印) 절대경지를 말한다.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불심으로 가득 찬 시집이지만, 시인은 정작 가톨릭 신자다. 이 시집을 읽은 수녀님들이 작은 토론회를 벌였다. 그 자리가 끝나자 수녀님들은 ‘그분’에게 기도했다. “주여, 도종환 시인이 개종하지 않게 하소서.”

    시인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이 집터는 근처에 있는 스님에게 다녀가는 길에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인연은 인연을 낳는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주인은 하느님이다. 믿는 신은 다르지만,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시인으로서 받아들인다. 시인에게 시가, 모국어가 유일신이면서 조국인 것이다.

    올 2월에 나온 동화 ‘나무야 안녕’도 이곳에서 쓴 책이다. 산방의 뒷마당에 있는 작은 자두나무를 보고 쓴 것이라고 한다. 그 나무는 허리가 꺾인 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나무에서 자두가 한두 개 열린다. 지독한 아픔을 겪고 나서도 저 혼자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에서 어쩌면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아프고 나서 펴낸 모든 책은 이곳에서 썼다. 이곳에 머물며 아무 생각을 안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겸손한 수사가 아닐까. 조용함 가운데 불타오르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시심(詩心)이다. 구구산장은 언어의 집인 시라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았다. 그의 시와 글들은 산속의 풀과 나무와 짐승과 어울려 있다. 그리고 해인이라는 큰 깨달음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이문재 시인이 시집의 발문을 썼다. 그는 도종환의 시가 시인으로서의 귀환이면서 동시에 한국 시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했다. 시집에 나오는 첫 시를 인용한다. 이 시가 아마도 구구산장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이 시집의 서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이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 시 ‘산가’ 전문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의 마음의 산이 보인다. 그 산에서 쓴 시는 경전처럼 내게 다가온다. 흙이 저절로 씻겨 내려가는 문장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그 무엇도 조용히 쓸려 내려간다. 일종의 세례의식처럼 한 편의 시가 마음을 씻어준다. 마음의 얼룩은 눈에 보이지 않아 병이 들면 더 아프다. 우울증은 마음의 얼룩이 깊이 스며들어 탈이 난 것이다.

    최근에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한 적이 있다. 언제 내가 아무 말 없이 하루 종일 있었던 적이 있나 싶었다. 그러나 가끔 시집을 읽는 동안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을 줄인다는 것이다. 말을 줄이고 책을 보면 그 자리에 생각이 머문다. 그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의 길이 보일 수도 있으리라.

    법원의 등기부등본에는 구구산장이 도종환의 땅과 집으로 등재돼 있다. 그러나 막상 산에 들어가보니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헛갈렸다. 시인은 산속에 사는 산짐승들과 마당을 공유하고 있었다. 산방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이 물은 짐승들의 식수다. 처음에는 인간의 눈을 피해 밤중에 와서 물을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시인을 빤히 쳐다보면서 아무 때나 드나든다.

    살쾡이 똥

    “이놈들이, 나를 인간 취급하질 않아. 허허. 이것 좀 봐요. 이 똥 좀.”

    마당에서 난생 처음 살쾡이 똥을 보았다. 마당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살쾡이 똥이 있었다. 군데군데 전날 잡아먹었을 짐승의 털이 박혀 있었다. 짐승들은 오줌이나 똥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여기 들어오는 놈들은 죽어’ 하는 식이다. 즉,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라고 울타리를 친 것이다.

    시인은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면서 너털웃음을 날렸다. 그는 살쾡이 똥을 치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살쾡이를 몰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동물이 사는 산속에 인간이 잠시 머무르는 것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개울가로 내려간다. 개울가로 이어지는 비탈에 꽃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수유네?” 하고 탄성을 지르자 시인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비슷하지요. 똑같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런데 저건 생강나무입니다. 나무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손님에게 차 대접을 해야지요.”

    그러곤 막 돋아오르는 꽃잎을 손으로 땄다.

    생강꽃잎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는 나무 탁자에 이철수 선생의 판화 글씨를 새긴 보자기가 덮여 있었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 구절이었다. 이문재 시인은 이 시구로 자신의 시 엮음집의 제목을 달았다. 멀리 내다보이는 산속에 꽃봉오리가 움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분명 꽃은 피고 또 질 것이다. 시인이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썼는지는 이미 활자화되어 있다. 책이나 글로 선생은 자세하게 심경을 토로했다.

    “내게 오는 모든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지내는 동안 아침마다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나와 내 삶을 끌고 가는 것이 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의 주인도 내 몸의 주인도 아니었습니다. (중략)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분이 나의 수발을 들어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욥의 말처럼 ‘주셨던 분도 그분이요 도로 가져가시는 분도 그분’이시라면 나를 세우고 쓰러뜨리시는 분 역시 그분이신 걸 알고는 그분께 다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구약의 욥은 말했다. 고통은 인생의 섭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신의 뜻이라고. 그것 역시 인생을 알기 위한 한 방편인 것이다. 오로지 안락함과 즐거움만으로 이루어진 인생은 허상이다. 그래서 세상에 없는 행복한 나라가 유토피아라고 했던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나는 조금 전에 본, 마당에 피어 있는 민들레 이야기를 했다. 아직 풀이 돋아나지도 않았는데 넓은 마당에 딱 한 송이의 민들레가 흙 속에서 솟아올라 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어떻게 저 무거운 땅을 뚫고서는 고개를 내밀었단 말인가. 무엇을 보고 싶어서.

    다람쥐와 꽃뱀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시인은 산속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암자의 노스님은 된장만으로 밥을 드시는데, 산에서 난 것들을 드신 까닭인지 다리 근력이 허약한 젊은이보다 낫다. 보은이나 청주까지 수십km를 걸어서 다니신다. 노스님이 입적하시면 시인은 그 자리를 사서 산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스님이 자신보다 더 오래 사실 것 같아 힘들지 않나 싶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산방에는 고라니, 살쾡이, 산토끼, 오소리, 다람쥐와 같은 짐승과 이제 막 솟아오른 복수초를 비롯한 생강나무, 산벚나무 등 식물이 어울려 있었다. 밤이 되면 북두칠성이 처마에 매달아놓은 풍경 끝에 걸린다. 이 모든 것 속에서 도종환의 몸과 마음은 되살아났다. 뜰에는 다람쥐와 꽃뱀이 살고 있다. 이 꽃뱀이 여름이 되면 가끔씩 방으로 들어오곤 한다. 뱀을 무서워하는 내가 이야기만 듣고도 호들갑을 떨자 웃으면서 말한다.

    “뱀이 무서워요? 그러면 뱀은 사람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사람이 무서운 것보다 더 무서울 겁니다. 꽃뱀이 들어오면 조용히 내보내면 돼요.”

    “어라, 그럼 선생님은 꽃뱀과 같이 사시네요?”

    “어, 그렇네. 허허, 내가 꽃뱀하고 살다니. 이거 쓸 때는 조심해서 쓰세요. 허허.”

    ‘시인 도종환, 구룡산 깊은 곳에서 꽃뱀과 살다’라는 기사 제목이 나간다면, 아마 인터넷 검색 순위 일등이 아닐까? 말이라는 게 참 우습다. 그리고 그 꽃뱀 곁에는 다람쥐가 있다. 선생은 뜰에 밤 같은 견과류를 내놓으면 다람쥐가 맛있게 먹어댄다고 말했다. 짐승과 나누고, 사람과 나누고, 시인은 무엇이든 나누어주고 있었다.

    다람쥐를 보니 선생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내가 문학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사춘기 때 쓴 편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연애편진가요?”

    “허허, 아니요.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집안사정으로 저는 외가에 맡겨졌죠. 중학교 때입니다. 가난 때문이었죠. 어머니 아버지는 객지를 떠도시면서 온갖 일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그리웠고, 그 마음을 참다참다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편지를 쓸 때는 계절인사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주위를 자세히 관찰했지요. 어떻게 인사를 드리면서 편지를 쓸 것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날씨나 풍경을 유심히 보다보니 이것이 아마도 시인으로서의 통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한참 먹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라 용돈이 필요했지만 한 번도 부모님께 돈 이야기를 쓴 적은 없습니다.

    무척 외로웠습니다. 방학이 되면 부모님이 답장을 보내온 편지지 봉투를 들고 그 주소지를 찾아갔습니다. 갈 때마다 주소지가 달랐어요. 어머니는 멸치장사를 하기도 했고, 아버지는 국수틀을 돌리기도 했지요. 그 시절에 쓴 편지는 아마도 어린 시절에 저의 시였을 겁니다.”

    그의 시 ‘점자’에 이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은, 그런 글자를 만난다. 열 몇 살 때부터 편지 앞에 수없이 썼던 글자들 겨울이면 산맥 위로 총총히 돋아나던 외로운 점자…”

    이전에 인터뷰를 한 소설가 윤대녕과 김형경도 어린 시절을 친가와 외가에서 보냈다고 했다. 묘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어릴 때의 외로움이 이들 문학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편지를 쓰면서 중학생 도종환은 부모와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소망을 품지는 않았을까. 학교에 다녀오면 어머니가 준비한 따뜻한 밥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한 평범한 삶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호아빈

    도종환 시인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청주에서 살고 있다.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사생활을 하던 중 전교조 문제로 해직됐다 1998년, 10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요즘은 작가회의 일을 하고 대학원에 강의를 나간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좋은 일에 연관돼 있다. 최근에는 안도현 시인과 ‘북한에 나무 심기 운동’을 하고 있고, 뜻있는 분들과 더불어 베트남에 호아빈 학교를 설립하는 데 열심이다.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의 인세는 모두 이 학교에 투자된다.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호아빈은 베트남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왜 베트남의 어린이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시인은 치열한 현실참여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구산장에서 자신의 병든 몸을 돌보면서도 ‘내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반성을 한다. 뭔가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이 마음은 ‘나 하나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삶’이 아닌가 하는 자성의 시간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이 이러한 시간 속에서 더 가치 있는 의무를 분명히 만나게 될 것이다.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혈아 차별에 대해 우려의 말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지역만 봐도 엄마 10명 중에 4명이 외국인입니다. 농촌 총각들이 국내에서 배우자를 구하지 못해 동남아시아 각지의 처녀들과 결혼을 한 거지요. 그런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겁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온갖 차별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태어난 나라에서 소외되고 있는 거지요. 이방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조만간 사회 문제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알제리 청년들의 폭동 문제는 먼 유럽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닥칠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교육을 올바르게 한다면 앞으로 이들이 비뚤게 성장해서 일으킬 수 있는 일로 말미암아 치를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 것입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인간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가 돼야지요.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한 인간이 성숙하듯이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는 다양성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지난 시절 우리는 도시화 과정 속에서 발생한 도시빈민 문제, 철거민 문제, 점점 더 극악해지는 빈부격차 등 각종 사회현상을 보아왔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병리현상을 진단하고 고발하는 문학과 그것의 치유방법을 찾는 행동하는 지식인들의 희생 아래 이만큼이라도 사는 꼴을 갖춘 것이다. 혼혈 아이들을 차별대우하고 소외시키는 행위는 반드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교육자와 시인이기 이전에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현상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베트남의 학교 설립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결국은 조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구구산방에서 기력을 회복한 시인은 이제 더 큰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는지도 모른다.

    옥수수와 누룽지

    스콧 니어링에게 바치는 시를 쓴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스콧 니어링 역시 미국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거세게 저항하다, 주류사회에서 밀려나 버몬트에서 ‘땅에 뿌리박은 삶’을 산 인물이다. 도종환 시인 역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대를 살고 있다. 니어링에 대해서는 이심전심으로 뜻이 통하는 사이 같았다. 그것은 아마 영혼의 교감일 것이다.

    “시에도 썼지만 생의 후반기에 그를 알게 돼 무엇보다 기쁩니다. 그는 균형 잡힌 인격의 소유자였지요. 어쩌면 그는 이 숲 속의 별밭에서 숨쉬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지금도 자아의 완성을 향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자연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스콧 니어링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역시 현실참여에 누구보다도 앞장선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삶의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진정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살아낸 사람들이다. 자연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곳이 아니다. 어쩌면 그곳이 진정으로 인간이 살아야 할 현실인지도 모른다. 고단한 삶을 피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옥수수와 누룽지를 먹었다. 식은 밥을 프라이팬에 올려 누룽지를 만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유안진 선생이 놀러 오셨다가 가르쳐준 방법대로 한 것이라고 한다. 고소하고 바삭한 게 별미다. 산속이라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아서일까, 누룽지 맛이 각별했다. 옥수수는 지난 여름에 수확한 것을 냉동실에 저장했다가 가끔씩 쪄 먹는다. 옥수수 알을 뜯어 먹으면서 가까이 있다는 암자에 가서 노스님을 뵙고 싶었지만 이미 날이 저물어 다음에 가기로 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시인이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여기 풍경에 달려 있던 쇠 물고기 찾아봅시다. 지난 겨울 바람에 어디론가 날아갔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네.”

    산방에 달려 있는 풍경은 이철수 화백이 선사한 것이다. 종에 물고기가 달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쇠 물고기가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는데 그것이 없어졌다. 둘이 마당과 비탈을 다 뒤졌지만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산짐승이 물어간 것일까?

    지난 여름에 심어놓은 고추밭을 같이 정리하면서 말라버린 고추대를 뽑아냈다.

    “이 고추대를 보니까 생각나는데…혹시 마을에 들어올 때 까치나 까마귀가 울어대지 않던가요?”

    그렇다고 하자 시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새대가리라는 말이 있지요. 그건 완전히 인간의 오만이에요. 새들이 얼마나 영리한데요. 그리고 감정도 있어요. 근처 마을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이 까마귀 한 마리를 죽였는데, 까마귀들이 바로 보복을 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고추 모종만 모조리 뽑아내버렸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상한 일이라고 수군댔지만, 그놈들도 알 건 다 안다는 겁니다. 새가 고추 모종을 뽑아내는 일은 어쩌면 지구의 환경 문제와 비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난개발을 해대다가는 언젠가는 우리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지요. 지구 온난화 같은 조짐은 전주곡일 겁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런 산속도 폐허로 변할지 모르지요. 끔찍하지요.”

    뒷마당에 있는 장작더미로 갔다. 실내에서 타오르는 장작은 여기서 패 들이는 것이다. 지도를 받아 몇 번 도끼질을 했다. 서툴게 몇 개비의 장작을 쪼갰다. 시는 어쩌면 이렇게 장작을 쪼개듯이 한 방에 삶의 중심을 갈라버리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대로 겨냥해서 한 번에 장작이 쪼개지면 황홀한 기분이 든다. 다시 마당으로 나아가 겨우내 보온을 위해 스티로폼으로 친친 동여매놓았던 수도를 손보았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콸콸 나온다. 이제 봄이다.

    시를 배달하는 사람

    요즘 나는 시 한 편을 읽으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도종환의 ‘시배달’이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도종환은 우편배달부처럼 아침마다 시를 배달하고 있다. 어떤 날, 한 편의 시가 마음에 들어오면 내가 시인이었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한다. 시를 읽고 자극을 받아 낙서와 같은 시를 써보기도 한다. 물론 지워버리거나 휴지통에 버리는 일이 더 많다. 그러나 그가 배달하는 시를 받아보고 나서 꼭 하나 하는 일이 있다.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는 것이다.

    ‘아침에 휴대전화를 켜기 전에, 컴퓨터 모니터를 켜기 전에 시 한 편을 읽으라’는 이문재 시인의 메시지는 사람의 삶을 여유하려는 노력이다. 시는 짧지만 그 여운은 오래 간다. 어떤 어수룩한 소년은 소월의 시 한 편을 읽고선 평생 시를 쓰겠다는 결심을 한다.

    장작을 패고 나서 산방에 앉자 수고했다면서 산삼주를 한 잔 따라주었다.

    “여기 다니는 우편집배원이 주고 간 산삼이에요. 그 사람은 심마니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양반은 산삼을 돈 받고 팔지 않아요.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몸이 아픈 이가 있으면 그냥 준다는 거예요. 내게도 한 뿌리 주었는데 그 산삼으로 술을 담근 겁니다.”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살게 마련일까? 이 마을의 우편집배원은 귀한 산삼을 아픈 사람들에게 그냥 주었다. 도종환 선생은 요즘에 시를 배달하는 집배원이다. 그것은 한 뿌리의 산삼처럼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산방에서 나와 산길을 바라보았다. 등 뒤로는 마을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깊은 산에도 길은 있다. 감추어져서 보이지 않는 길, 사람의 발길이 다듬어놓은 산길. 그 길을 집배원도 다니고, 도종환도 다니고, 나도 다닌다. 이제 피반령을 넘어 다시 서울로 가야 한다. 어둑어둑해지는 산길을 걸으면서 그의 시를 떠올렸다.

    돌아보니 산은 무릎까지 눈밭에 잠겨 있다

    담채처럼 지워져 희미한 능선

    내려와서 보니 지난 몇십 년

    저런 산들을 어찌 넘었나 싶다

    회인 지나면 수리티재 또 한 고개

    그러나 아무리 가파른 산도

    길을 지나지 않는 산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멀리 서서 보면 길보다

    두려움이 먼저 안개처럼 앞을 가리지만

    아무리 험한 산도

    길을 품지 않는 산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길은 언제나 바로 그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는 걸

    - 시 ‘피반령’ 전문

    시인은 시를 먹고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 배고프듯이 시가 고플 때가 있다. 이것은 마치 쇼핑 중독자가 쇼핑을 하는 것과 비슷한 심경이다. 시가 고프지 않은 사람들도 다른 영혼의 양식을 찾아 헤맨다. 그것이 시가 됐건, 성경이 됐건,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영적인 어떤 것을 찾는다. 그것은 산속에 있는 것도, 바다에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다.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원재훈

    1961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로 등단

    시집 ‘딸기’, 소설 ‘바다와 커피’, 산문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등


    한나절이었지만, 도종환 시인을 만나고 오는 길에 나는 깊은 숲 속에서 잠시 머물다 온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어쩌면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신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길을 보고 온 것일까.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쓰든 간에 이제는 그 깊숙한 길을 열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찬 방에 불을 지피기 위해 장작을 패면서도, 나무 쪼개지는 소리에 다람쥐 고라니 같은 짐승과 어제 심은 강낭콩과 감자가 불편해할 것 같아 도끼질을 멈춘다는 도종환 시인. 인간관계에서도 이러한 배려가 있다면 인간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낙원을 만들어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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