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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쓰는 의사 정정만의 섹스 클리닉

노예가 따로 없다? ‘SF형 남성 정조대’

  • 정정만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 일러스트·김영민

노예가 따로 없다? ‘SF형 남성 정조대’

노예가 따로 없다? ‘SF형 남성 정조대’
곁눈질은 남자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인가? 실컷 먹어도 그저 먹을 때뿐, 금세 또다시 밀려드는 그놈의 허기(虛飢)를 어찌하랴. 평생 입에 맞춘 떡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보리개떡이라 할지라도 그 토속적 별미에 군침이 돌고 마는 탐식 본능이 발동한다.

곁눈질하다 눈도장을 찍고 눈독을 들이다 마침내 슬쩍 주워 먹은 다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입을 닦아내곤 하는 걸신(乞神). 그저 기회만 포착되면 ‘무단출입’을 일삼는 버릇. 그래서 사내들을 싸잡아 ‘도둑놈’ ‘늑대’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이렇듯 못 말리는 도벽은 일부일처제라는 ‘족쇄’가 채워진 후에도 꾸준히 자행돼왔다. 수없이 많은 성현이 우왕좌왕하는 남자의 악습을 잡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지만 근절은커녕 더욱 성행하고 있다. 기혼 남자의 ‘자성(雌性) 수뢰’ 행위는 엄연한 배임수재다.

중세의 사실(史實)에 정조대(chastity belt)라는 게 있었다. 자신 소유의 여성을 도난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도둑이 도둑을 막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하지만 그 성과에 대해선 아무것도 증명된 사실이 없다.

정조대가 ‘일웅일자(一雄一雌)’를 보장하는 기능이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의 난세에서 확실한 가정 지킴이로 정착됐을 게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남녀간 갈등과 다툼의 소리가 요란해지는 걸 보면 정조대는 무용지물이었던 것 같다. 하기야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모조 열쇠 복제술이야 하찮은 기술 아닌가.

남자에게 고삐를 매어 말썽 많은 ‘끼’를 꼼짝 못하게 가두어둘 첨단 장치는 없을까? 남편의 성기 성능을 조절하는 절대적 수단을 아내가 장악할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조종기 스위치를 눌러야만 발기되거나 이완되는 음경 보형물이 상품화된다면 한 남자의 물건을 오직 한 여성만이 독점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아내가 남편의 성 기구 작동을 원격 조종할 수 있는 리모컨을 손에 쥐고 비밀번호를 수시로 바꾸어가면서 아내 혼자 사용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기기 내에 컴퓨터 칩이 장착돼 있음은 물론이다.

이 SF형 첨단 기계의 출현으로 남성은 더 이상 ‘정자의 수출’에 관해선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고 오직 내수(內需)에 의존, 죽으나 사나 아내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시대를 맞는다.

이는 엄청난 시련의 도래를 의미한다. 남편의 유일한 최대 수익자가 아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걸신에겐 견딜 수 없는 고난이다. 성행위 일시나 러닝 타임까지 임의로 조종하는 아내. 남편의 장기 출장이나 여행 중에 발동된 여하한 도벽도 완전히 차단된다.

설령 남편이 리모컨을 빼앗아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비밀 과외, 무단 침입, 도난, 접촉사고 등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해 명실상부한 일부일처제를 확립, 치정 문제로 다투는 일이 없고 남녀간 파탄이 없는 바람직한 성 질서를 이룰 수 있는 획기적 수단. 가히 남자의 정조대나 순결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열쇠를 쥔 여성의 전횡이 문제가 될 것이다. 성적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종속돼 평생 구걸하며 얻어먹는 신세로 전락하고, 남자의 역할이 위축된 만큼 남성의 본디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폐단도 예견할 수 있다. 무너진 남성의 재활 수단인 음경 보형물이 오히려 남성의 족쇄로 오용될 우려도 크다. 비록 공상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남편의 성을 점령한 아내는 남편의 그것을 좀더 강하게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현재 발기부전 환자에게 시술되는 음경 보형물은 구부리고 펴면서 사용하는 굴곡형과 굴곡형의 결점을 보완한 수압식 기구가 대종을 이룬다. 수압식 기구는 자연 발기와 거의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주지만 수동식이어서 약간 불편한 점이 있다. 그러나 컴퓨터 기술을 접목한다면 손을 대지 않고 원격 조작할 수 있는 첨단 보형물도 얼마든지 상품화할 수 있을 것이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바꾸는 것처럼 말이다.

펌프질로 발기시키고 손을 빌려 이완시키는 현존 제품보다 훨씬 편리할 뿐 아니라 섹스 파트너의 눈치를 살필 필요조차 없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첨단 기기라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기능과 편의성만큼 불편한 점도 따르게 마련이니까. 남성 주도형 섹스가 어느 시점부터 여성 주도형으로 바뀔지 모른다. 눈만 뜨면 생존 다툼에 전념하다 밤이 되면 아내가 시키는 대로 몸을 놀려야 하는 남자의 노예화. 오로지 순종하는 남자만이 목숨을 부지하는 비극적인 상황도 그려볼 수 있다.

신동아 2007년 6월 호

정정만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 일러스트·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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