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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그들, 아메리카 원주민

  • 김진희 경희사이버대 교수·영미학 cliojhk@khcu.ac.kr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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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부서지지 않는다’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 손승현 사진·글, 아지북스, 344쪽, 2만원

수천, 혹은 수만년 동안 광활한 아메리카를 무대로 종횡무진하며 살던 사람들이 있다. 물질보다는 정신을, 소유보다는 공유를 중시했던 그들은 자연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삶의 일부로 믿었다.

그러나 뒤늦게 그 땅, 곧 ‘신대륙’을 ‘대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유럽인이 나타나면서 그들의 삶은 위태로워졌다. 유럽인의 ‘대발견’이 있고 나서 400여 년 지난 1890년, 많게는 1억, 최저치로 잡아도 2000만명 이상이던 원주민의 수가 20여만명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백인들이 지정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했으나 보호구역마저 백인들의 땅과 부(富)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온전히 ‘보호’되지 못했다.

바로 그 시점에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이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거나, 혹은 ‘저항’을 시도했다고 백인들이 믿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망령 춤’이 원주민들 사이에 확산된 것이다. 백인들은 그 춤을 백인에 대한 총공격의 전야제 정도로 간주했다.

결국 1890년 12월15일, ‘망령 춤’ 확산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된 ‘앉은 소(sitting bull)’ 추장이 ‘운디드 니’에서 처형됐고, 이에 불안을 느끼고 이웃 부족에게 도움을 요청한 뒤 황망히 이동하던 라코타 부족민들 역시 ‘운디드 니’에서 백인 병사들의 공격을 받고 포화 속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백인 병사들이 폭도라고 믿었던 희생자들은 실상 늙고 병든 ‘큰 발(big foot)’ 추장이 이끈 갓난아이와 여성, 노인을 포함한, 한마디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300여 명의 원주민 군상일 뿐이었다.

‘망령 춤’과 원의 의미

‘운디드 니’ 대학살 이후 원주민들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인디언 보호 구역’ 안에서 ‘순응하며’ 사는 것으로 보였다. 1890년대 말에 20만명으로 줄었던 인구는 2000년대 들어 250만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본래적 삶의 터전과 삶의 방식이 박탈된 채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주거가 제한된 원주민들은 실상 미국 내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이 약한 마이너리티로 남았다. 마약 복용과 우울증, 자살률과 유아사망률 1위, 실업률 60% 이상, 보호구역에 거주하는 원주민 다수가 고혈압 및 유전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등 몇 가지 지표는 이들이 삶의 의욕과 희망을 상실한 채, 근근이 명맥만 유지할 뿐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그러나 사진작가 손승현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말타기-미국 원주민들의 아름다운 도전과 희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사진 에세이집의 제목은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이다. 원은 무엇을 의미할까? 작가는 “라코타 사람들에게 원은 위대한 정령(精靈)을 의미한다. 원주민의 모든 생활 속에는 원이 있다. …세상의 원리가 원의 형태인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 원은 운디드 니에서 숨진 원주민들이 추던 ‘망령의 춤’에서도 나타난다. 미네소타 주 북부 인디언 거주지역에서 구전(口傳) 역사 프로젝트를 주관한 켄트 너번이 만난 원주민 노인은 망령의 춤과 원의 의미, 그리고 운디드 니 학살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그것이 우리가 저지른 죄였네. 너무 깊은 믿음을 갖고 있었던 죄. …우리가 계속 망령의 춤을 춘다면 들소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지. 조상도 다시 보게 될 거고 다시 옛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일세. 우리 인디언은 계속 춤을 추었네. …원을 지어 지쳐서 더 서 있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춤을 추었네.”(‘상처난 무릎, 운디드 니’, 시학사). 손승현의 책은 바로 그와 같은 원에 대한 원주민의 열망을 담고 있다.

원주민 말로 ‘오마카 토카타키야(Omaka Tokatakiya)’, 즉 ‘미래를 향한 말타기’라고 하는 이 여행은 사우스 다코타 주의 라코타 족 후예들이 운디드 니에서 학살당한 조상의 넋을 기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1986년부터 시작한 행사다. 샤이엔 강 보호구역의 브리저에서 운디드 니까지, 큰 발 추장이 1890년에 지나간 길에다 스탠딩 록 보호구역의 ‘앉은 소’ 캠프를 이어 총 300마일을 매해 12월15일부터 14일간 강행한다.

미국 문명의 현주소

실상 ‘미래를 향한 말타기’는 1970년 이후 시작된 미국 원주민 운동의 연장선이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삶의 반경과 행동 양식을 제한하는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American Indian Movement·AIM)을 결성했다. 특히 AIM이 주도한 1973년 운디드 니 점거사건은 원주민의 삶과 그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미국 주요 언론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왜 원주민들은 운디드 니를 점거했고, 또 그곳을 향해 말달리기를 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운디드 니가 “원주민들의 삶과 꿈이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그들의 땅을 찾게 될 것이라는 희망, 언젠가 버팔로가 돌아오고, 다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자유롭게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망령 춤’을 췄고, 바로 그 이유로 죽임을 당한 곳이 운디드 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운디드 니를 향한 원주민들의 말타기 여행은 일종의 성지순례와 같다. 원주민들은 조상들이 갔던 그 길을 그대로 좇아가며 조상들의 좌절된 희망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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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경희사이버대 교수·영미학 cliojhk@kh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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