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결단력, 추진력 갖춘 한국이 ‘진짜 아시아’

  • 타릭 후세인 경제칼럼니스트 tariq@diamond-dilemma.com

    입력2007-07-10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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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9월호부터 칼럼을 쓴 타릭 후세인씨가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감한다. 그는 그동안 이 칼럼을 통해 ‘시장과 멀어지면 부패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창조적인 국민성을 지닌 한국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관료적인 문화라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번 호에선 그가 ‘한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써주었다. 그동안 애정 어린 비판을 해준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
    결단력, 추진력 갖춘 한국이 ‘진짜  아시아’
    2년반 전, 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글로벌 컨설팅 회사 ‘부즈앨런해밀턴’을 그만뒀다. 이번 호 ‘신동아’에 실린 나의 마지막 칼럼은 이러한 여정의 끝이 될 것 같다. 한국어와 영어로 된 책을 출간한 이후, 나는 다양한 강연과 세미나에 참석했고, 약 1년간 ‘신동아’에 칼럼을 썼다. 아쉽지만, 내겐 너무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이제 내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한국을 사랑하는 6가지 이유

    지난 수년간은 내게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책 서문에서도 밝혔듯 나는 내 책이 한국인에게 조금이나마 변화의 필요성을 깨우쳐주고,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이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믿는다.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교육 문제처럼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의 현재 상황을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적인 견해조차 많은 분께서 건설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다. 바로 이 점이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호 칼럼에선 한국인의 차별화된 장점을 언급하고 싶다. 한국인의 장점이야말로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점임은 물론,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고 머무는 가장 큰 이유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책을 쓰게끔 했던 동기다. 나는 많은 비판 속에서도 한국이 결국 머지않은 장래에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1. 결단력과 추진력

    지난해 나는 미군 사령관의 초대를 받아 용산에 있는 그의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였던 그의 부친도 와 있었다. 그는 수십년 전 한국을 떠난 이후 첫 방문이라고 했다. 그는 초고층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 경관을 둘러보면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53년 전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전쟁으로 초토화된 흔적이 전부였는데…. 그 때는 우리가 왜 희생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 지금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보니 그때 우리의 희생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데 말이다. 도대체 한국인이 그동안 어떻게 했기에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건지 얘기해줄래?”

    나는 두 가지 해답이 있다고 했다. 우선 경제학자들이 온갖 복잡한 이론과 주장들로 한국의 경제 발전을 설명하고 있다고 했고, 둘째는 훨씬 간단하면서도 자명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인의 결단력과 추진력이다. 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한국인의 숨은 저력이다.

    그렇다면 그런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일각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와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일부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도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지만, 한국처럼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일궈내지 못했다. 또 1980년대는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고, 재벌그룹의 독점에 반대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한 이도 많았다.

    따라서 한국인에게는 결단력과 추진력을 일깨우는 무언가 본질적인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한국의 환경적 요인들이 한국인의 본질적 특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한국인의 감정 표현이 분명하고 쉴 새 없이 일하는 기질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농업 국가로서 주식인 쌀 한 종류만 재배했기 때문에 일년 내내 쉴 새 없이 일하고 항상 근면한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일본인의 수동적 기질

    결단력, 추진력 갖춘 한국이 ‘진짜  아시아’

    한국에서 개발한 로봇과 악수하는 홍콩 행정장관 도널드 창.

    한국인의 본질적인 근면성이 지금처럼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얘기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깊이 연구한 한 저명인사와 얘기를 나누던 중, 그는 “15년간의 잘못된 경제 정책과 정치 스캔들을 생각해보면 일본 국민의 수동적인 기질이야말로 가장 알 수 없는 것 중 하나”라고 꼬집은 적이 있다. 나는 한국인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일본이 빠진 위기를 겪지 않고 나라를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2. 배움과 변화에 대한 열망

    한국인의 추진력은 배움과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오늘날 한국의 잘못된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지만, 학부모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 자체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국가의 국민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소비와 여흥을 위해 쓴다. 그러나 한국인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에 투자하는 비중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다. 이는 매우 큰 경쟁력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야말로, 한국이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

    몇 년 전 태국의 IT 산업 발전을 위해 태국 정부와 함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당시 태국 관료들이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한국이 어떻게 발전을 이룩했으며 또 태국이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나는 태국 정부가 한국이 했던 몇 가지 정책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똑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IT 산업을 발전시킨 원동력은 풍부한 고급 엔지니어들이었다.

    실제로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은 한국의 고급 인적 자원을 가장 큰 자산으로 꼽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고급 인력들이 복잡한 규제와 강고한 관료제, 강성 노조와 외국 자본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등에 밀려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효과’

    한국에서의 배움은 비단 수동적인 학습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수준까지 나아갔고, 변화에 대한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한국은 이러한 본질적인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믿음 탓에 경고의 사인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외환위기는 한국인에게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안겨준 동시에 스스로를 일신하고 변화에 대한 개방성을 더욱 고취할 수 있도록 작용했다. 한국 기업들은 외국 기업들로부터 배우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고, 한국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국민도 고용 창출과 경제 발전을 위해 외국 자본을 더욱 개방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외환위기가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지만, 한국은 앞으로도 이러한 변화에 대한 개방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창조성과 혁신

    한국인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다. 한국인이 지닌 추진력과 호기심은 고급 지식과 IT 인프라에 힘입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을 형성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의 한 이사는 “한국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들, 그리고 서비스는 실로 놀랍다”고 혀를 내두른 바 있다.

    많은 혁신이 그러하듯, 기술은 새로운 사고방식(최근 함께 일한 회사의 경우, 풍력 발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적용했다)과 자재, 시공, 제조 및 생산 프로세스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을 필요로 한다. 한국인은 이처럼 혁신적인 기술과 지속적인 개선 역량을 모두 갖고 있다. 한국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이 이처럼 창조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나의 견해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아시아인이 기질적, 혹은 유전적으로 창조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지닌 잠재력과 창조성을 완전히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이슈가 크게 두 가지 정도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단력, 추진력 갖춘 한국이 ‘진짜  아시아’

    한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첫 번째 이슈는 교육에 관한 것이다. 이미 본 칼럼을 통해서도 언급했듯 한국인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보다는 훈련에 치우쳐 ‘카피캣(모방범) 마인드’를 양산해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지선다형 시험 방식으로는 이러한 역량을 제대로 개발하기가 어렵다.

    교실과 기업의 관료주의

    또 “내가 얘기하는 대로 듣기만 하라”는 식의 일방적인 수업 방식으로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통한 토론식 수업이 자리잡기 힘들다. 인간의 본질적 특성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기 위해서는 성공에 따른 보상이 실패로 감수해야 할 위험보다 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

    아이디어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아이디어로서의 가치도 생명력을 잃는다. 혁신적인 한국 IT산업에 매료된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임원은 “(한국인이) 실로 놀라운 아이디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투자자나 소비자가 왜 그 기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논지는 영어 구사 능력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창조성을 가로막는 두 번째 이슈는 서열을 중시하는 관료주의적 문화다. 이는 군부독재에서 경제 발전을 이룩한 역사적 사실과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창조적 인재를 발굴함으로써 삼성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피력했다.

    그의 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고도 효과적인 관리 조직의 수장이다. 모든 사안이 계획대로 준비되고 예측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 삼성이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관리 시스템이 창조성과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창조성을 일깨우기 위해 삼성은 현재의 관리 조직을 완전히 뒤엎거나 혹은 통제력을 상실하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조직 내에서 소규모의 창조적 집단을 육성해야 한다.

    4. 여성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한국인은 남성, 여성, 그리고 아줌마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농담을 들은 당사자들은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는 이것이 한국 경제에 이바지한 한국 여성의 저력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줌마라는 집단 그 자체의 힘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으로 국토가 파괴되고 남성들이 징집을 당하면서 여성들의 역할이 커지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Trummerfrauen(암석을 짊어진 여성들)’은 맨손으로 폐허를 재건하는 데 기여한 여성을 의미한다. 독일의 여성들처럼 전후 수십년간 한국 여성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국가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유명한 프로페셔널 회사의 파트너로 일하는 한 한국인 친구는 “한국의 여성에 대해 쓰려면, 그들을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묘사해서는 안 된다”며 “이는 그들의 역할과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어머니는 나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 여성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국이 지식사회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이 여전하고, 선진국보다 여성 인력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다.

    여성들은 한국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경청, 팀워크와 유연성,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 선진 기업들은 대부분 채용 과정에서 여성 인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화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여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줌마의 힘!

    결단력, 추진력 갖춘 한국이 ‘진짜  아시아’

    대한민국의 저력, 아줌마들. 사진은 ‘아줌마 페스티벌’에 참가한 중년여성들.

    반면 한 외국인 CEO가 얘기한 것처럼,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훨씬 관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통해 그들의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을까. 몇 주 전, 이화여대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강연이 끝난 후 한 학생은 “여성의 역할에 대한 지적에 공감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성들이 꿈을 펼치고 세계로 나아가게끔 하는 데 관대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원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되물었을 때, 대부분은 컨설팅회사나 P·G 같은 외국계 소비재 회사, 혹은 구글과 같은 신흥 인터넷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기업들은 이처럼 역량 있는 여성 인력을 끌어들이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외국계 기업을 한국으로 끌어들여 여성이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삼성

    1996년 여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을 견학했다. 당시 공장은 삼성의 미래 비전을 밝히는 문구로 도배돼 있다시피 했다.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던 한 외국인은 “한국인들이 김치를 너무 많이 먹었나보다”는 농담을 했다. 그는 아마 한국인이 미쳤나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삼성은 그야말로 글로벌 리더로서 자리를 잡았다. 11년이 지난 지금 수원과 기흥의 삼성전자 공단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공단 중 하나이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룩한 한국의 경제 부흥은 현대의 성공 스토리였다. 그러나 이후 삼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성은 시스템과 프로세스, 그리고 무엇보다 인재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를 통해 다른 어떤 재벌 그룹보다 지식 기반 조직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이런 경영철학은 삼성이 종업원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함으로써 한국 주식회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삼성의 과제’

    삼성은 높은 급여를 제공하고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등 종업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에 남아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 데 기여한 종업원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았다. 임원까지 오르지 못하고 퇴직한다고 해도 그동안 축적한 지식과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등에 업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한국에는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한국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 것까지 폄훼해서는 안 된다. 삼성은 십수년간 관리자를 양성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리더십 사관학교’로서 모범사례를 보여줬다.

    또 한국 기업도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줘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여줬다. 종업원들에게 선진 기업들이나 제공할 수 있는 매우 경쟁력 있는 보상을 제공해 우수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들였다.

    그렇다면 삼성은 한국 기업의 리더로서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삼성이 변화를 감수해야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지금 취하고 있는 방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의 우수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국가나 기업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이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보다 유연한 근무조건을 제시하고,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는 삼성이 제공하는 탁월한 교육 방식과 높은 급여만으로 일방적인 충성심을 강요하기 힘들 것이다. 세계 곳곳엔 기회가 너무나 많다. 게다가 삼성의 파워가 막강해질수록, 경제 발전과 한국 사회를 주도적으로 리드해야 할 책임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삼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미 그러한 본보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나 사업 포트폴리오가 그렇다. 삼성이 제공하는 서비스 사업의 수준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삼성이 향후에도 과거에 이룬 것과 같은 성공을 바란다면 먼저 이러한 이슈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6.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모든 분석과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한국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무당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놀랍고 매력적이지만 형용하기에는 무척 어렵다. 또한 한국에 대한 나의 존경심과 경외심도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영어로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affection(애정)’이라고 하겠지만, 한국어로 ‘정(情)’이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 마땅히 대체할 만한 표현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affection 혹은 情

    나는 이를테면 한국인에게 매우 특별한 ‘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쩌면 한국에 사는 한 외국인의 표현처럼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가진 것”이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이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진정한 아시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한국 문화, 음식, 역사처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아직 발견된 적이 없는 숨은 보물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결국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고, 또 그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잠재력과 기회를 믿고 있다.

    결단력, 추진력 갖춘 한국이 ‘진짜  아시아’
    타릭 후세인

    독일 출생

    영국 런던정경대 경영학과 졸업,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

    부즈앨런해밀턴 한국사무소 이사

    現 Maxmakers 한국대표

    저서 : ‘다이아몬드 딜레마’

    수상 : 2006 Global Korea Award


    그렇다면 나의 다음 행보는 어디인가. 책을 쓴다는 것은 한 가족, 특히 대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매우 벅찬 일이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것처럼, 나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맥스메이커라는 부동산개발 자문회사의 동북아시아 대표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 사업의 주된 목적은 한국과 그 인접 지역에 세계적 수준의 명소, 이를테면 리조트나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시설, 혹은 복합 개발 지역이나 혁신적인 상업 지구를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책에서 쓴 것처럼 한국이 호텔이나 레저, 관광산업과 같은 서비스업에 있어 더욱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이를 위해 나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세계적 수준의 사업을 영위해 한국의 가장 독창적이고 문화적이면서도 지적인 자산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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