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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더니…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더니…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더니…

선진국의 성장 신화 속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꼬집어 쓴 장하준 교수의 저서들.

초등학교 3, 4학년생인 우리집 두 꼬마가 요즘 중국어를 배운다. 얼마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질문을 던졌다. 평소 종알종알 따지기 좋아하는 큰녀석이 대략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짝퉁의 나라다. 휴대전화도 텔레비전도 자동차도 다 우리나라 것 베끼지 않나. 중국은 자존심도 없나.” 젊은 중국인 여선생님은 이 말에 크게 상처를 받았고, 한국말이 서툴러 차근차근 반박을 못하겠으니까 덜컥 화를 낸 모양이다. 그러자 이번엔 작은녀석까지 나서 “우리 누나 말이 맞지 않으냐”고 하니 결국 선생님이 울며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 일로 두 녀석은 학원에서 반성문을 썼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자기들이 뭘 잘못했느냐며 억울해 했다.

사실 아이들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이 한국산 제품 및 부품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시설까지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장 사례를 보여주었다. 애미콜(애니콜), 큐큐(마티즈), 아번쩌(아반떼), 코코파이(초코파이) 등 한국 히트 상품들을 베낀 중국제 짝퉁의 범람은 이미 애교 수준을 넘어섰다. 하루 걸러 이런 기사가 나오니 아이들 눈에도 중국이 ‘돈 때문에 자존심을 버린 나라’ 쯤으로 비쳤지 싶다.

한국도 한때 모방의 귀재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두 녀석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남의 기술을 모방해 짝퉁을 만들었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기술로 우리만의 제품을 개발해서 오늘날 반도체, 휴대전화, 텔레비전 등에서 세계 최고가 된 것이다. 중국이 우리보다 뒤늦게 출발해 아직 모방하는 수준이지만 곧 무섭게 따라와 우리를 추월할 수도 있다. 중국은 그만큼 가능성이 많은 나라이고, 앞으로 중국과 교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너희들이 지금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것이다. 또 나라마다 발전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잣대로 다른 나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비하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아무런 반응 없이 듣기만 하던 아이들은 다음날 아침 눈뜨자마자 중국어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쓴다고 했다. 지금까지 두 녀석이 중국어교실을 빼먹지 않고 다니는 것을 보면 충분히 납득하고 반성한 것 같다.

이 소동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는 옛날 일을 떠올렸다. 남편은 1960년대 전반, 나는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우리가 자란 1960~1970년대는 말 그대로 ‘한강의 기적’이 현실이 되며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시기다. 변화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네 살 차이인 남편과 나의 경험치가 다를 정도다. 전차를 기억하는 세대와 전차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세대의 차이다.

초등학생 때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심에 이물질이 없어 부드럽게 써지는 일제 톰보 연필이었고, 중학교 때는 펜탈 제도 샤프펜슬에 열광했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국가적 사명감이 없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모를 졸라 얻어냈을 물건들이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환타 캔과 m·m 초콜릿에 먼저 맛을 들인 내게, 물감 탄 설탕물 같은 국산 음료와 소풍 때 가져가면 녹아내려 짐만 되는 국산 새알 초콜릿이 탐탁할 리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예 이런 물건이 없을 땐 몰라도 이제 국산품이 나왔으니 써줘야 한다고 ‘애국심’을 강조하셨다. 정말 개구리 올챙이 시절 이야기다. 그만큼 한국은 짧은 기간 눈부시게 발전했다.

최근 출간된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부키)도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1963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때 박정희 장군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1981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하겠다고 공표했을 때 사람들은 망상에 가깝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다들 터무니없다고 여기던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는 계획보다 4년이나 일찍 달성됐다.

경제 선진국의 부끄러운 과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1인당 소득은 구매력 관점에서 볼 때 14배 증가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얻는 데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2세기가 걸렸고, 미국은 1860년대부터 1.5세기가 걸렸단다. ‘한강의 기적’이 왜 그토록 전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눈부신 결과물인지 알 수 있다.

우쭐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하준 교수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한 까닭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우리 스스로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뤘는지 잊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자들에게 물으면 답은 간단하다. 자유시장 원칙에 따랐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런가? 신자유주의자들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 동안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 전략을 추구했다고 선전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에 무엇을 했나. 민간 부문과 협의 아래 특정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관세나 보조금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 지원을 통해 그 산업이 국제 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하도록 육성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기업의 생명줄인 대출까지 관리할 수 있었고, 일부 대형 사업은 국영 기업에 의해 직접 추진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정부가 외국인 투자에 대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필요하다면 ‘역설계(제품을 놓고 설계를 하는 것, 정설계의 반대)’를 격려한 것은 물론 특허 상품 ‘위조품 제조’를 눈감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이단적인’ 정책으로 부유해진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저자는 오늘날의 선진국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배치되는 정책 처방을 토대로 부자 나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의 본거지라고 하는 영국과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장하준 교수는 앞서 ‘사다리 걷어차기’(부키, 2002)에서 거의 모든 부자 나라가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와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해놓고, 이제 와서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자유시장, 자유무역 정책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표현했다. ‘사다리 차기’는 ‘유치산업 보호론’의 시조로 알려진 19세기 독일 경제학자 리스트의 저서 ‘정치경제의 국민적 체계’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리스트는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교하는 것을 빗대어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이번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바뀌었을 뿐 주장하는 바는 일관된다.

착한 사마리아인 가능할까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마리아인들처럼, 오늘날 부자 나라 사람들 가운데에는 가난한 나라의 시장을 장악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설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있다. 나아가 자신들이 권장하는 정책이 개발도상국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이 많다. 이것이 380쪽에 이르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핵심내용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된 새로운 국제무역 체제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치자. 그것이 올챙이가 영원히 개구리가 될 수 없게 만드는 족쇄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관세율을 높이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고 외국인의 지적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는 불법 복제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가.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선 ‘사악한 삼총사(IMF와 세계은행, WTO)’와 전면전을 치러야 하는가. 우리의 올챙이 시절을 떠올리며 무섭게 추격해오는 후발주자들의 불법 복제를 너그럽게 눈감아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1947년 마셜플랜이나 1970년대 신자유주의 이전처럼 선진국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마지막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듯하다. 그러나 마라톤에서 겨우 반환점을 돈 선수가 결승트랙에 들어선 선수에게, 후발주자들을 생각해서 조금만 천천히 뛰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구차하긴 하다.

신동아 2007년 11월 호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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