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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소통’을 꿈꾸는 작가 김연수

벽돌 같은 문장으로 빚어낸 ‘떨켜’ 같은 소설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소통’을 꿈꾸는 작가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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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나이에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우리 문단의 별로 떠오른 소설가 김연수는 확실한 자기 독자를 가진 몇 안 되는 작가다.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의 소설은 차곡차곡 쌓여 담이 되고 집이 되는 벽돌처럼 단단하고 견고하다.
‘소통’을 꿈꾸는 작가 김연수
나쁜 일들은 한꺼번에 몰아닥친다. 좋은 일은 몰라도 나쁜 일의 경우 이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2007년 11월8일 목요일 오전과 오후는 정말 개 같은 날이었다. 오래전에 도착한 우편물인 ‘자동차 정기검사 통지서’를 그날 아침에야 확인했는데, 하필 검사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부터는 고액의 벌금이 부여된다. 불행 중 다행이다 싶어 아침 일찍 검사소에 가니, 불합격 판정이 나왔다. 자동차 출력이 수준 미달이었다. 어쩐지 요즘 차가 빌빌댄다 싶었다.

허겁지겁 정비소에 가서 불합격 통지서를 보여주니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가격이 예술이다. 정품은 110만원, 중고는 45만원이란다.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 있는 내가 불쌍했는지 정비사가 현찰을 주면 40만원까지 해줄 수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에 50만원을 들여 차를 정비했는데….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매일 원고를 보내는 곳에서 원고가 너무 딱딱하니 다시 쓰란다. 정비소엔 나중에 오겠다고 하고 허겁지겁 집필실로 돌아와 급하게 원고를 고쳐 다시 보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배가 고팠지만 뭘 먹고 싶지 않아 공원 근처의 커피 하우스에 가서 낙엽 지는 거리를 바라보며 잠시 쉬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온다. 다시 보낸 원고 역시 딱딱하다는 말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커피를 반쯤 마시다 다시 집필실로 돌아와 처녀 볼기짝 살처럼 무지하게 부드러운 원고를 썼지만, 컴퓨터에 저장을 잘못했는지 원고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 정말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싶었다. 원고가 낙엽 같으면 다시 줍기나 하지, 막막한 우주공간과 같은 컴퓨터 화면 안에서 적어도 내 실력으로는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세계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 고 박정만 시인의 마지막 시 ‘나는 사라진다. 저 막막한 우주의 공간으로’가 떠올랐다. 방금 쓴 야들야들한 원고가 건방지게 한 고독한 시인 흉내를 낸다.

“제기랄” 하면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는데, 모서리에 부딪혀 손가락을 삐었다. 겨우 마감시간을 맞추어 다시 원고를 써서 보내니 오후 4시10분. 그런데 끝까지 속을 썩인다. 하필 때를 맞춰 집필실 인터넷이 고장 났다. 가까운 피시방으로 가 원고를 보냈다. 사용료 700원을 내고 나오는데 기분이 참담했다. 아, 오늘 같으면 인생 못 살겠네 싶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10분까지 먹은 것이라고는 커피 반 잔. 배가 고픈데 화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집필실로 돌아와 석가모니 흉내를 내면서 책장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명상에 들었다. ‘생은 고행이고, 나는 보리(깨달음)를 얻어야 된다’라고 되뇌자, 오늘 저녁 6시30분에 김연수(金衍洙·37)를 만나기로 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이번에 펴낸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작가 김연수는 알고 있었구나.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인생은 기러기처럼 날아가야 된다는 걸. 그래서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야 된다는 걸. ‘그래 기러기처럼 날아가 김연수를 만나야 된다’를 되뇌며 그날의 후반생이 아름답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읽는다. 이번 장편소설 첫 페이지에 인용된 시인데, 작가는 그 시의 한 구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소설 제목을 따왔다. 메리 올리버는 아직 국내에 작품이 번역되지 않은 시인이다. 김연수는 이 시인의 시와 산문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영문과 출신이고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자신이 번역을 해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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