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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메멘토’ ‘살인자의 건강법’ 그리고 ‘살인자의 기억법’

  •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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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김영하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한때 연쇄살인마였던 비밀을 홀로 간직한 채 치매에 걸려 버린 주인공 김병수로 분한 설경구.[쇼박스 제공 ]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어쩌면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 문구 아래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2013년 발표된 이 소설을 읽으며 든 짓궂은 생각이다. 열다섯 나이에 폭군 아비를 살해한 이후 30년간 꾸준히 살인을 저질러 오다가 마지막 희생자의 외동딸을 입양한 뒤 살인 행각을 멈춘 치매 노인의 내면독백이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살인자의 기억법’의 성취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 성공한 데 있다.

작가는 치매에 걸린 칠순 노인의 뇌리에서 명멸하는 단상을 콩트처럼 그려내며 섬뜩한 보랏빛 농담을 빚어낸다. 주인공 김병수는 문화센터에서 시를 가르치는 얼치기 시인을 보면서 ‘나 같은 천재적 살인자도 살인을 그만두는데 그 정도 재능으로 여태 시를 쓰고 있다니’라며 살의를 느낀다. 또 ‘너무 오래 사는 위험’에 대비해두라는 보험설계사의 말을 들으면서 ‘그 위험을 100% 줄여주는 일은 따로 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가 하면 TV에 나와 연쇄살인범의 특징에 대해 떠드는 전문가를 보며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고 말한다.

권투에 비유하면 회심의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툭툭 날리는 잽이다. 이 잽이 너무 가벼우면 안 되기에 작가는 ‘반야심경’과 ‘금강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이디푸스’ 같은 동서의 고전은 물론 서정주의 시 ‘신부’와 김경주의 시 ‘비정성시’까지 인용하며 독자의 의표를 찌르고 들어온다. 심지어 25년간 잠자던 병수의 살인 본능을 일깨운 젊은 살인마가 딸에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한다며 “그놈은 푸른 수염”이라고 말한다. 푸른 수염은 새장가를 가기 위해 끊임없이 아내를 죽이는 서양 동화 속 연쇄살인마다. 1940년대 태어나 지방 소도시 무명의 수의사로 정체를 감춰온 연쇄살인마가 과연 이런 텍스트를 독파하는 것도 모자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황제’ 같은 클래식을 즐겨 들을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 소설은 하나의 문학적 농담으로 기능한다. 제목 자체가 벨기에 여성작가 아멜리아 노통브의 데뷔작인 ‘살인자의 건강법’(1992년)을 패러디했을 가능성이 크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인터뷰하게 된 여기자가 그가 실은 살인마임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두 작품은 문학에 정통한 살인마, 치명적 곤경에 처한 살인마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보랏빛 농담 vs 핏빛 진담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발표한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과 벨기에 여성 작가 아멜리아 노통브가 1994년 발표한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동아 DB]

9월 6일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4년 전 발표된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그런데 소설이 보랏빛 농담이라면 영화는 핏빛 진담이 되고 말았다. 치매에 걸린 늙은 연쇄살인마 김병수(설경구)와 그의 딸 은희(설현)를 노리는 젊은 연쇄살인마 박태주(김남길)의 대결을 한껏 부각했기 때문이다.

영상매체는 사실주의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그래서 연기 역시 배우가 그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는 메소드 연기법을 최고의 연기로 칠 때가 많다. 병수 역의 설경구는 강박증이 심한 늙은 연쇄살인마 연기를 위해 10㎏ 넘는 체중 감량과 한쪽 눈가만 바르르 떠는 디테일한 연기로 관객을 소름끼치게 만든다. 설경구의 김병수는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유머 감각도 없다. 그래서 남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난 뒤 한참 후에 폭소를 터뜨린다. 실제의 살인마라면 그럴 법하다.

하지만 김영하가 창조한 김병수는 그 반대다. 존재 자체가 농담인 사람이다. 소설 속 김병수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슬픔은 느낄 수 없도록 생겨먹었지만 유머에는 반응한다.” 그래서 김영하가 창조한 병수의 독백에는 위트가 번뜩인다. “연쇄살인범도 해결할 수 없는 일: 여중생의 왕따” 같은 표현이다.

반면 원신연 감독의 영화 속 병수는 유머에 반응하는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슬픔까지 느낀다. 죄의식 때문이다. 수녀가 된 누나(길해연)를 찾아가 한참을 있다가 돌아오는 장면 속 병수는 회한에 가득 차 있다(소설에서는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소설과 다른 갈림길에 들어선다.

소설 속 병수는 쾌감을 좇아 살인을 저지르지만 영화 속 병수는 벌을 주기 위해 살인을 한다. 이를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 은희 생모에 대한 설정이다. 은희 엄마는 병수 살인 행각의 마지막 희생물이다. 소설에선 문화센터 여직원인 은희 엄마를 종아리가 예쁘다고 죽이고 나서 처음 죄책감을 느낀 병수가 고아가 된 은희를 입양한다. 그 와중에 차량 전복사고로 뇌에 충격을 받은 뒤 살인을 멈추게 된다.

영화 속 은희 엄마는 병수의 아내였지만 바람을 피우다 간통남과 함께 병수의 손에 살해된다. 그와 함께 은희가 자신의 친딸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은희를 죽이려고 급히 차를 몰고 가다가 전복사고로 뇌에 충격을 받은 뒤 살인을 멈추게 된다.

왜 이런 설정의 차이가 발생했을까. 영화를 ‘착한 살인마 대 나쁜 살인마’의 선명한 선악 구도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소설에선 조연 격이던 젊은 살인마(소설에선 박주태, 영화에선 박태주)의 비중이 주연급으로 커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이후는 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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