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자연 모방하기와 그 너머

형광 토끼부터 매트릭스까지… 조작 가능한 ‘인공 생명체’?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8-02-06 1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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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 원하는 대로 염기서열을 조작할 수 있다면? 합성생물학은 유전자를 활용해 생물체를 재설계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은 생물 조립은 물론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유전체를 합성해 만든 새로운 생명체는 생명일까, 아닐까? 먼 얘기지만 ‘생명’의 정의에 대한 명쾌한 설명 없이는 어떤 인공 생명체라도 장수하기 힘들 것이다. 틀림없이 불거질 ‘윤리논쟁’의 등쌀에 못 이겨서 말이다.
    자연 모방하기와 그 너머
    정부 예산을 받아 순조롭게 진행되던 인간 유전체 계획에 뛰어들어 특허권을 갖겠다는 둥 평지풍파를 일으킨 바 있는 바이오 벤처사업가 크레이그 벤터가 2007년 중반부터 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소식을 슬쩍슬쩍 흘리고 있다. 몇 주 내로 인공 생명체를 합성할 것이라고 했다가 적어도 몇 달은 걸릴 것이라고 번복하더니, 또 말을 바꿔 몇 달째 인공 생명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적 파장을 줄일 충격완화 요법을 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벤터는 플라스틱, 옷, 의약품, 자동차 연료 등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생물체를 이용해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컴퓨터로 플라스틱, 섬유, 약물, 연료 등 필요한 것을 만드는 유전자를 지닌 염색체를 설계한다. 그 설계에 따라 자동으로 DNA를 조립해 새로운 염색체를 만든다. 그 염색체를 세균에 넣어서 대량 증식시킨다. 그러면 석탄과 석유 같은 탄소 연료를 대신할 연료를 생산하는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 생물은 광합성을 통해 만든 당(糖)을 연료로 변환시킨다. 광합성은 대기의 이산화탄소에서 얻은 탄소로 당을 만드니까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것은 재생 가능한 방식으로 새로운 연료를 다량 생산하는 것이므로 지속 가능한 발전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인류가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읽는 수준을 넘어 원하는 대로 염기 서열을 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컴퓨터로 원하는 서열을 설계해 화학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작위 돌연변이를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나는 다윈 진화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작위가 아니라 계획적인 설계를 통해 한순간에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의 연구진은 이미 한 세균의 염색체를 다른 세균에 넣어 종 자체를 바꾸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생물체를 재설계하는 분야를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고 한다. DNA를 재조합하는 유전공학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이 용어가 쓰인 적이 있지만, 지금의 합성생물학은 자연계에 없는 것을 인위적으로 합성한다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인다. 스티븐 베너와 마이클 시스모어는 합성생물학자를 두 부류로 나눈다. 인공 생명체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성분자를 이용해 자연적인 생물의 창발적 행동을 재연하는 부류와 자연적인 생물에서 교체 가능한 요소들을 찾아서 인위적인 기능을 지닌 생물을 조립하려는 부류가 있다. 합성생물학은 이미 에이즈 바이러스 검출 도구 등 감염병 진단에 활용되고 있으며, 항(抗)말라리아제를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장난감’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합성생물학 실험



    2000년 미 프린스턴대의 마이클 엘로위츠와 스터니슬러스 레이블러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은 ‘lacI’, ‘tetR’ ‘cI’이라는 세 유전자를 이어 붙였다(간단히 A, B, C라고 하자). 세 유전자는 각각 단백질을 만드는데, 그들은 세 유전자 앞에 적당한 조절인자를 붙여서 각 단백질이 다음 유전자의 활성을 억제하도록 했다. 즉 A의 단백질은 B를 억제하고 B의 단백질은 C를, C의 단백질은 거꾸로 A를 억제한다. 따라서 음의 되먹임 고리가 완성된다.

    그들은 초록빛 형광을 띠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포함된 회로도 따로 마련해 B의 단백질이 억제되도록 했다. 그런 다음 둘을 대장균 속에 넣었다. 그러자 B의 단백질 농도가 변하면서 세포의 형광 현상이 주기적으로나타났다.

    자연 모방하기와 그 너머

    규소를 토대로 한 생명체, 컴퓨터에 정보형태로 든 생명체 등 상상 속의 생명체는 다양하다. 영화 ‘매트릭스’의 포스터.

    그들은 세포 내의 수많은 분자로 이뤄진 무수한 상호작용망을 이해하려는 시도로서 이 단순한 회로를 설계했다. 이 회로는 단백질과 mRNA의 농도와 분해 속도 등을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자연계에서 본래 다른 맥락에서 쓰이는 유전적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운 기능을 지닌 인공 유전자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절이 가능한 회로의 한 사례다. 또 형광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와 유기 화합물을 이용해 인간과 틱택토 같은 간단한 게임을 하는 논리회로를 만든 사례도 있다. 상호 억제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두 유전자를 이용해 스위치를 만든 연구도 있다. 한쪽의 활성을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가면 그쪽 유전자의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다른 유전자는 억제되는 식이다.

    세포 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면 이런 단순한 회로의 연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통합된 전체 계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세포 자체는 너무 복잡하다. 게다가 유전체에는 과거에 쓰였다가 용도 폐기된 유전자의 잔해나 그다지 필요 없는 염기서열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런 것들을 다 제거하면 꼭 필요한 것만을 지닌, 기능적으로 통합된 산뜻한 최소한의 유전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생명 현상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연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의 유전체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없애는 위로부터의 방식과, 유전자 등 필요한 요소를 하나씩 추가해가면서 유전체를 합성하는 아래로부터의 방식이 있다. 현재 대장균 같은 미생물의 유전체를 대상으로 크기를 줄이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소 유전체는 환원론적 과학이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의문을 해결해줄지 모른다. 세포를 이루는 성분들을 낱낱이 해체했다가 조립하면 그 세포는 다시 살아서 활동할까. 최소한의 유전체를 지닌 최소한의 세포는 그 의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료 생산하는 인공 미생물

    크레이그 벤터가 장담했듯 최소한의 유전체를 지닌 인공 생명체가 조만간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생명 분자의 표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소 유전체에는 DNA 복제, RNA 전사, 단백질 해독에 필요한 요소들, 최소한의 대사 활동에 필요한 요소들, 손상을 수선하고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 요소들은 기계 부품처럼 표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제약회사들이 실험에 쓰이는 다양한 생체분자들을 제조해 판매하듯, 세포 합성에 필요한 것들도 구입해서 원하는 맞춤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예 맞춤 세포를 시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벤터가 말하듯이 자동차에 연료를 싣고 다니는 대신, 연료를 생산하는 미생물이 가득 든 통을 싣고 다닐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생물은 특정한 기능을 맡고 있으면서 대체와 변형이 가능한 모듈 구조를 많이 쓰고 있다. DNA도 아미노산도, 뼈도, 몸마디도, 부속지도 그렇다. 유전자들도 기능적으로 연관된 것들이 모여서 한 단위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간의 정신이 모듈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합성 유전체를 그렇게 모듈 방식으로 구성한다면 표준화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런 미래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벤터의 말이 나오자마자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생물학적 무기를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력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거나 치명적인 독성물질을 생산하는 세포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생명의 존엄성 문제는? 인공 합성 맞춤세포가 늘어날 때 생길 문제들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유전공학의 산물들이 대개 자연계에 본래 있던 생물들보다 자연 환경에서 취약했다는 점을 근거로 안전성 문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만일 아니라면?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윤리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윤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생물학이 워낙 급속히 발전하는 통에 생명윤리는 대처하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생명체를 합성한다는 전망은 지구 생명이 우주에서 보편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과도 이어진다. 지금까지 발견돼 연구된 지구의 생물들은 모두 DNA와 RNA에 담긴 유전 정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정보 측면에서 말하면 다음 세대로 대물림하는 것은 바로 유전 정보이며, 생물종들이 서로 다른 것은 각각의 유전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히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 유전 정보는 A, T, G, C라는 네 종류의 염기 서열에 담겨 있다. 염기들은 셋이 모여 하나의 유전암호를 이루며, 그 유전암호에 따라 아미노산들이 결합돼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 염기들이 어떻게 조합되어 늘어서 있느냐에 따라 유전자의 종류와 조절 양상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 네 종류의 염기와 유전암호가 과연 우주에서 보편적인 것일까. 아니면 지구 생물들만이 지닌 특성일까. 극히 예외가 있긴 하지만, 현재 생물에 쓰이는 아미노산은 20종류다. 그것을 필수 아미노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은 그보다 종류가 훨씬 더 많다. 그 수많은 아미노산 가운데 20개가 선택된 것은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른다. 지구 초창기에 많았던 것들이 우선적으로 쓰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주로 나가면 다른 아미노산이 쓰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아미노산의 화학은 아주 복잡하다. 우리는 아미노산들을 일렬로 죽 연결했을 때 어떤 식으로 꼬일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지구 생명이 필수 아미노산 20종류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기 어렵다.

    지구생명과 우주생명체

    DNA는 좀 다르다.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의 발견을 알리는 논문에 썼듯이 DNA는 구조에 어떤 식으로 기능할지가 암시되어 있다. A는 T, G는 C와만 짝을 짓고, AT는 수소결합 두 개로 연결된 반면 GC는 수소결합 세 개로 연결돼 더 강하므로 GC가 많은 DNA 이중나선은 더 잘 안 벌어질 것이며, A와 G는 큰 분자이고 T와 C는 작은 분자이므로 큰 분자와 작은 분자가 짝을 짓기 때문에 DNA 이중나선이 울퉁불퉁하지 않고 매끄럽다는 등등 DNA 화학은 단백질 화학에 비하면 너무나 규칙적이고 명백해 보인다. 그러니 네 염기로 이루어진 유전 체계가 형성된 것도 당연한 듯하다.

    하지만 우주에서도 그럴까. 스티븐 베너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의 연구진은 왓슨-크릭 DNA 모형에 들어맞는 염기들이 더 있는지 찾아보았다. 배타적인 염기쌍을 형성하면서 DNA 이중나선의 모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염기들이 더 있을까. 그는 4쌍, 즉 8종류의 염기를 더 찾아냈다. 따라서 현재 이론상으로는 총 12종류의 염기가 가능한 셈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실제 중합효소를 통해 복제될 수 있을까. 베너 연구진은 기존 중합효소에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랬더니 새 염기 중 두 가지가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수준으로 복제됐다. 새 염기의 변형을 억제하고 중합효소와의 관계를 더 긴밀하게 해야 하는 등 과제가 남아 있지만, 새 염기가 기존 유전 체계에 통합될 가능성은 엿보인다.

    따라서 DNA 이중나선이 유전 정보의 기본 토대라고 가정해도, 지구 바깥의 생명체는 우리와 다른 종류의 염기와 유전암호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모방을 넘어서

    이 확장된 염기를 이용해 새로운 유전체를 합성한다면? 합성생물학은 자연계에 없는 생명체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본래 목적은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계의 생명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의학 등 유용한 쪽으로 활용하는 것이지만, 그 너머를 내다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유전공학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유전자 변형과 조작 과정도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능을 활용하는 쪽이다. 이 식물이 지닌 항생제를 만드는 유전자를 저 세균에 집어넣거나, 인체에서 인슐린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대장균에 집어넣어 대량 생산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조작만으로도 우리는 종종 두려움이나 위험을 느끼곤 한다. 살충 능력을 지닌 바실루스균에서 뽑아낸 Bt 유전자를 삽입해 형질전환시킨 옥수수, 콩, 감자, 목화 등 유전자 변형 작물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간의 장기를 지닌 돼지 등도 한편으로는 유용할 것이라고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꺼림칙하다. 형광 유전자를 넣은 형광 토끼를 보고 말세라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래도 형질전환에 쓰이는 유전자는 이미 다른 생물에게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유전자 변형으로 한순간에 새로운 생물을 만든다고 해도 대체로 자연의 모방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유전자 변형에 쓰이는 재료나 방법도 기존 생물에서 나온 것들이니까.

    그런데 새로운 인위적 기능을 지닌 새로운 생물을 만든다면? 아예 새로운 유전체를 지닌 생물을 만든다면? 거기에 기존 생물에 없던 새로운 염기까지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자연의 산물이나 활동을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생체 분자나 생화학적 과정을 스위치나 논리가 적용되는 단순한 게임에 활용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볼 때 논리 체계가 적용되는 모든 과정에 이용할 수 있다. 인간이 세균으로 이뤄진 장기판이나 바둑판을 들여다보면서 세균을 상대로 아주 복잡한 규칙을 지닌 장기나 더 나아가 바둑까지 둘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세균이 의식을 지니고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구의 자연이 지금까지 한 실험보다는 더 나아갈 수 있다. 자연의 실험은 대개 장기간에 걸쳐 다윈 진화라는 형태로 이뤄졌다. 다윈 진화는 급격한 변화를 싫어한다. 급격한 변화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죽음으로 마감되기 쉽다. 그런데 합성생물학은 대단히 급격한 변화를 도입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에서는 살아갈 수 있겠지만, 자연 환경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한 생물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중에 기존 생물을 능가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종의 대체가 이뤄질 수 있다. 합성 생물이 자연 생물을 대체하는 날이 올까.

    인류는 우주탐사선을 보내는 등 이미 지구의 경계를 넘고 있으니, 생각을 지구 환경에 고정시키지 말라고 우길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우주에는 합성 생물에 더 가까운 생물들이 살고 있을지 누가 알랴.

    이런 논의들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생명이 물리화학적인 것, 다양한 물리화학 반응의 집합체라는 것이 환원론적 사고방식의 핵심이며 현대 생물학은 그 토대 위에 서 있다. 최소한의 유전체를 지닌 최소한의 세포는 그 관점을 직접적으로 실물로 구현할까.

    생명의 경계

    생물학에서 흔히 말하듯이 생명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그저 생명이 성장하고 적응하고 대사 활동을 하고 환경과 물질을 교환하고 번식을 하고 진화하는 등의 특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생명이 없는 것들도 그런 특징들을 지니고 있기에 생명의 경계는 모호하다.

    생물의 기본 단위가 세포라는 데에는 견해가 일치한다. 세포는 구조적 및 기능적 최소 단위다. 세포는 생명의 특징들을 고루 지녀야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세포는 어떤 것일까.

    앤서니 포스터와 조지 처치는 그 의문의 답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최소 세포가 양분인 작은 분자들을 이용해 스스로 복제하는 데 필요한 생물학적 거대분자들과 경로들을 갖춘 것이라고 본다. 거대분자들은 핵산과 단백질이며 세포막에 해당하는 지질 이중층 안에 들어 있다. 작은 분자들은 확산되어 막을 통과해 들어간다. 거대분자들은 최소 유전체를 통해 합성되고 복제된다. 최소 유전체는 작은 분자들을 이용해 스스로를 복제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만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다양한 사항을 검토한 끝에 최소 세포에 들어갈 최소 유전체는 151개의 유전자로 이뤄진다고 보았다.

    그렇게 합성한 최소 세포는 환경 변화에 아주 취약하겠지만, 어쨌든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규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포스터와 처치는 우리가 그런 생명체를 합성할 수 있을 때까지는 생명의 비밀을 이해하고 있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을 뒤집으면 어떨까. 그런 생명체를 합성했다고 과연 생명을 이해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 세포가 과연 최소한의 생명체일까. 그것은 기존 생물의 유전자들을 기준으로 삼은 최소 세포다. 새로운 맥락에서 새로운 기능을 지니도록 새로 설계된 유전자들을 이용한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자연 모방하기와 그 너머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만들어진 신’ 등


    어쨌거나 그런 최소 세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인류가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었다고 흡족해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면서도, 생명에게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의외성을 기대한다. 정의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을 말이다.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은 길이가 1억5000만㎞에 달하는 우주의 거대한 검은 구름이 생명체라는 소설을 쓴 바 있다. 탄소가 아니라 규소를 토대로 한 생명체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고, 컴퓨터에 정보 형태로 든 생명체를 상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매트릭스’ 같은 영화 속에서 아무리 위협적으로 나와도 우리는 현실에서는 그런 생명체를 공상으로 치부한다. 현실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생명체는 주로 호랑이나 상어 같은 거대한 포식자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또 하나가 등장할 모양이다. 바로 인간이 창조한 인공 생명체 말이다. 얼마 전에 우리를 위협할 것 같던 복제 인간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는데, 인공 생명체는 어찌될까. 우선 한바탕 윤리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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