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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쓰는 의사 정정만의 Sextory

‘DDD’ 극복하는 구수(口手)의 지혜

  • 정정만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 일러스트·김영민

‘DDD’ 극복하는 구수(口手)의 지혜

‘DDD’ 극복하는 구수(口手)의 지혜
“여보, 제발! 오늘밤만 좀 봐줘. 도저히 내키지 않아. 정말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아내는 집요하게 집적거리는 남편을 연신 밀어내며 애원하듯 통사정한다. 하지만 이미 가열된 열차는 아내의 다급한 정지신호에도 아랑곳없이 기적까지 울려대며 거대한 차륜을 마냥 돌리고 있다.

“이번 주에만 벌써 몇 번째야? 밤낮으로…하루도 거른 적이 없잖아? 정말 해도 너무해….”

아내는 벌떡 일어나 제법 움직임을 시작한 열차 문을 걷어차고 플랫폼으로 뛰어내린다. 영락없이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남자,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됐다. 승객 없는 열차는 굳이 달릴 이유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시동을 꺼야 한다. 하지만 허망하다. 소진해가는 엔진소리가 처량하다 못해 울음소리로 가라앉는다. 떠나기도 전에 제지당한 천국행 열차가 굴욕과 배신의 선로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 재채기 순간에 재를 뿌리는 망극한 무례에 분노마저 치민다.

DDD(Desire Discrepancy Disorder)! ‘성욕 차이(差異) 장애’랄까? 섹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육체의 갈증과 허기. 하지만 지척에 성찬을 두고도 배를 채울 수 없는 고통. 그야말로 절박한 기아 상태다. 상처 받은 생리적 욕구 때문에 육체가 마구 투정을 부린다. 치미는 울화통과 모멸감을 진압할 묘책이 없다.

남자는 여자의 이기심에 분노한다. ‘당연한’ 원색의 욕구를 깡그리 무시한 무자비. 자신의 기분대로 응수와 거부를 일삼는 자기 중심적 행동, 그 소탐대실에 환멸을 느낀다.

‘거, 되게 우쭐거리기는…도대체 저 여자, 나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고 있는 걸까? 최소한 남자의 생리현상을 이해하거나 날 사랑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이따위 짓은 못할 거야. 그래! 맞아. 애정이 없다는 뜻이야. 식어버린 사랑의 증거라고….’

허망으로 움츠러든 육신을 달래고자 애를 쓸수록 아내의 행위가 더욱 괘씸하다. ‘두고 봐! 앞으로 너랑 그 짓을 하나. 아무리 애걸해도 너랑은 이제 끝장이야.’

이미 무너져내린 자존심. 그리고 갖가지 상념이 자괴의 파편과 함께 뒹군다.

‘혹시 나는 저 여자와 성적 어울림이 없는 걸까? 내게 사내로서의 육체적 매력이 없는 걸까? 저 여자에겐 내 성기(性技)나 성기(性器)가 모자란 걸까?’

자학과 자책…. 그러다 어느새 아내에 대한 의혹과 의구심이 자책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아니야, 나 모르게 다른 놈과 신명나게 섹스를 하고 있는지 몰라.’ 하지만 또다시 여성의 육체적 전도 시스템을 우려하는 자문자답이 꼬리를 문다.

‘혹시 저 여자, 불감증 아닐까? 하기야 전혀 내 탓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러나 밤의 제전에 참여를 거부한 여자는 나름대로 복잡한 계산을 한다.

‘저 남잔 날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허구한 날 섹스만 요구하니 말이야. 내가 뭐 자기 노리갯감인가. 평소와는 딴판으로, 그 짓 할 때만 다정다감하니…저 사람의 이기심, 정말 지긋지긋해.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 기분을 배려하는 기미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짐승 아니면 섹스광이야.’

남녀의 처지가 상반된 DDD도 드물지 않다. 안간힘을 다해 시동을 거는 여자. 입항(入港)을 고대하며 규사(閨事)의 향연을 미리 준비해둔 여자. 스멀대는 아랫도리의 보챔을 전달하는 여자의 노골적 사인에도 꼼짝 않는 무심한 열차도 있다. 뒤돌아 누워 코골기에만 여념 없는 남자. 여자는 이런 남자의 등짝을 거대한 절벽으로 느낀다.

생리적으로 다른 두 개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치닫는 일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며, 팀워크는 수급(需給) 균형의 바탕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성별 차이, 개인차가 존재하며, 같은 개인이라도 신체적 조건이나 분위기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응대와 거절의 문제일 뿐 DDD와는 구분된다. DDD는 상황에 따른 일과성 문제가 아니다. 원천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반복, 지속되어 남자와 여자 사이의 틈을 벌리는 쐐기가 된다.

섹스가 지루한 일상의 잡일로 느껴질 때쯤이면 누구나 ‘No!’의 빈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거절의 매너다. 재채기 기운이 일어난 뒤엔 결코 방해하면 안 된다. 성적 긴장은 오직 한 길, 한 방향을 향하며 어차피 종점에 도달해야만 해소되기 때문이다. 성기 결합만이 섹스가 아니다. 구수(口手)를 동원해서라도 물러날 기색이 없는 성적 긴장을 다독여주는 배려. 그것이 바로 지혜요 여유다. 구수야말로 남녀의 핵심을 대신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거절 대신 구수를 빌려 남녀간 인연의 끈을 더욱 가까이 당겨보자.

신동아 2008년 3월 호

정정만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 일러스트·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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