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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야, 최소한 같이 놀 수는 있잖냐”

“야, 최소한 같이 놀 수는 있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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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최소한 같이 놀 수는 있잖냐”
“야,너 왜 그 안내문 버리는 거야?”

갑작스러운 내 질책에 술에 취한 동창 녀석은 찔끔해서 군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다, 다 알았다고….”

“알긴 뭘 알아? 통장번호랑 거기에 다 있는데.”

지난해 말 송년 반창회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교에 장학금을 모아 전달하자는 취지를 담은 안내문을 한 녀석이 구겨버리는 것을 보고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내 수고가 무시당한 느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가까워온다. 나는 3학년 때 반창회를 이끌고 있다. ‘이끈다’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주소록과 회비 통장을 관리할 뿐이다. 물론 송년회 등 만날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는 것도 내 일이다.

대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내성적이고 폐쇄적이어서 이런 모임에 소극적이다. 나오라고 해도 잘 안 나갈뿐더러 연락조차 닿지 않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그렇지 못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연락해서 작당하는 일이 좋으니 어쩔 수 없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쯤 있어야 어느 모임이든 운영되는 법이라고들 말하긴 한다. 반창회는 현재 25명 정도가 연락이 되어 서로 소식을 묻고 산다. 자녀가 이미 대학에 들어가는 나이인데, 고3 반창회의 맥을 아직도 잇고 있으니 참 특이하고 어찌 보면 징글맞기도 하다.

반창회가 처음부터 이렇게 활성화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뛰어들면서 각자 소그룹으로 모이거나 만나고 있었을 뿐이다.

신혼 초 살림집을 얻기 위해 홍은동 부근 부동산소개소 앞을 아내와 함께 얼쩡거리고 있을 때였다. 앞을 지나쳐간 승용차 한 대가 저만치에서 갑자기 후진을 했다. 그러더니 차에서 내린 사내가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바로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다.

이미 결혼을 해 그 동네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던 녀석의 집에 가 내외간 인사를 나눴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녀석이 같은 반 아이 서넛과 가까이 지낸다고 했다. 나도 그런 친구 서넛이 있어 자연스럽게 두 모임이 합쳐졌다. 물방울이 모여 몸집을 불리듯 우리의 반창회 모임은 커져갔다.

모임이 커지는 것과 활성화는 분명 다른 문제다. 만남이 즐겁고, 자꾸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모임이 활성화된다. 다행히 우리 모임을 주도하는 나는 이미 대학과 사회생활에서 이런 모임 이끄는 비법을 터득했다. 우선 나처럼 사람 좋아하고 인맥관리를 즐겨 하는 사람이 연락책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마음으로 전화기 버튼을 눌러 모임을 주선할 수 있다. 바쁜 사람에게 맡기면 십중팔구 그 조직은 와해된다. 연락이 없다 보면 결속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임을 너무 자주 가지면 안 된다. 어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날짜를 정하고 모인다고 한다. 물론 동호회 성격의 모임이라면 자주 모일수록 좋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공감대도 없는 그야말로 반창회일 뿐이다. 까까머리 시절 같은 반에서 옹기종기 1년을 보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결속 인자가 없다. 그러니 너무 자주 모이도록 강제하면 그리움의 농도가 옅어지고 쉬 식상하게 마련이다.

셋째는 회비 문제다. 어떤 모임은 정기적으로 돈을 모아 부부동반 여행을 간다고 한다. 이미 회원이 폐쇄된 ‘멤버스 온리’ 모임이다. 열린 반창회에서는 자칫하면 그런 회비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생전 안 오던 동창생이 여행 간다니까 회비 몇 번 내고 따라나서도 곤란한 일이다. 꾸준히 회비 낸 사람과 차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회비를 성실히 낸 사람이 여행에 못 가도 곤란하다. 회비를 돌려줄 수도 없고 안 돌려줄 수도 없는 일이다. 본의 아니게 돈이 모든 문제의 화근이라는 점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회비를 걷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도 섭섭한 몇몇 친구가 통장을 만들라고 해서 만들긴 했다. 간간이 생각나면 보내는 친구도 있고, 이문동에서 치과를 하는 친구는 몇 년간 매달 1만 원씩 빠뜨리지 않고 넣는 바람에 우리들 사이에서 “역시 공부 잘하는 녀석은 다르다”는 칭찬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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