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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 속 위기의 사랑’ 4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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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의 사랑은 파괴다. 갖고 싶은 꽃을 꺾어버리는 모순 속에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자의 사랑은 흔들림이다. 그가 반하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흔들린다는 것 그 자체다. 흔들림은 위태롭지만 흔들림이 없는 삶은 권태롭다. 남자의 사랑은 상실이다.순수가 사라진 후 남은 사랑은 환상이다.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영화 ‘달콤한 인생’.

사람들은 ‘사랑’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한다. ‘매트릭스’의 네오를 살린 것이 트리니티의 사랑이었듯이 말이다. 때로 사람들은 그런 결론은 어처구니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원한 사랑은 언제나 낭만적 수식으로 가득하다.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도 사랑했던 사람의 유해를 뿌리며 영원을 약속하고 ‘은행나무침대’의 주인공들도 세월을 거듭한 사랑 앞에서 눈물 흘린다. 그런데 사랑은 그렇게 위대한 구원일까? 때로 사랑은 구원이라기보다는 독약인 듯싶다.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증오와 짝을 이룬다. 사랑의 앙금은 미련으로 남기도 하지만 증오라는 다른 얼굴로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이 강렬할수록 떠나간 사랑에 대한 독기 어린 저주가 따라붙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어제까지 서로를 어루만지던 두 사람이 말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서로 으르렁거린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용서할 수 없는 감정의 아이러니. 사랑과 증오는 비례관계라서, 사랑할수록 상대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고결한 감정 속에 숨은 이 파괴적 욕망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아름다운 것을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원리이기도 하다. 갖고 싶은 꽃을 꺾어버리는 모순 속에 사랑에 대한 욕망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당신’을 파멸하고자 하는 욕망이 열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여기에 있다.

죽어서도 용서 안 되는 ‘당신’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가 쓴 소설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귀기’와 ‘사랑’이라는 모순된 단어가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복수심으로 응결돼 증오로 꽃피운다. ‘폭풍의 언덕’은 소진되지 않은 사랑의 침전물이 증오로 변질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저 지독한 사랑의 대상이 되고 싶으면서도 너무도 참혹해 함부로 그 바람을 말할 수 없는 사랑, 그것이 바로 히스클리프의 사랑인 셈이다.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의 잔혹함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애인으로 지내 온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사소한 오해로 서로 멀어지게 된다. 캐서린의 갈등을 변심으로 오해한 히스클리프는 남아 있는 사랑의 감정을 대를 이은 복수심으로 대체한다.

복수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딸을 볼모 삼아 아들과 결혼시키고, 심지어 땅에 묻혀 부패된 캐서린의 시체를 파헤쳐내기도 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은 증오다. 그는 살아 있는 내내 자신을 배신한 캐서린을 증오하고 저주한다. 변해버린 와인이 독이 되듯이 향긋했던 한때의 추억은 치명적 환부가 되어 침잠한다. 사랑은 증오로 곪아가다 폭력으로 바뀐다.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이란 이토록 잔혹하고 잔인한 데가 있다.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집착은 전설이 되어 남는다. 이 잔혹하고 섬뜩한 러브스토리는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한 열정의 곤경을 짐작케 한다. 단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준비되어 있을 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에게 흐르기를 원한다.

제니퍼 챔버스 린치 감독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는 소유할 수 없는 여자에 대한 파괴적 욕망의 또 다른 극한을 보여준다. 영화 속 주인공인 외과의사 닉은 색정적이다 못해 위험해 보이는 여자 헬레나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본 순간 닉은 그녀에게 매료당하고 약혼녀도 어머니도 모두 잊게 된다. 파티 장소에 와 분수대에 뛰어들어 몸을 적시는 헬레나. 그녀는 그런 자신의 행동이 뭇 남성의 시선을 끌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걸어서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런웨이 모델 컷이 완성되는, 100명 중 한 명꼴의 아름다움을 소유한 여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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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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