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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본 한중일 문화인류학 5

중심이냐 주변이냐, 중국 소수민족들의 ‘음식 인권’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중심이냐 주변이냐, 중국 소수민족들의 ‘음식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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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대부분의 다수민족이 나름대로 국민국가를 형성했다. 반면 소수민족은 다수민족이 만든 국가에 편입되는 운명을 맞았다. 소수민족은 다수민족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그 존재가치는 인정받지만, 영원히 실존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소수민족 문화 중 음식, 공예품, 음악 등은 관광자원으로 변모해 상점이나 박물관, 무대에서만 인정을 받는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 중 윈난·구이저우·광시 등지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이런 처지에 있다.
중심이냐 주변이냐, 중국 소수민족들의 ‘음식 인권’

소수민족 지역의 도시화는 한족음식을 퍼뜨린다.

2007년 2월3일 아침, 나는 중국 윈난(雲南)성 서북단 도시 샹거리라(香格里拉)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티베트인 마을에 있었다. 일행과 잠시 동네 구경이나 하자고 들렀는데, 거리에서 만난 티베트 청년이 친절하게도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의아해하면서도 우리는 그를 따라 새로 지은 2층 목조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우리에게 직접 티베트 차를 끓여줬다. 티베트 차는 찻잎을 찐 다음 그것을 마치 떡처럼 만든 일종의 병차(餠茶)로, 나무로 만든 긴 통에 넣어 뜨거운 우유를 부은 다음 긴 막대기를 펌프질하듯 수차례 움직여서 만든다. 중국어로는 ‘소유차(?油茶)’라고 한다.

그 집에는 모두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청년은 이 집의 사위였다. 21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장인, 장모, 아내와 3개월 된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이 집의 유일한 아들은 라마 불교 사원에 들어가 승려 생활을 하고 있어 그가 데릴사위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30여 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장모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눌한 중국어로 우리에게 집을 구경한 값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 사람당 인민폐 50위안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청년이 친절을 베푼 것은 결국 우리를 관광객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됐다. 1인당 한국 돈으로 거의 7000원 돈이니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었다.

‘샹거리라’와 티베트 사태

이들의 이런 ‘영업력’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원래 이곳은 ‘디칭(迪慶) 티베트 자치주’의 중심 도시인 ‘중뎬(中甸)’이란 곳이다. 그런데 2000년 9월 중국 정부는 이곳을 ‘샹거리라(香格里拉)’로 명칭을 바꿨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1933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원작으로 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이 1997년 개봉된 이후 수많은 서양인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티베트인 거주지역 ‘샹그리라’를 찾아다녔다. 이곳 중뎬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윈난성 간부들과 학자들이 똘똘 뭉쳐 이곳을 마음의 안식처인 ‘샹그리라’라고 규정해 버렸다. 티베트의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의 축소판인 이곳의 간덴 쑴첼링사(Ganden Sumtseling Gompa, 松贊林寺)와 그 주변의 경관이 소설의 배경과 닮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도시 이름마저 ‘샹거리라’라고 바꿨다.

‘중뎬’은 윈난성의 성도(省都)인 쿤밍(昆明)으로부터 비행기로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아스팔트 도로도 뚫려 있다. 인구 1만명도 되지 않던 도시가 갑자기 10만명이 몰려 사는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2005년 이후에는 중국인들의 국내 여행도 붐을 이뤄 샹거리라를 찾는 사람이 연간 150만명에 달했다. 당연히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아 그 해에 10만명을 넘겼다고 한다. 잽싼 지역민들은 이런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변신을 하게 마련이다. 내가 ‘소유차’ 한 잔을 결과적으로 사서 마시게 된 것도 그런 발빠른 지역민 때문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오로지 관광객을 위해 자신의 집을 새로 꾸미고, 관광버스가 마을 앞에 멈추면 사위를 내보내 호객행위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토박이가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샹거리라의 중심 상권은 대부분 한족(漢族)들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관광객을 위한 식당은 그곳이 아무리 티베트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라 해도 자본을 댄 주인은 거의 한족이다. 이런 현실은 티베트인들의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새로 이주한 다수의 한족 상인으로 인해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철도가 연결돼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더욱 가까워진 티베트성(西藏省)의 라싸는 이곳 샹거리라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이것이 최근 ‘티베트 사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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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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