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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이른 봄, 얼음 밑을 흐르는 물’ 구효서

“헛폼과 무거움에 지쳤어요, 그래서 자유로워졌죠”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이른 봄, 얼음 밑을 흐르는 물’ 구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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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효서는 좀처럼 남에게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다.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 조금 떨어져 있어야 안심되는 마음…. 그래서 외롭지만 조선 민들레처럼 속정은 깊다. 그의 소설도 주인을 닮았다.
‘이른 봄, 얼음 밑을 흐르는 물’ 구효서
구효서(具孝書·50)는 좀처럼 남에게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곁을 준다는 건 정이 많다는 거다. 그런데 구효서는 겉으로는 곁을 잘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속정은 깊은 사람이다.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잘 가지 않는 사람 정도로 고쳐야겠다.

그가 곁을 잘 주지 않은 것은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 조금 떨어져 있어야 안심되는 마음…. 그래서 가끔 만날 때마다 간단하게 인사하고 지나가곤 했다. 구효서는 내게만 곁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 남에게도 그러하다. 나 역시 그렇다.

작가는 사람에게 곁을 잘 주지 않아 외톨이가 많다. ‘향수’의 작가 쥐스킨트는 사진조차 남기지 않고 끊임없이 도망치는 사람이다. 곁을 주기 싫어서다. 꽃피는 4월에 ‘나가사키 파파’라는 소설을 읽고, 구효서에게 전화해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소설을 읽어서인지 일본 나가사키에서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일본까지 가기엔 서로 바빴고, 대신 서울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구효서는 오전 10시에 광화문 성곡미술관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밤 10시가 아니라 오전 10시라니, 낭패감이 들었다. 촉촉한 글이 나오려면 밤에 만나 술 한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 그를 만나는 건 취미생활이 아니라 일이다. 작가가 새벽에 만나자면 새벽에 나가야지 별수 있나 싶었다.

부러진 목련 나뭇가지

오전 10시02분 성곡미술관 앞에 구효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금 불안했다. 그에겐 휴대전화가 없기 때문이다. 몇십초가 지나도 이렇게 불안하다니, 이미 나는 휴대전화 중독이 되어버렸다. 어서 이 중독을 끊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성곡미술관 안에서 구효서가 걸어 나오면서 활짝 웃었다. 몇 분간 불안했던 마음이 뚝 떨어졌다. 밑을 내려다보니 민들레가 피어 있다.

조선 민들레처럼 언제나 환한 구효서는 동료 선후배로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저렇게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한 험담 한두 마디는 듣는 법인데, 구효서는 예외다.

이러한 모습은 오전에 만나자는 그의 성격에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많은 작가가 아직 잠에서 덜 깨기도 하는 이 시각에 우리는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성곡미술관 앞 ‘커피스트’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창을 통해 실내를 들여다보니, 종업원이 의자를 내고들이면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광화문 ‘문사철’ 사무실로 올라갔다. 주택 마당에 심은 목련꽃이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다. 언덕길로 떨어지는 햇살이 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겨우내 숨어 있던(저 생명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꽃 봉오리들이 실눈을 뜨고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쟤들은 이른 아침부터 어딜 가는 거야?’

며칠 전 나무를 실은 트럭들이 왔다갔다하던 길거리에 부러진 목련 나뭇가지가 뒹굴고 있었다. 나무를 옮기다가 꺾어진 것 같다. 제법 굵은 줄기에 목련꽃이 움트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 가지를 길가로 치워놓고 눈여겨두었다.

‘문사철’ 회의실 넓은 차창으로 신록의 나뭇가지들이 보였다. 잠시 마주앉아서 그냥 웃었다. 그간 잘 지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커피를 내리고 문사철 기획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밖을 보았다. 햇볕은 들어오고 바람은 차단되는 실내에서 나른하게 밖을 내다보는데 아득하게 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라면 그냥 천천히 문을 열고 걸어가 창밖으로 뛰어내린다면, 천리 절벽 아래로 떨어져 꽃으로 피어날 것 같았다. 온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삶이다.

이런 몽상을 하다가 신작 장편 ‘나가사키 파파’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쓴 소설일까.

“신생 문학 출판사의 의뢰로 쓴 전작장편입니다. 적당한 전작료와 선인세를 받고 4개월가량 집중적으로 쓴 작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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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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