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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 속 위기의 사랑’ ⑪

운명적 장애물로 더 빛나는 불온한 혹은 지순한 사랑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운명적 장애물로 더 빛나는 불온한 혹은 지순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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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로드라마나 멜로 영화의 필수 요소는 사랑의 장애물이다. 장애물의 성격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60년대 장애물의 상징이 유부남, 호적에 올릴 수 없는 아이였다면, 1970년대 이후는 직업이나 가정형편의 차이에 따른 결혼의 실패다. 불치병도 사랑의 완성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장애물만 제거되면 사랑은 완성되고, 영원해지는 것일까?
운명적 장애물로 더 빛나는 불온한 혹은 지순한 사랑

‘너는 내 운명’

이루어진 사랑은 결혼사진으로 남고, 실패한 사랑은 노래 가사로 남는다고 한다. 결혼사진은 물질로 남은 추억이다. 게다가 사진은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이미 그때 거기 있었음’이라는 인증 작용의 실체다. 그러니까, 당신과 나의 결혼이 기정사실이며 역사라는 것,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임을 사진이 보증해주는 것이다.

반면 노래 가사는 가슴에 남는다. 어디선가 우연히 노래가 흘러나올 때, 어디선가 우연히 어떤 시 구절을 발견했을 때, 그때 마음속에서 조용히 발효되고 있던 그 ‘사람’이 불현듯 떠오른다. 노래 가사처럼 아련하게, 시 구절처럼 불명확하게 말이다. 추억이 가진 이 불명확함 때문에 노래 가사 속에 남은 사랑은 더 간절해진다. 이뤄지지 못해 슬픈 사랑.

현재 교과서에 실려 있는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은 노래를 듣고 생각해낸 사랑 이야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시를 보고는 어린 시절 곁에서 보았던 옛날 일을 생각해낸다.

그 여자네 집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났던 곱단이와 만득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마을의 선남선녀이던 두 사람은 기대에 걸맞게 서로에 대한 애정을 품고 성장해간다. 방구리가 제법 잘 어울렸던 새침한 처녀 곱단이, 그리고 중학 모자를 쓴 임화 팬인 만득이는 마을에서 유명 인사처럼 스캔들을 뿌린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대 모집이라는 상황이 닥치면서 곱단네는 부랴부랴 어린 곱단이를 시집보내게 된다. 징용이라는 문제에 부닥친 만득이에게도 시대는 만만치 않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김용택 ‘그 여자네 집’ 중에서

시 속의 그 사람은 그 여자네 집, 그 여자네 집이라며 간절하게 그 추억을 소환한다. 시의 느낌처럼 소설 ‘그 여자네 집’ 안에 들어가 있는 만득이와 곱단이의 이야기는 멜로 영화 한 편을 떠오르게 한다. 한 마을에서 일어났던 곱단이와 만득의 사랑 이야기는 시대의 조류에 의해 억지로 떠밀릴 수밖에 없었던, 장애물 때문에 굴절된 ‘완전한 사랑’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니까 장애물이 없었더라면, 정신대나 징용이라는 상황이 없었더라면, 곱단과 만득은 영원히 하나가 되어 잘살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 이야기 안에 숨어 있다. 멜로드라마, 그것은 바로 ‘~만 아니었더라면, 영원히 행복했을 것을’이라는 안타까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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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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