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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

철학함의 지정학과 삶의 심화

  •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hyg57@chol.com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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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
정재영 지음/ 풀빛/ 각권 250쪽 내외/ 각권 1만 3000원

전문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역사에 나타났던 모든 철학이 그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인간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그런 주장을 일반 시민이 믿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철학자들의 이런 염원은 오히려 철학이 일반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철학과 삶의 괴리는 특히 철학에서 가장 우수한 고전적 성과물을 대할 때 더 심해진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이데아는 ‘좋음’의 이데아다”라는 플라톤의 정연한 명제에서부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잘 알려진 단언을 거쳐, “세계사는 자유에 대한 의식의 발전의 역사다”라는 헤겔의 역사철학이나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명제는 우리에게 거의 퀴즈 해답같이 알려져 있다. 흔히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나오는 철학자들의 이런 명제들은 객관식 수능 문제의 답이 될 것에 대비해 상투적으로 암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을 왜 하며, 그런 말을 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자신 있게 말하도록 교육받은 성인은 한국에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세기 1970, 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 교양 필수로 철학개론을 수강한 적이 있는 현재 40~50대 연령층의 시민들은 저마다 대학 에 진학해서도 이런 철학적 진술들의 의의와 의미를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아 진저리쳤던 기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철학자는 인간인가

사실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자들의 고전보다 문학 작품이나 역사서를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거기에는 몸짓과 표정을 갖춘 구체적 개인이 각자 개성을 갖고 움직이면서 서사(敍事)와 사건(事件)을 보여주고 최소한 줄거리와 사실을 알려준다. 문학 작품의 내용과 역사적 정보는 우리에게 인간, 나아가 그 작가나 역사학자의 개성을 짐작하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인간의 일을 겪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전해준다.

그런데 철학적 작품들은 그것을 쓴 철학자가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엄청나게 추상도가 높은 개념들과 체계성의 틀 안에서 작동하는 언설은 같은 인문학이라도 문학이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언어체험을 강요한다. 무엇보다 철학적 명제나 논술들은 인간이 썼다고 믿기가 쉽지 않다. 한국 현대 철학 1세대가 막 수입한 서양 철학을 가르칠 당시에는 전문적인 철학 교수라도 철학적인 글에서 철학자의 인간적 체취를 감지할 능력을 제대로 시연해주지 못해 후학들을 애먹였다고 한다.

나는 정재영 동학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주간지의 신간 소개란에서 접하면서 내가 철학을 선택한 이래 한국 현대철학의 맥락 안에서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었던 과제 하나가 해결되기 시작하는 단계가 종료될 것 같다는 상쾌한 예감을 가졌다. 그의 책은 일종의 여행안내서다. “현대철학의 지도 새로 그리기”로 그 첫 장을 시작하기는 하지만, 그 장의 첫 쪽인 20쪽서부터 이 책의 첫 번째 철학적 화제거리인 빈 서클의 철학자들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36쪽까지는 철학의 ‘ㅊ’자도 언급되지 않는다. 현대철학의 지도를 새로 그린다면서 실제로는 빈 벨베데레 궁전 앞에 있는 반인반수의 혼합체인 스핑크스 조각상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저자가 가는 곳은 빈 서클의 철학이 아니라, 빈 대학의 철학과가 아니라, 20세기 초반 기울어져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위 안에서 모든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인 미술관이다. 거기 카페에서 그는 빈 커피의 일종인 ‘멜랑주’의 미각을 통해 스핑크스로 상징되는 빈 문화의 하이브리드적인 특성, 즉 “서로 다른 것을 섞어서 하나로 만드는 빈 사람들의 실험정신”을 실제로 맛보게 해준다. 벨베데레 궁전 앞의 스핑크스상을 통해 빈 문화를 시각적으로 보게 만들고 빈 미술관의 커피를 통해 그것을 미각적으로 음미한 연후에 정재영은 1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막 멎은 빈의 과거 풍경으로 끌고 간다. 그가 상기시키는 것은 “왕정이 사라진 곳에 공화정이 들어서서” 이제 인민이 자유를 만끽해도 될 것 같은 희망과 아울러 마치 나치가 저지를 전쟁 범죄의 서곡과 같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빈, 즉 희망의 첨병과 절망의 끝자락이 한꺼번에 뒤섞인 ‘광기’의 여명이다. 빈 서클의 논리실증주의는 바로 이 광기의 여명에 대해 그 도시가 필사적으로 살리고자 했던 ‘계몽’의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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