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노무현 시대의 좌절: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

노무현 사람들의 노무현 평가

  • 이승협│한국노동연구원 교수 solnamu@gmail.com

    입력2009-01-30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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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시대의 좌절: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
    이명박 정부 1년을 맞아 새삼 노무현 정권의 5년을 생각하게 된다. 사회는 항상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지난 6년이 아쉽고, 다가올 4년이 걱정된다. 그러면서 문득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를 진지하게 그 내부로부터 검토할 시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개념 상실과 정신적 지체의 연속이었다. 보수와 진보 역시 애매한 땅에서 엉뚱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붙여진 일종의 딱지가 아닌가 싶다. 따뜻함이 없는 보수주의와 자유를 모르는 자유주의, 방향성 없는 진보주의가 설치는 척박한 현실이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후안무치한 사이비 보수주의자들과 한 번도 한국 사회에 존재한 적이 없는 유령과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가진 자로서 사망유희를 즐기며 한국 사회를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은 이 절망의 시대에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진보주의자에게 장점이 있다면 먼저 냉혹할 정도로 철저한 자기비판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진보의 좌절을 가져온 노무현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온 진보주의자들은 지난 5년의 좌절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창작과비평에서 펴낸 ‘노무현 시대의 좌절: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기 위한 진보의 재구성을 목적으로 노무현 시대의 좌절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노무현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당사자들이 노무현 시대를 내부로부터 검토하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진은 청와대에서, 정책자문을 통해서, 정책생산을 통해서 노무현 시대의 전략과 내용을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들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아니면 진보주의자들의 지나친 자기겸손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은 필자에 따라 약간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전제하고 있다.

    범진보세력의 책임?

    필자들은 시대적 과제, 대외정세 및 주체적 역량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부문별 영역별로 전략, 정책시도 및 실패의 과정을 평가한다. 조형제·김양희(1장)와 이남주(2장)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 원인을 주로 주체적 역량 부족에서 찾고 있다. 전략과 정책의 실패라기보다는 범(汎)진보개혁세력을 하나로 묶어 세우지 못했던 주체적 역량 부족이 노무현 정권이 실패하게 된 핵심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필자들의 관점에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대한 책임도 범진보개혁세력이 같이 져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7장 박태주의 글을 제외하면, 노무현 정부 핵심세력은 긍정적 자기평가라는 관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은 상당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로 인해 범진보개혁세력이 결과적으로 공멸하게 되었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범진보개혁세력이 같이 져야 할 필요는 없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전략과 정책을 따르지 않는 진보개혁세력을 사실상 적으로 규정하고 고립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진보개혁세력에 대해 당근과 채찍 전략을 구사했다. 유연한 진보 노선을 추종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해서는 당근 정책을 구사하여 시민운동을 제도화했다.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 부각된 환경운동연합이나 여성운동단체의 비리 사건은 정부지원을 받아 성장해온 ‘자생성과 건강성을 상실한 제도화된 시민운동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노무현 정권의 전략에 반대하는 진보개혁세력에 대해서는 채찍 전략을 구사해 사회적으로 고립시켜, 극단적 강경론이 내부에서 득세하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범진보개혁세력을 분열시킨 책임은 어설픈 사회 통합 전략으로 지지 세력을 분열시킨 노무현 정권 스스로 져야 한다. 신자유주의 노선 추구가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전부 설명할 순 없지만, 범진보개혁세력의 분열과 좌절의 대부분은 설명해줄 수 있다.

    결국 준비되지 못했지만 높은 시대적 열망에 힘입어 탄생한 정권이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조급증과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좌충우돌하다 자멸함으로써 진보개혁세력의 공멸을 부른 주체역량의 미숙함이라고밖에는 노무현 시대를 달리 평가할 수 없다.

    시대적 요구를 방기한 순간

    주체역량의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난 대표적 영역이 통일과 외교영역이다. 김양희(3장)와 구갑우(4장)가 분석하듯이, 미국의 정책을 대변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등 이해관계가 다양한 동북아 지역의 소패주가 되겠다는 동북아시대의 주창은 자기 역량의 과대평가이자 모순덩어리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주의를 지향하면서 미국의 요구와 패전국의 전후 처리라는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고, 열린 지역주의를 주창하면서 강대국 중심의 무역질서인 WTO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전략과 정책은 외교와 통일 문제를 또다시 내부 문제화하여 범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미국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던가, 아니면 부분적으로 미국의 입김을 배제하면서 동북아 공동체를 추진하던가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고립되어버렸다.

    노무현 정권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사회정책 영역이다. 노무현 정권에 쏟아졌던 사회적 열망은 40년간 지속되어온 성장주의가 낳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진보정권이라는 시대적 요구의 선택이었지 노무현 개인이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이 시대적 요구를 개인에 대한 지지로 착각하고 사회정책적 과제를 방기하는 순간 정권의 존립 토대는 와해됐다.

    사회정책을 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보조제로 이해하는 수준에서는 전병유(5장)가 지적하듯 관료의 덫을 벗어나기 힘들다. 성장주의의 경로의존성에 함몰된 관료가 주도하는 사회정책은 그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던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혼 없는 관료의 정책마인드로는 관리 이상의 새로운 방향과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가복지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시대에 사회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는 복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양재진(6장)의 표현대로 “지지동원의 실패”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노무현 시대에 가장 가혹한 평가를 받는 영역이 노동영역이다. 박태주(7장)와 은수미(8장)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사회통합을 내건 신자유주의 정책”“안일한 인식과 무력한 대응”이라고 정리한다. 비전 없이 로드맵에만 매달린 규제적 노동정책은 사회통합을 목표로 했으나 사회갈등을 첨예화시킨 대표적 사례가 되고 말았다.

    노무현 시대에 가장 깊은 좌절을 느낀 이들은 아마도 무주택자들일 것이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지속된 집값 상승랠리는 특별한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근로소득 계층, 특히 청년층에게 사회양극화를 몸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정준호(9장)나 정건화(10장)가 지적하듯이, 원대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저금리정책과 맞물리면서 의도와는 다르게 전국민이 주택로또에 뛰어드는 신건설족의 황금시대를 불러왔다. 중앙정부의 권력독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간적 분산을 통해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방 및 지역 발전의 의미와 합리적 핵심에 대한 고민 없이 지역개발사업 위주로 짜인 발전전략은 지역에 서울과 같은 대도시형 발전모델을 강요하여 지역사회 또는 지역공동체를 해체하는 신개발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재벌기업 및 대기업 위주의 기술혁신전략으로 인한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산업양극화 심화(11장), 사교육비 경감을 목표로 놓고 공교육을 오히려 사교육으로 만들어버린 교육정책의 실패(12장) 등도 뼈아픈 대목이다.

    진보의 재구성

    그렇다면 총체적 개혁시도의 총체적 실패와 이로 인한 진보세력의 몰락을 극복한 진보의 재구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일영(13장)은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에 기대어 새로운 진보의 경제체제를 제시한다. 즉 남북한 경제통합과 총체적 개혁을 수행하는 조직·제도를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경향성으로 새로운 진보의 경제체제를 규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진보가 진화로 이해되고, 시장과 제도가 혼합된 중도가 강조된다는 점.

    책을 읽고 나서, 노무현 시대의 좌절에 대한 비판적 진단의 결과가 중도와 진화라는 두 개의 추상적 개념어로 정리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중도와 진화는 영국 블레어 신노동당의 제3의 길(The Third Way)이나 독일 슈뢰더 사민당의 신중도(Neue Mitte)의 정책노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장주의의 경로의존성에서 탈피할 수 있는 진보의 사회경제전략을 분단과 세계화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추구해갈 수 있을 것인지 제시했더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어쨌든 이 시대의 진보는 노무현 시대의 좌절을 딛고 새로운 전환을 이룩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과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의 오만이 가져올 사회적 파국에 새로운 희망과 전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시대에 대한 냉혹한 진단과 검토가 필요하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은 새로움을 모색하기 위한 내부로부터의 자기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창작과비평사/ 272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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