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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와인 ②

무통 vs 라피트

치열하게 따낸 1등급 vs 우아하게 유지된 1등급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무통 vs 라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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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vs 라피트

피카소 작품으로 장식된 무통의 1973년 빈티지 라벨.

1868년에 이 샤토 라피트를 로쉴드 가문의 또 다른 일원이 구입했다. 제임스 로쉴드다. 제임스는 샤토를 구입하자마자 사촌 나타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성을 따서 양조장 이름을 샤토 라피트 로쉴드로 바꿨다. 제임스는 샤토를 손에 넣기 위해 사촌 나타니엘보다 훨씬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마찬가지로 독일을 떠나와 프랑스에 자리 잡은 제임스는 보르도 최고의 양조장을 소유하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단번에 1등급 와인을 소유한 제임스의 만족감과 대조적으로 나타니엘은 마음이 쓰렸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타니엘은 ‘13년이나 더 일찍 포도원의 소중함을 깨달았는데 왜 나는 2등급이고, 사촌은 1등급일까?’ 푸념했다.

무통, 샤토 병입(甁入) 선구자

절치부심하는 무통도, 자족하는 라피트도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다. 양조장과 포도원은 그대로지만 책임자가 바뀌고, 주인장도 바뀐다. 시대가 바뀌고 새 주인의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한다.

1922년의 일이다. 무통의 젊은 피 필립 드 로쉴드는 약관의 나이에 양조장을 계승했다. 그는 파리에 거점을 두고 가끔씩 보르도에 내려오던 관행을 깨고, 아예 보르도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고는 소원(疎遠)했던 1등급 양조장과의 관계를 호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의 생각에 무통은 1등급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게 마땅했다. 그래서 1등급 양조장 4곳의 대표와 어울리는 사교모임 ‘오인회’를 만들었다. 쾌활한 성격에 문학과 예술을 즐기던 그의 적극적인 면모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필립은 와인 품질의 완벽성에 눈을 뜨고, 종래의 와인 판매 방식을 바꿨다. 기존의 판매 방식은 오늘날과 달랐다. 필립 이전에는 와인을 통에 담아 팔았다. 양조 과정이 끝나면 숙성과 상관없이 즉각 와인을 통에 담아 팔았던 것이다. 중개인은 자신의 창고에 와인을 쌓아두고 일정 기간 숙성한 다음에 병에 담아 소비자에게 팔았다. 그러니 와인의 숙성은 샤토가 아니라 중개상에 달려 있었다.



와인의 숙성은 통 숙성과 병 숙성으로 구분된다. 병 숙성은 응당 소비자 몫이다. 스스로 개봉할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 선택사항이다. 통 숙성은 창고의 조건에 달렸다. 좋은 창고를 가진 중개상은 샤토만큼이나 품질 관리에 신경 쓴다. 하지만 모든 중개상이 그랬던 건 아니다.

필립은 기존의 판매 방식을 바꿔 통 숙성을 마친 와인을 병에 담아 팔 것을 고안했다. 발효시키고 숙성하고 일정 기간 샤토에서 와인을 저장한 다음에야 비로소 병에 담았다. 그리고 라벨에 이렇게 인쇄했다. ‘Mis en boutteilles au Chateau’ 이를 영어로 옮기면 ‘Put into bottle at Chateau’ 즉 샤토에서 병입(甁入)했다는 의미다. 1924년 빈티지부터 샤토 무통 로쉴드는 와인을 병에 담아 팔았다. 무통은 품질을 위해 관련 비용을 모두 감수했다. 와인을 통으로 숙성하려면 넓은 창고가 필요했다. 또 병에 담는 데 필요한 도구가 있어야 했고, 그와 더불어 일손도 추가되어야 했다. 우수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설을 투자한 것이다. 이로써 무통은 샤토 병입의 선구자가 되었다. 보르도 와인뿐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등의 와인도 대부분 양조장 병입을 시행하고 있다.

100점 만점에 100점, ‘1945년’

1945년은 무통 역사상 최고의 품질을 빚어낸 빈티지로 꼽힌다. 1945년이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다. 포도밭 농부들이 괭이나 삽 대신 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가 있었던 때다. 포도밭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던 시기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1945년은 20세기 최고의 빈티지다. 포도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잘 익었다. 아니 포도 한 알 한 알이 다 잘 여물었다. 하늘의 축복이었다. 필립은 돋보이는 풍족한 빈티지를 축하하고, 또 승전을 기념할 목적으로 새로운 라벨 도안을 의뢰했다. 과감히 예술가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아티스트 라벨은 오늘날 무통 와인 마케팅의 핵심이다. 매년 어느 작가의 어떤 그림이 선정될지 관심을 불러 모은다.

필립이 헌정한 작가 명단은 쟁쟁한 예술가로 가득하다. 그가 가문의 오랜 숙원이던 등급 상향에 성공한 1973년 빈티지에는 당대 최고의 작가 피카소의 작품이 채택됐다. 앤디 워홀, 타피에스, 미로 등의 작품도 등장했다. 일본 작가도 두 사람이나 참여했다. 아쉽게도 한국 작가는 아직까지 선택된 적이 없다. 언젠가 김환기 혹은 남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무통의 아트 마케팅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차용되고 있다. 호주 리우윈 에스테이트(Leeuwin Estate)라든지 미국 켄우드(Kenwood)의 아트시리즈가 그렇다. 이들은 스토리를 생산하는 이런 마케팅으로 와인 컬렉터들을 자극한다. 셀러에 무통 1945부터 현재까지의 빈티지들을 모은다. 뭔가 흥미를 느끼면 그것으로 세트를 구성하려는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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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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