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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②

특별한 남자를 만드는 힘 맞춤 SUIT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특별한 남자를 만드는 힘 맞춤 S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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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남자를 만드는 힘 맞춤 SUIT

몸에 잘 맞는 맞춤복은 몸의 결점을 가려줘 자신감을 높여주고 바느질도 튼튼한 게 특징이다.

한국에서도 맞춤복이 유일한 정장이던 시절이 있었다.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그 시절은 비록 경제수준은 지금보다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모든 남성이 자신의 몸에 맞춘 옷을 입었기에 한국에서 신사들이 역사 이래로 가장 멋졌던 시절로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기성복에 익숙해져 있어 맞춤 슈트가 비록 품질이 뛰어나고 자신만을 위한 유일한 옷이라고 해도 3~4주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맞춤복은 아버지 세대의 유산처럼 고루하거나 보수적인 옷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도 많다.

당신의 첫 번째 맞춤복

하지만 모든 학문이나 예술에 그 본류가 있는 것처럼, 남자의 품위를 표현하는 정장 역시 맞춤복의 철학과 정신으로부터 불멸의 생명력을 획득했다. 복식 문화가 발달한 유럽의 경우, 남성용 기성복과 맞춤복의 비중은 8:2 정도로 나뉘지만 한국은 96:4 정도로 기성복에 치우쳐 있다.

따라서 맞춤복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맞춤복은 단순한 정장 한 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임을 알게 된다. 결국 맞춤복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맞춤복 매장에 가는 데 필요한 것은 엄청난 금액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관심이며 작은 용기다. 특히 맞춤복에 관심 있다면 백화점이나 유명 브랜드네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조용하고 품위 있는 브랜드, 매체 광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소문으로만 알려진 매장을 찾는 것도 맞춤복에 익숙해지는 좋은 방법이다. 물론 맞춤이라는 세계 속에는 슈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셔츠, 코트, 구두와 타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므로 자신의 예산에 맞게 합리적으로 순서를 정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예식이 그러하듯 맞춤복을 만드는 예식 또한 나름의 순서대로 거행된다. 맞춤복을 시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며 우선시되는 절차는 맞춤복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매니저 혹은 테일러를 만나는 것이다. 맞춤 슈트를 원하는 남자는 오늘 저녁 모임에 급히 입을 옷을 찾으러 매장에 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방문하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넉넉히 할애해서 꼼꼼하게 물어보는 게 좋다. 혹시라도 옷에 대해 한없이 까다로워 보이는 그들이 내 옷이나 신체적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섬세한 맞춤복을 입은 그가 예의바르게 내 옷을 순식간에 훑어 내려가더라도 그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의 몸 상태를 정밀하게 살피고 그 대안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남자를 만드는 힘 맞춤 SUIT
고객의 몸 사이즈를 꼼꼼하게 재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어깨의 불균형이나 오른손의 길이가 왼손보다 2cm가량 더 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약점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콤플렉스로 생각해온 모든 신체적인 문제를 그야말로 멋지게 상쇄해줄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으로 보는 게 맞다.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제반 과정은 처음에는 좀 민망하지만, 이때 가능한한 자신의 몸과 행동의 패턴, 그리고 선호하는 스타일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슈트를 입는 환경, 즉 본인이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지, 재킷을 계속 입고 있는지, 옷걸이에 걸어두는지, 자동차를 자주 이용하는지 또는 기차와 비행기 출장이 잦은지 등 몸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그리고 취향이 구체적일수록 품질 좋고 스타일도 우수한 맞춤복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장인정신이 투철한 맞춤복 테일러라면 어깨가 불균형한 손님을 위해 다른 한쪽의 어깨를 부드럽게 보정한 슈트를 제시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목시계 차는 습관까지 배려해서 양쪽의 소매 넓이가 다른 재킷을 만들어낼 것이다.

혹시 본인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에 대해 확신이 없다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대부분 매니저, 마스터 테일러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은 고객이 어떤 종류의 옷을 원하는지 감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아주 특수한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을 때는 예외지만 대부분의 경우 맞춤복에 관해서는 그들이 제안하는 대로 따라도 무방하다. 슈트와 신체에 대해 그들보다 발군인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내 몸에 맞춘 편안함 & 고르는 재미

맞춤복의 또 다른 매력은 슈트든 재킷이든 그 소재뿐 아니라 버튼의 세부, 주머니의 모양, 뒤트임의 종류, 옷깃의 스타일, 그리고 박음질 같은 옷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 과정을 조금 어렵고 복잡하게 느낄 수 있지만, 세상에서 오직 한 벌, 오직 내 몸을 위해 만들어지는 핸드메이드 맞춤복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기성복과 비교할 수 없는 만족을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가봉(假縫)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한 번 더 당신의 신체 사이즈에 완벽히 맞추는 맞춤 슈트는 통상 3~4주 걸리지만, 소재에 따라 6주 이상 소요되는 것도 있다. 속전속결이라는 한국식 스피드에 익숙한 당신에게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 시간들이 지난 다음에야 슈트는 비로소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된다. 거울에 비춰볼 필요도 없다. 분명 한 치 한 푼 어긋남 없이 딱 들어맞으며 모든 게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어쩌면 새 옷이라는 느낌조차 없을지 모른다. 가족처럼 편한 슈트란 이를 두고 말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맞춤복이 전지전능한 옷은 아니다. 취향이 조금 까다롭다면 두세 번의 가봉 과정을 거쳐서 더욱 정교하게 옷을 만드는 편이 좋다. 그리고 최초의 맞춤복이 정말 몸에 잘 들어맞는다면 옷을 만든 테일러를 칭찬해주기를 권한다. 고객이 형편없는 슈트를 입은 채 매장을 나서게 하는 테일러는 돈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렇다고 하인처럼 부리는 것은 삼가도록 한다. 테일러를 전문가로서 대우한다면 아마도 오랜 시간에 걸쳐 당신의 몸과 마음에 모두 적합한 슈트를 입는 호사를 누리게 될 테니 말이다.

신동아 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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