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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감춰온 미친 자아를 드러내시라,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 김갑수│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감춰온 미친 자아를 드러내시라,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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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작업을 하는 작업실입니까?” “신경쇠약과 정신착란이 빚어낸 충동의 하모니를 들으며 어린 날에 반했던 살인자의 얼굴을 떠올리지요.” 불을 켜면 선혈이 낭자할 것만 같은 음침한 작업실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갓 내린 커피향이 은은하고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줄라이홀’이다. 주인장은, 누구에게나 작업실을 권한다.
감춰온 미친 자아를 드러내시라,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마라톤을 하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뭔가 ‘슥’ 빠져나갔다. 그런 감각이 있었다. ‘빠져나갔다’ 외에 그럴듯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돌벽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저쪽으로 몸이 통과해버렸던 것이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다.

20여 년째 날마다 달리기를 해온 그다. 빠짐없이 달리기 일지를 기록했고, 여러 대회에도 출전했다.(소설이 아니라 실제 행적이다.) 그러던 중 장장 100㎞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75㎞를 넘어서던 순간, 그 ‘빠져나가는’ 체험을 했다. 그 뒤로는 몸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피로에 지칠 만큼 지친 상태였건만 더는 피로하지 않았다. 수많은 주자가 뒤로 처지는 것이 보였다. 일종의 명상 같은 느낌. 이때부터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변의 풍경은 아름답고, 오호츠크해의 바다 냄새가 났다. 이미 해가 저물기 시작해서(출발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으나), 공기는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독특한 초여름의 짙은 풀 냄새도 났다. 몇 마리의 여우들이 들판에 무리 지어 있는 것도 보였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매우 고즈넉한 심정이었다.’

한 가지를 오래 한다는 건 참 특별하다. 강조점은 오래 한다는 데 있다. 뭔가 ‘슥’하고 빠져나가는 체험의 배경에 바로 그 ‘오래됨’이 있다. 그러면 20여 년 간 날마다 출근했으니 어느 지하철역에서 뭔가 ‘슥’하고 빠져나갈까? 45년간 밥을 먹으니 어느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슥? 아니면, 몇십년간 섹스를 했더니 어떤 여인의 허리 위에서 ‘슥’ 하고 뭔가 빠져나갈까? 더는 고통스럽지도 피로하지도 않은 명상 상태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슥’ 하고 찾아와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루키가 증언하는 ‘슥’ 체험을 내 일상에서는 느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까 오래 해야만 찾아오는 그 ‘슥’은 일상의 것이 아니라 특별한 행위를 오래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마치 하루키의 마라톤처럼 말이다. 참아야 할 것을 참고 견뎌야 할 것을 견뎌낸 다음의 어떤 경지가 말하자면 ‘슥’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영락없이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느니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느니. 그러나 고생이 낙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인내의 쓴맛은 피하고 열매의 단맛만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거니와.

텅 빈 우물을 채워줄 무엇

내 작업실 ‘줄라이홀’을 찾아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참 부럽네용!” “오메, 멋지네용!”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숨어 있을 공간을 꿈꾼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린 시절 남몰래 벽장 속에 숨던 것 같은 자궁회귀심리를 지하 작업실이 일깨워주는 모양이다. 벽장 안에 숨어서 밀린 숙제를 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데도 간혹 무자비한 질문을 받는다. “대체 무슨 작업을 하는 작업실인가요?”

‘여자한테 작업 거는 작업실’이라는 농담도 진부해서 더는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작업실을 갖는 것에만 관심 있었지, 거기서 무슨 작업을 할 것인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작업이란 걸 할 만한 재주를 못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가령 연장을 들고 의자나 책장을 만드는 작업은 어떨까? 그런 건 진정 작업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신용카드 들고 나가 사버리면 될 것을 왜 구태여 서툰 솜씨로 대패질을 한다는 말인가.

원고를 쓴다거나 뜬금없이 그림을 그린다거나 악기를 배워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른바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창조적인 어떤 작업.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근사한 스튜디오를 장만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프로페셔널 영역이다. 그림이나 악기 연주, 혹은 글로 먹고사는 사람의 작업일 터. 내가 받는 보잘것없는 원고료를 위해 이 터무니없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체 무슨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냐’는 질문은 ‘왜 당신 같은 사람이 작업실을 만들어야 하느냐’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모기소리로 답변할 거리가 있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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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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