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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식소매상이 아닌 정치인 유시민의 책

  • 이승협│한국노동행정연구원 교수 solnamu@gmail.com│

지식소매상이 아닌 정치인 유시민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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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유시민은 왜 다문화주의 또는 다원주의를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진보세력이 터부시하는 애국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하고 있는가? 바로 여기에 정치인 유시민의 또 다른 전략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애국이란 단어는 암묵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편을 가르는 기준이다. 유시민은 이러한 점에 착안해 애국과 헌법이란 용어를 결합시킴으로써 은연중에 보수의 정서에 다가서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의 용어를 자유주의적으로 전용하면서 자신에 대한 적대감을 무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용적으로 여전히 진보주의의 틀 내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철학이나 정치윤리를 내세우기보다는 향후 정치활동을 염두에 둔 사상적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회자유주의란 자기규정은 이러한 점에서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만큼이나 모순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집단과 공동체, 즉 사회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와 달리 서구의 사상사적 전통에서 자유주의가 결코 ‘사회’와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저자가 사회자유주의란 용어를 쓰는 것은 이 책이 바로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책이 아니라 정치인 유시민의 책이기 때문이다.

‘양복 입은 침팬지’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지식인의 기본적 덕목이라고 할 자기반성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저자가 서문에 쓰고 있듯이,이 책은 헌법에 대한 에세이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지식인이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이러한 행위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동일한 과정이 자신에게도 행해져야 한다. 자기반성이란 자신의 사고와 주장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고 그로부터 자기 확신을 얻고 나아가 다른 물음에 대한 확신을 찾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자기반성은 사유하는 지식인의 기본적 덕목이다.



정권의 핵심부에서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던 주요 인물의 한 사람으로서, 한 지역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대표했던 국회의원으로서, 전 국민의 보건의료 정책을 담당했던 장관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정치인 유시민이 아닌 지식인 유시민, 아니면 하다못해 지식소매상 유시민으로서,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냉철하게 평가하고 반성하면서 자기주장을 할 수는 없었을까?

이 책에 대해 기대한 것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솔직한 입장과 자기반성이었다. 사회개혁세력이 모였다는 개혁신당을 이끌던 사람으로서 국정에 관여하면서 개혁신당의 기본 원칙과 지향을 국정에 반영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직도 여전히 스스로를 진보개혁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반전과 반핵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그러나 저자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과 정당화로 일관하고, 여전히 모든 문제를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독일 녹색당 당수였던 요쉬카 피셔가 독일 국회에 운동화를 신고 등원했던 것을 베껴, 유사한 정치적 이벤트로 기획해 평상복 등원 논란을 일으킨 일이나 이라크 파병문제를 외화벌이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인식 등으로 볼 때 저자가 이 책에서 보수세력에 대해 가하는 ‘양복 입은 침팬지’라는 비난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해야 한다. 정치활동을 대중의 관심을 독점하기 위한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성 정치인의 전형이다. 미디어의 ABC라는 책에서 노베르트 볼츠는 현대 미디어사회에서 정치인은 카메라 앞에서만 일하며, 대중의 관심을 독점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바는 선의 연대와 거대한 시민행동 조직을 통해 악한 시스템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읽는 순간, 한편으로 악의 축에 대항하기 위한 십자군을 얘기하던 전 미국 대통령 부시의 발언이 떠오르고, 다른 한편으로 선의 연대와 거대한 시민행동의 중심에 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니묄러의 인용문은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었으니까/ 그들이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었으니까/ 그들이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공격할 때에도/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안티는 현실을 주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침내 내가 선의 연대와 거대한 시민행동의 중심에 있고 싶었을 때/ 나와 함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신동아 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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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협│한국노동행정연구원 교수 solnam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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