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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⑥

탐내는 건 어쩔수 없으나, 탐하지는 말라!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탐내는 건 어쩔수 없으나, 탐하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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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가 화제다. 친구의 아내를 탐하는 신부. 충격적인 설정이다. 그런데 친구의 아내를 탐하는 자가 신부라서 문제인가, 친구의 아내를 탐하는 자체가 문제인가?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내 손에 신문을 쥐고도 옆 사람이 펼친 신문 내용이 더 궁금한 게 사람 마음이다. 남이 가진 것을 탐내는 인간의 본능, 영화가 놓칠 리 없다.
탐내는 건 어쩔수            없으나, 탐하지는 말라!
십계명은 모세가 인간다운 삶에 대해 명령한 열 가지 의무사항이다. ‘야훼의 이름을 섬겨라’라는 종교적 당위로 시작하지만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보편적 윤리로 확장된다. 법의 형태라는 점에서 십계명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기 위해 필요한 약속이다. 열 개 항목의 이 최소법은 ‘무엇을 해라’ 하는 당위와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금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는 항목이다. ‘탐하다’는 사전적으로 ‘어떤 것을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어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를 의미한다. 탐한다는 것은 축자적으로 무엇을 욕심내는 것을 뜻하지만 사실상 이는 단지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 심리 상태 이상의 행위를 내포한다.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에 대한 질투. 탐하는 것은 질투라는 심리적 갈등을 위반으로 실현한 행동이다.

남의 것이라 탐해서는 안 되지만 남의 것이라 또 탐이 난다. 사람은 내가 갖지 못했지만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질투하고 욕망한다. 내게는 없는 좋은 차, 훌륭한 집, 아름다운 아내는 상대적 빈곤감과 자괴감을 부추긴다. 탐하는 마음은 초라한 자기 확인이라는 고통 속에 ‘나’를 밀어넣는다. 100석 부자라도 1000석 부자 옆에서는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남의 집을 탐하지 말라’는 조항은 중세엔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조항과 구분되기도 했다. 여기엔 재미난 상상이 가능하다. 남의 ‘집’이 단순히 타인 소유의 재산을 상징한다면 아내는 재산 이상의 감정적 연루와 닿아 있다. 집과 아내 사이에는 인간 대 인간 관계를 가능케 하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 남의 아내는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다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이자 그의 아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탐나도 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왜일까? 내가 아닌 내 친구의 아내이고, 내 친구의 남편이고, 내 친구의 집이고 차이기에 더 화려하고 아름답고 멋져 보이는 것은. 사람들은 그래서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고 빼앗고 싶은 마음은 욕망을 부추긴다. ‘남의 것’이기에 더 중요하고 필연적이며 미치도록 탐나는 그것. 그런데 유심히 봐야 할 것은 십계명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탐하는 것이지 탐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의 것은 탐이 난다. 너무도 당연하다. 그래서 더더욱 탐해서는 안 된다. 탐내되 탐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적 억압인 셈이다.

모두 빼앗았으나 어느 하나 내 것일 수 없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망은 탐내는 질투로 침잠한다. 질투는 힘이 세서 때로는 의외의 결과물을 일궈내기도 한다. 성공의 밑거름에는 역설적이게도 언제나 질투가 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상관없다. 바로 이웃이기에, 그들이 바로 내 곁의 사람이기에 비교되고 탐이 난다. 당신의 소유물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 때, 욕망과 질투에 시달리는 빈곤한 영혼들. 때로 영화는 그 쓸쓸한 영혼들에게 연민과 위로의 시선을 건넨다.

알랭 들롱의 강렬한 눈빛으로 기억되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타인의 삶을 탐내고 탐하는 자를 잘 보여준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탐하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발생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가난한 삶을 일확천금으로 탈피하고 싶은 가난한 청년 리플리에게는 필립이라는 동창생이 있다. 리플리와 달리 필립에게는 유능한 아버지와 그로부터 물려받을 재산, 그리고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다.

성공을 꿈꾸는 리플리에게 필립의 삶은 그의 결핍을 확인시켜주는 리트머스지와 같다. 필립은 리플리가 너무도 간절히 원하는 것을 쉽게 갖는다. 아니 필립에게는 이미 갖춰져 있다. 리플리는 생각한다. ‘필립이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만이라도 내게 있었더라면.’ 그런데 필립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 리플리가 보기에 필립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진 행운아인지조차 모르는 바보이자,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감사한 마음도 없이 행운을 남용하는 난봉꾼이다. 필립은 버르장머리 없고 거만한 철부지에 불과하다.

필립의 삶은 리플리에게 상대적 결핍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게다가 필립은 리플리를 하인처럼 부리고 프랑스 애인 마르주 앞에서도 그를 모멸한다. 필립의 태도는 리플리의 결핍감과 자괴감을 분노로 바꾼다. 리플리가 보기에 필립은 그만한 행운을 누릴 자격이 없다. 그래서 리플리는 필립의 사인을 연습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이 ‘필립’이 되기로 한 것이다.

영화에서 리플리는 자신을 무시하는 필립에게 모욕감을 느끼고 증오심에 그를 살해한다. 마음으로는 이미 수차 그를 죽이고 싶어했음에 틀림없다. 그가 평생토록 갖고 싶어하는 것들을 필립이 모두 갖고 있기에 그는 필립의 모든 것을 탐한다. 그의 감정이 증오가 아닌 질투였음은 리플리가 단지 필립을 없애고 싶어한 것이 아니라 필립이 되고 싶어했다는 데서 분명해진다. 그는 단순한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삶, 필립의 삶을 탐낸다.

하지만 내가 타인의 삶을 사는 것, 타인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눈이 부시도록 태양이 빛나는 어느 날, 필립이 되는 데 완벽하게 성공한 리플리는 자신이 버린 시체와 마주친다. 영화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은 리플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행복의 정점 너머 리플리의 비밀은 서서히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은 시간 리플리는 필립으로서의 삶을 만끽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닻이 뭍에 닿는 순간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고 말 것이다. 리플리의 행복은 어차피 타인의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그에게 귀속될 수 없는 것이다. 미칠 듯 갈증을 불러일으키던 필립의 삶을 빼앗기는 하지만 그것은 찰나적 소유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빼앗았지만 결국 어느 하나도 가질 수 없는 리플리의 비애는 타인의 삶을 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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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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