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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독감바이러스의 ‘100년 전쟁’

  • 이한음│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인류와 독감바이러스의 ‘100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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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이와 재편성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압도적인 치사율을 보이며 전세계적인 유행병으로 번져나간다. 인류가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항할 무기를 꺼내들면, 다음 순간 바이러스는 새로운 변이를 준비한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에서 2009년의 신종 플루에 이르기까지 새와 인간, 돼지와 인간을 오가며 벌어진 인류와 바이러스의 전쟁사(史).
인류와 독감바이러스의 ‘100년 전쟁’

4월26일 신종 인플루엔자의 진원지인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당초 예정된 미사가 취소된 과달루페 성당 앞에서 수호성인인 과달루페 성모를 쳐다보며 경의를 표하고 있다.

1917년 4월6일, 미국은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고 선언했다. 자국 상선들이 독일군의 잠수함에 계속 공격당하는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미국의 참전을 계기로 지루하던 전세는 서서히 역전되기 시작했고, 연합국은 독일과 헝가리를 비롯한 동맹국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미국의 이 적극적인 참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전쟁’을 인류 전체에게 선사하며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졌다. 1918년 미국은 프랑스를 비롯한 각지의 전선으로 군인을 실어 날랐다. 이 대규모 인구이동이 시작된 지 약 한 달 뒤, 세계 각지에서 독감이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활발하게 이뤄지는 철도와 해상 운송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구실도 했다. 좀 과장하자면 지구 전체에서 이 독감이 발생하지 않은 곳은 고립된 섬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훗날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독감에 전세계에서 약 5억명이 걸렸고, 그중 5000만~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1918년 9월부터 12월까지 약 16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독감이 처음 출현한 곳은 1918년 1월 미국 캔자스주의 해스켈이었다. 5만여 명의 군대가 훈련받던 장소였다. 그 뒤로 몇 달에 걸쳐 유럽 각지의 전선에서 병사들이 드문드문 앓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감염자 수는 적은 편이었다. 비록 감염되면 심하게 앓았지만 사망률은 비교적 낮았다.

그 와중에 미국에서는 전쟁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고, 철도 등을 통한 물자와 인구의 이동이 활발해졌다. 그에 따라 독감도 각지의 병영과 도시로 급속히 퍼졌다. 이어서 4~8월에 걸쳐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국 병사들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향했다. 그들이 프랑스에 상륙하면서 바이러스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8월 말, 바이러스에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병원성과 전염성을 띤 이 돌연변이 바이러스는 프랑스와 미국의 항구도시에서 거의 동시에 출현했다. 새 바이러스는 곧 배편으로 다른 항구들로 퍼졌고,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로도 향했다. 전시라서 보안을 이유로 검열이 심했기 때문에 독감이 유행한다는 소식은 언론에 거의 실리지 않았다. 다만 당시 중립국이던 스페인은 언론 통제가 덜했기에, 독감 발생 소식은 스페인을 통해 세계 각지로 퍼졌다. 이 독감이 뜬금없이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일지 모른다.

12월 초까지 미국에서 감염자 수는 약 2000만명으로 늘었고, 사망자는 45만명에 달했다. 미국 정부는 적국과 전쟁을 하는 와중에 바이러스와도 전쟁을 치러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여럿이 모이는 행위가 금지되고, 학교와 극장이 문을 닫았으며, 병원에만 사람이 바글거렸다. 도시는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더 이상 유럽 전선으로 군대를 보낼 여력도 없었다. 비좁은 선실에서 오밀조밀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배라는 공간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전파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적(敵)의 정체를 찾아서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던 당시, 인류는 독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적(敵)’의 정체가 파악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더 흐른 뒤였다. 1933년 가벼운 독감이 유행하고 있을 때, 영국 국립의학연구소의 패트릭 레이들로 연구진은 사람의 점액을 여과지로 잘 걸러낸 뒤에 실험동물인 흰족제비에게 주었다. 그러자 흰족제비는 독감에 걸렸다. 세균 같은 병원체는 여과지를 통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인플루엔자의 원인인 병원체는 세균보다 작은 바이러스임이 분명했다.

이 연구의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미국의 리처드 쇼프였다. 1918년 9월 미국 정부기관 소속의 한 수의사는 돼지들이 시름시름 앓는 현상을 목격했다. 수많은 돼지가 전염병에 걸려 앓다가 죽어나갔다. 그는 그 전염병이 당시 사람에게 유행하고 있던 병과 같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돼지가 독감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돼지 인플루엔자는 몇 년 동안 계속 유행했고, 바이러스 학자 리처드 쇼프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돼지의 호흡기에서 채취한 점액을 거른 물질이 다른 돼지를 인플루엔자에 감염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즉 돼지 인플루엔자의 원인인 바이러스였다. 그는 1918년의 범(汎)유행병(팬데믹)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몸에서 추출한 항체로 돼지 인플루엔자를 막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는 1918년에 유행한 사람 인플루엔자가 돼지의 인수(人獸)공통전염병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지만, 두 인플루엔자를 연관지을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다.

그가 찾지 못한 단서가 발견된 것은 다시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1997년 제프리 토벤버거 연구진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1918년 독감으로 죽은 사람을 부검할 때 만든 폐 조직 슬라이드를 발견했다. 거기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잔해가 들어 있었다. 그들은 1918년 알래스카에서 죽어 영구동토층에 묻혀 있던 시신의 폐에서도 같은 바이러스의 잔해를 찾아냈고, 이를 분석해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일부 알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 돼지,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서열들과 비교했다. 그 서열은 돼지의 초기 독감바이러스 서열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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