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검찰은 ‘빨대 색출’ 포기하는 게 좋다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입력2009-06-05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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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빨대 색출’          포기하는 게 좋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4월30일 600만달러 수수의혹과 관련, 취재진 앞을 지나 대검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을 가리켜 미국 언론계의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라고 지칭했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은 보통의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개구쟁이 캐릭터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보물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워싱턴포스트’의 두 특종기자를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워터게이트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의 신원을 지난 30년간 보호해주었다. 비밀을 무덤까지 안고 간다는 것은 실제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번스타인과 우드워드는 그런 일을 해냈기에 더욱 존경받는 것이다.

    마크 펠트는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부 고발자임을 ‘베니티 페어’에서 밝혔다. 이에 앞서 마크 펠트는 그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에게 “공동으로 발표하자”고 우회적으로 제의한다. 그러나 기자는 이마저 거절함으로써, 취재원 보호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전범(典範)을 보여줬다.

    언론계의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

    현실에서 취재원을 온전히 보호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취재원이 내부 고발자(Deep Throat)일 땐 더욱 어렵다. 기사의 신뢰성이 공격받을 땐 까발리고 싶은 엄청난 충동을 느끼는 기자도 없지 않지만 취재원을 지켜주는 기자가 더 많다. 근래 주디스 밀러 구속사태에서 보듯 미국의 민사법정에서는 취재기자가 취재원을 밝혀야 하는 증언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법정 모욕죄로 구속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러나 당사자는 훗날 언론자유의 순교자로서 갈채를 받게 된다.



    취재원 묵비권은 취재기자가 자신이 수집한 정보의 출처를 비밀로 할 수 있는 권리다. 구체적으로, 검찰의 수사과정이나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이에 대한 증언을 요구받았을 때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취재원 보호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형사소송법 149조(업무상 비밀과 증언거부)와 민사소송법 286조(증언거부권)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 약사, 종교인에 대해선 직무상 비밀에 대한 증언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자에 대해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취재원 보호문제가 논란이 돼왔다. 1896년 메릴랜드 주에서 이를 보장하는 이른바 방패법(Shield law)이 통과됐다. 그러나 1933년까지 이를 따르는 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취재원 보호를 위한 ‘언론인의 특권(newsman‘s privilege)’이 민감하게 대두된 시기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다. 마약, 민권, 반전운동 등 무질서가 만연하고 폭력사태가 잇따라 발생하자 수사기관은 수사자료 확보 차원에서 기자들을 소환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대한 반발이 확산됐다. 현재 미국 31개 주에서는 취재원 보호를 위한 보호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유럽과 같은 연방차원의 법률은 없다.

    ‘빨대’색출보다 시급한 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회갑 선물로 값비싼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기사가 최근 보도됐다. 그러자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언론에 수사정보를 제공한 ‘빨대’를 색출하겠다고 공언했다. 검찰은 알아야 한다. 그런 공언은 엄포에 그치는 게 좋다는 점을 말이다.

    어차피 기자는 취재원 보호에 나설 것이고 그렇게 하더라도 슬그머니 해결된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기자의 취재원 진술거부가 법적으로 문제가 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취재원 보호는 언론자유를 위한 핵심 가치이고 언론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요소다. 검찰에 시급한 일은 ‘빨대 색출’에 추상같이 나서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권력에 순하디순한 양이고 자기 조직의 떡값 의혹에는 너그럽다’는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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