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 박상철│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scpark@snu.ac.kr│

    입력2009-07-02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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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장수마을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 나산면 안영마을 주민들.

    처음 백세인(百歲人) 조사를 시작한 것은 밀레니엄이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 즈음이었다. 조사의 계기는 단순했다. 인간 생애 최후 순간, 그 상태는 어떠할까? 사람은 25∼30세를 정점으로 신체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100세란 정말로 환상적인 나이인데 그렇게 오래 사는 사람은 누구인지 의문이 들었다. 노화에 따라 변화하는 생체의 구조와 기능을 외삽(外揷·extrapolation)하면 생애 최종시기, 즉 100세 정도 되었을 때는 신체의 기능이 형편없고 활동이나 인지기능 등도 아주 나빠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999년 계획을 잡고, 2001년부터 통계청에서 뽑아든 자료를 지도 삼아 본격적으로 백세인 조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의료진만으로 시작했지만 탐방이 길어지면서 인류학, 지리학, 가정학, 사회학, 복지학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한국의 백세인’ 조사팀이 꾸려졌다. 전국 방방곡곡 첩첩산중 어디든지 찾아갔다. 그래서 많은 초장수인을 만났고 다양한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조사팀은 조사를 하면서 19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3세기를 걸쳐 살아온 백세인들을 만났다. 우리나라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직도 ‘조선’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3분의 1이나 됐다. 젊었을 때 중국에서 활동했다면서 “상하이와 베이징이 많이 변했다는데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들은 역사의 격동기이던 한말의 혼란과 일제의 강압, 광복 후의 격변을 모두 이겨낸 이들이었다.

    “빈둥대려면 왜 살아?”

    지난 몇 년 동안 조사팀이 해온 장수인 관련 학술 조사결과는 많은 보고서와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한국인 건강 장수의 의학적, 심리적, 영양학적, 생태적, 사회적 특성을 알리는 데 큰 구실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초장수인들의 삶의 질 실태와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실제로 백세인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전달할 기회가 없었다.



    고백건대, 조사를 해온 필자 역시 백세인들과 만나며 그들이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소설 속 걸리버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어떻게 백 살이 넘은 분들이 저러실 수 있을까?”하면서 조사 도중 감탄사를 연발했다.

    수많은 백세인과의 만남과 그에 따른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백세인들에게 가장 감명받은 부분이 뭐였는지 묻는다면, 노동과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라고 말하겠다.

    100세가 넘어서도 노동은 계속된다. 올해 101세인 전남 곡성의 이판순 할머니는 “우리나라 노인들 문제가 많다. 늙었다고 일하지 않고 빈둥대기만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일해야 한다”면서 노인문제에 대해 일갈했다.

    백세인이 일을 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 이유 때문은 아니다. 강원 횡성에서 만난 98세의 추영엽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성공한 재력가임에도 매일 농사를 짓고 소도 직접 관리한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곳간에 가서 바구니와 삼태기를 만든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바구니를 조사단에게 나눠주는 할아버지는 일흔여섯의 아들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경북 예천에서 만난 98세의 권점녀 할머니는 조사단이 집에 방문했을 때도 열심히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노인이 끊임없이 일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쉬면서 하라고 말했더니 “옛 생각 하기 싫어 낮잠도 안 잔다”고 답했다. 때로 노동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의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동은 사실 장수의 주된 비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 좋다. 많은 백세인이 하나같이 매일 무언가 일을 한다. 건강한 장수를 원한다면 어떤 것이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100세 시어머니, 여든 살 며느리

    하지만 백세인은 긴 수명만큼이나 일반인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이를 이겨낸 이들이기도 하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아내나 남편은 물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백세인의 평균 출산 자녀수는 5.4명인 데 반해 생존자녀는 2.9명에 그쳤다. 그리고 대부분 가족과 살고 있지만 9% 정도는 100세 넘어서도 혼자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홀로 사는 백세인의 경우 직계 자녀의 방문빈도가 월1회 이상은 40%에 불과했고 아예 접촉이 없는 경우도 20%가 넘었다.

    물론 효자, 효부도 많다. 조사를 다니다 보면 가끔은 민망한 현실과 마주치기도 한다. 백세인을 모시는 가족이 대개 큰아들, 며느리이다 보니 그들도 대부분 지긋한 나이가 돼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여든 다 된 며느리가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상대적으로 더 건강해 보이는 100세 시어머니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전남 곡성에서 만난 또 다른 백세인 이수경 할머니의 며느리는 80이 넘었다. 65년째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80 며느리의 평생 소원은 다리 쭉 뻗고 잠 한번 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까이 사는 동서에게 시어머니를 맡기고 도회지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가서 쉬고 오면 어떠냐는 제안에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요?” 하며 반문했다. 어떻게 어르신을 두고 집을 비울 수 있느냐는 핀잔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은 자신의 할 일이라는 순명(順命) 의식이 철저했다.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장수노인과 대화하는 박상철 교수.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전북 순창에서 만난 102세 라영호 할머니는 고령에도 집안 살림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며느리는 오히려 한가했다. 며느리는 놀아도 라 할머니는 쉬는 법이 없었다. 100세가 된 시어머니가 여든이 된 며느리를 아직도 돌보고 있는 집이었다.

    백년해로(百年偕老)

    경남 거창에서 만난 104세의 정규상 할아버지는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와 둘이서 지내고 있었다. 자신은 나이 50에 혼자됐으나 그 무렵 홀로된 며느리가 불편할까 봐 재취를 하지 않고 그냥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둘이 살아온 기간이 벌써 50년이 넘었다. 서로가 서로를 안쓰러워하며 살아온 반백년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외로움은 백세인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다. 전남 담양에서 만난 99세 유남수 할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와서 스물네 살에 유복자를 하나 얻고 평생을 청상과부로 살아왔다. 찾아온 조사팀을 너무도 반가워했다.

    “사람들이 온께 좋소. 오래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오잉. 사람들이 귀해라우.”

    할머니는 조사팀이 떠날 때는 마을 어귀까지 따라오면서 인사를 여러 번 했다. 전해 듣기로는 조사팀이 떠나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한다.

    조사대상 백세인들의 평균 사별 시기는 남자 79세, 여자 58세로 배우자와 사별 후 30~40년을 홀로 산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배우자가 생존한 경우도 3% 된다. 물론 오래된 부부 사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강원도 산속에서 만난 98세 김석준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유명한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여자문제에 재산문제도 더러 있었을 터였다. 같이 지내는 할머니와는 아직도 상당한 긴장관계였다. 할머니에게 약간 위로의 말을 던지자 “더러워서 질투도 안 했어” 하고 내뱉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92세 전수동 할아버지는 아내가 둘이었다. 본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해 첩을 둔 것. 같은 집에 함께 살면서 본부인은 남편을 제외한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눈 다친 것, 벌 받아서 그래.” 여자에게 원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맺힌다는데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나누는 부부들도 있다. 강원 화천에서 만난 98세 송기구 할아버지 부부는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모시고 살겠다고 하는데도 이를 뿌리치고 부부가 단둘이 함께 살 수 있는 강원도 산골을 절대적 삶터로 여겼다. 노부부의 사랑은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조사 중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호호호” 하며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가로막고 나섰다. “이 할멈 부끄러워 말 못해. 이 할멈, 나 사랑해.”

    너무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표현이었다. 강원 횡성의 권순경(98세) 할아버지 부부는 더욱 뜨거웠다. “요새도 잘 때는 영감 손잡고 자.” 할아버지가 거기에 덧붙였다.

    “사랑하지.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유토피아

    초장수인 조사를 다니면서 인상적인 지역을 많이 다녔지만, 소록도는 특히 잊지 못할 곳이다. 도연명은 꿈만 같은 무병장수 만년 청춘의 땅을 도화원(桃花源)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모든 사람이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 채 화목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존재한다면 소록도가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사실 소록도 조사는 원래 계획된 건 아니었다. 최고령자를 조사하다가 전남 고흥에 들렀을 때였다. 조사단을 수행하던 보건복지가족부 직원이 고흥까지 왔는데 꼭 소록도를 한번 방문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이 소록도에 7년을 근무하다가 본부로 갔는데 여기까지 와서 인사라도 하고 가고 싶다는 간청에 마지못해 찾아갔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소록도 화장터를 들렀고 거기서 지나가는 말로 “화장하는 분들의 평균 나이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가 예상외의 놀라운 답을 들었다. 평균적으로 여든이 훌쩍 넘는다는 것. 놀라운 마음에 한센 환우의 사망통계를 구해 찾아보니 실제로 한센병을 이겨낸 이들의 평균수명은 일반인보다 높았다. 질병이 있거나 회복됐다손 쳐도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만 하는 한센병 환자들이 일반인보다 훨씬 오래 산다니…. 한센병이라는 험한 질병 때문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채 평생을 살아온 이들이 바로 대표적인 장수 그룹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마음에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어떻게 질병과 그로 인한 지체부자유, 소외 등의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오래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의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이들과의 면담조사에서 깨달은 답은 삶에 대한 진지하고 낙천적인 태도였다.

    열두 살에 발병해 열일곱에 소록도에 들어와 86년째 살고 있는 103세 정동수(가명) 할아버지는 바로 전설 그 자체였다. 안 해본 일이 없고 온갖 고생과 수모를 다 이겨낸 세월, 그런데도 지난 세월에 대해 한을 품고 있지 않았다. 노인우울증 검사 모든 항목에 대한 그의 답은 모두 “아니올시다” 였다. 어떻게 그토록 걱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단히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어”라고 말했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로부터 소외당해도 신앙으로 험난한 생을 버텨낸 셈이다.

    박용수(가명) 할아버지는 지역에 숨어 살다가 50이 다 돼 소록도에 들어와 45년째 살고 있었다. 섬에 들어와 만난 환우인 아내와 40년째 살고 있는데 현재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할아버지는 매일 두 번씩 병문안을 다닌다고 했다. 무심코 하루에 한 번만 가도 되지 않느냐는 어설픈 질문에 할아버지의 답은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그 사람은 내가 병원에 가지 않으면 굶어 죽어. 내가 가서 직접 떠먹여주는 것만 먹어.”

    여든이 넘었고 병원에는 수많은 봉사자와 간호사가 있는데도 오직 영감님이 먹여 주는 것만 먹는다는 이야기에 두 분의 사랑과 신뢰가 얼마나 지극한지 실감이 났다.

    아무리 험난한 삶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리고 진심으로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이 있다면 그곳이 유토피아가 된다는 걸 소록도 장수인들은 증명하고 있었다. 한센병 환우들이 당해야 했던 험난한 고통의 삶이 바로 그곳에서는 아픔 없는 새로운 삶으로 변해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백세인을 찾아 헤매고 다닌 지난 10년은 필자에게 새로운 고령사회 이상향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했다. 사람이 장수하는 데에 여러 복합적 요인이 함께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유전적인 요인을 비롯해 성별, 성격, 생태환경, 사회적 보건적 요인, 그리고 개인의 운동 정도, 영양상태, 이웃관계, 사회참여 등이 모두 상호보완적으로 영향을 주며 장수를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조건 못지않게 실제 직접 만나본 백세인들에게서 확인한 장수의 가치는 바로 이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사실 필자가 처음부터 인간의 장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스트렐러 박사가 제안한 노화의 네 가지 원칙인 보편성, 비가역성, 불가피성, 퇴행성은 당연한 진리라는 바탕에서 연구에 임했다. 처음에는 세포를 중심으로, 다음 단계로 동물을 대상으로 노화를 연구하다가 사람의 노화를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박상철(朴相哲)

    1949년 광주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한국노화학회장, 국제노화학회장, 국제운동생화학회 대회장, 국제백세인연구단 의장 역임

    現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장,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저서 ‘생명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건강보다 참된 것은 없다’ ‘장수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한국의 백세인’ ‘100세인 이야기’


    노화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의 노화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도 다른 동물처럼 늙게 마련이고 늙으면 당연히 건강상태가 나빠지며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백세인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연구팀은 과연 백세인과의 면담이나 가능할지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초고령인, 백세인들은 나이가 들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백세인들이 보여준 여유와 자상함, 능동적인 생활태도는 100세라는 연령을 잊게 했다. 생물학적 나이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해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되레 100세가 넘어도 그리움을 갖고,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인간의 삶이란 한없이 위대하다는 것, 그 평범한 진리를 이들은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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