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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년 특별연재/책으로 본 한국 현대인물사-마지막회

김수환 추기경

우리 시대 ‘어른’의 성(聖)과 속(俗) 순례길

  • 윤무한│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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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사회는 암울하다. 반세기 넘게 한국 가톨릭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사회 약자에게 힘이 되어준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善終)하면서까지 한국인의 가슴을 뜨겁게 데웠다. 수십 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저 하늘의 별이 된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자체가 반성이고 정화일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의 정신풍토는 공황이나 다름없었다. ‘나라의 어른’이 될 만한 분들이 자의건 타의건 잇달아 제거, 탈락되거나 몰락하는 동안 이 땅의 정신세계는 척박한 ‘화전지대’가 됐다. 정신의 천체도(天體圖)에 그려 넣을 별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중병을 앓아왔다.

대한민국에서 어른의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민족 분단의 역사적 조건이든, 지역 갈등과 좌우 갈등 상황 탓이든, 국민 심성의 삭막함 탓이든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땅의 어른은 국민과 너무 같아서도 안 되고, 너무 달라서도 안 된다. ‘혜화동 할아버지’란 수식어와 “나는 바보야”란 말은 우리 국민의 ‘같음’과 ‘다름’ 그리고 ‘성(聖)’과 ‘속(俗)’을 소통시킨 김수환 추기경만의 무르익은 경지를 상징하는 것인지 모른다.

2월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불화와 갈등 속에서 찢어지고 갈라진 국민의 메마른 마음 밭, 이기의 극단으로 치닫는 거친 심성의 자갈밭에 영혼의 비타민을 공급한 전원이었으며, 우리 시대 영성에 융숭한 저수지 같은 어른이었다. 그의 선종에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3부 요인과 개신교 불교 유교 등 종교와 종파를 달리하는 인사들이 줄지어 조문했다. 각계 중요 인사는 물론 이 땅의 서민들, 병들고 가난하고 억압받고 외로운 이들이 그 누구의 강권 없이 스스로 이 물결에 휩쓸렸다.

찬바람 휘몰아치는 날씨에도 명동성당에는 40여만명의 발길이 길게 줄을 지었다. 일찍이 보지 못한 국민적 추모의 장관이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불러 모았을까? 가톨릭계에서조차 예상치 못한 추모 열기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추기경의 부고기사가 사진과 함께 굵직한 제목으로 언론의 첫머리를 장식한 것은 가톨릭 국가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의 마음은 모든 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 관심을 두었던 분이다.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곁에 항상 머물고자 한 삶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낮은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박형규 목사)

“종교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소탈함이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나아가 배타적이지 않은 자세가 타 종교인들의 머리를 숙이게 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고맙다’는 말씀은 단순한 언사가 아니라, 그분의 전체 삶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메시지이자 물질만 추구하는 시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명진 스님)

추기경과 보들레르의 시

한국갤럽이 2월21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한다’는 응답이 87.7%에 달했다. ‘존경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8%에 불과했다. 가톨릭 신자는 97.4%가 김 추기경을 존경한다고 했고, 개신교도(86.4%)와 불교도(90.8%), 그밖에 다른 종교 신자 및 무신론자(83.9%)도 대부분 존경한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결과는 열에 아홉 가까운 사람들이 김 추기경을 존경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존경할 인물이 너무 없어서 황량한 우리 사회에 놀라운 현상이었다.

김지하 시인은 2월17일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 추기경은 김 시인 결혼식에 주례를 서기도 했다. 시인은 ‘오적’으로 필화사건을 겪은 2년 뒤인 1972년 가톨릭계에서 펴낸 ‘창조’지(誌)에 ‘비어’를 게재, 다시 체포돼 마산 국립결핵요양원에 연금됐다. 그때 추기경이 시인을 찾아와 함께 밤을 보냈다. 김지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추기경님은 보들레르의 시를 줄줄 외울 정도의 ‘시인’이시고 아주 큰 예술가셨다.” 그는 이어 “우리 생애에 이런 분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 하면 사람들은 세상과 멀리 떨어진 엄숙한 종교계 최고 지도자를 떠올리기보다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김 추기경이 자신은 부끄럽게도 신비로운 하느님 체험 같은 걸 해본 적이 별로 없다고 고백한 글을 읽으면서, 추기경이 생애의 중대 고비마다 내린 결단 그 자체가 바로 신비로운 체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이는 추기경이 자신의 인간적 고뇌와 약점, 외로움을 드러내는 고백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후부터 불면증으로 약을 처방받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은 어쩌면 사제로서 숨기고 싶은 약점일 텐데, 그걸 드러내보이시는 게 나로서는 오히려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인간적인 내면은 고독하고 소심하고, 중책은 무거웠을 것이다.”

나무묵주 하나만 들고 이승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 “나는 바보야”라고 하면서 스스로 자화상을 드로잉한 그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김 추기경은 사제로 서품을 받은 이후 발표한 사목교서와 메시지, 성명, 미사강론, 대담, 서간, 묵상 등 각종 기록을 묶은 18권의 ‘김수환 추기경 전집’(색인 포함)을 남겼다. 2004년에는 회고록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 평화신문 발행)를 펴냈고, 그에 앞서 1994년에는 자신의 삶과 꿈, 그리고 신앙을 담은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1999년 희수(喜壽) 때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란 고백록 등을 통해 진솔한 내면을 드러내보였다. 그가 남긴 저술, 그리고 그와 남다른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김 추기경의 삶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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