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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⑧

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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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예기치 못한 시한부 선고 등은 상투적이면서도 매번 다른 모양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영화 소재다. 누구나 죽을 것을 알고, 그 죽음이 자신의 예상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기에 그렇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안 순간의 대응방식을 저마다 다르게 그린 영화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버킷 리스트

어느 날 갑자기 중대한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 혹은 가깝게 지내던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죽음은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삶을 방문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운명의 바늘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고 만다. 시인 박목월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놓고 이곳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나는 세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길을 모르는 것이 죽음이다. 시인 정지용은 새가 되어 날아가버린 딸을 유리창에 어린 입김에서 찾고, 화가 뭉크는 절규를 통해 죽음이 깃든 가족사를 압축한다. 죽음, 그것은 예술이 다루어야 할, 그리고 예술이 될 수밖에 없는 삶의 경험 중 하나다.

이승의 삶과 저승의 삶, 죽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영화는 그 장르가 달라지기도 한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을 때, 죽음은 공포의 최종지점으로 여겨진다. 한편 죽음이 변하지 않는 일종의 방부처리가 된다면 로맨스에서 죽음은 때로 구원이 된다. 변하기 쉬운 사람의 마음, 사라지기 쉬운 사랑의 열정이 죽음으로 영원히 보관되기 때문이다. 만일 죽음을 인생의 종착지가 아닌 전환점으로 삼는다면, 그런 설정도 가능할까? 남겨진 자와 떠난 자, 죽음은 알 수 없는 숙제임에 분명하다.

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병원에서 탈출한 두 시한부 환자의 최후를 그린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남은 시간을 멋지게 탕진하리라!

어떤 죽음이 좋을까? 태어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없는 데 반해 죽음의 방식에는 약간의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갑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거나 불치병임을 알았을 때 이후의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종종 이렇게 죽음이라는 극한의 지점 앞에 바투 서 있는 자들을 그려낸다. 죽음의 순간이 바로 턱 밑에서 감지될 때, 그때 우리는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가장 아름다운 로드 무비 중 하나로 기억되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최종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로맨틱한 선택을 보여준다. 마틴과 루디는 병원의 같은 방에 입원해 있는 환자다. 그런데 이 둘의 병이 심상치가 않다. 마틴은 뇌종양을, 그리고 루디는 골수암을 진단받았는데, 병과 씨름하느라 젊음이 어떻게 소모되고 있는지조차 잊고 있다. 어차피 죽게 될 거라면 이렇게 답답한 병실에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두 사람은 어느 날, 금지된 ‘음료’ 데킬라를 마시며 결심한다. ‘만일 죽음이 예정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남은 시간들을 멋지게 탕진하리라’고 말이다.

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하나비’는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사실을 깨닫고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인생을 탕진하기로 작정하자 모든 일이 쉬워진다. 이른바 반사회적 행동들이 그들에게는 유쾌한 일탈의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마틴과 루디는 고급 승용차를 훔치고 권총을 얻어 은행을 털기도 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마틴과 루디는 결국 바닷가에 이른다. 해일이 일 것처럼 거칠게 몰아치는 잿빛 파도 앞에 나란히 앉아 데킬라를 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세상과 작별한다.

노래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가 흐르는 잿빛 바다 앞에서 그들은 천천히 생의 모래시계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살아 바다를 보았기에 죽어서 천국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선율이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화면은 관객에게 위안을 건넨다. 답답한 병동에서의 생활을 깨트리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 그들의 남은 생은 달라진다. 환자로서 죽음을 맞을 것이냐 아니면 격렬하게 한순간이라도 생을 만끽할 것이냐를 선택하자 죽음의 입구가 달라지는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음악이 흐르면서 그들은 그렇게 바다를 통해 천국으로 간다. 만일 천국이 있다면 그들이 난생 처음 본 그 웅장한 파도 속에 있을 게 분명해 보인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을 맡은 ‘버킷 리스트’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노인판(版)이라 할 수 있다. 카터 체임버스(모건 프리먼)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대학 신입생 시절 들었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본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다. 늙은 자동차 정비사 카터에게 그 소망들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잃어버린 추억의 쓸쓸한 흔적으로 남아버린 셈이다.

한편 같은 방에 입원한 다른 노인은 거칠고 괴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바로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잭 니콜슨). 돈을 벌고 사업체를 늘리는 것 외에는 어떤 관심도 없는 수전노다. 꿈과 추억은 있지만 돈이 없는 노인과, 돈은 넘치지만 열망이 없는 또 한 명의 노인. 두 노인은 콤비가 되어 노년의 꿈을 구체화하기에 나선다. 에드워드가 카터의 꿈을 ‘산’ 것이다. 부유한 친구를 만나 평생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는 노인. 어쩌면 영화 ‘버킷 리스트’는 복권을 사며 한 번쯤 바랐던 인생의 행운을 다른 시각으로 그려본 영화일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 죽음은 인생의 최종 지점이 아니라, 여생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제공된다. 죽음에 대한 진실한 고민만으로도 시간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장렬하게 젊은 죽음을 맞이하는 마틴과 루디, 그리고 죽기 전 유쾌한 오락에 빠진 두 노인. 이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기회다. 최종 도착지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그것으로 가는 과정의 유쾌함,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질감이다.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다면 필요한 건 두려움이 아니라 남은 시간의 추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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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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