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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신동아 600호

‘민족의 지성’ 신동아 600호의 언론사적 의미

역사적 진실 밝히는 보도와 국가의 진로 제시한 78년

  •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사 presskr@empal.com│

‘민족의 지성’ 신동아 600호의 언론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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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장수, 최고 시사종합지 ‘신동아’가 지령 600호를 맞이했다.
  • 신동아는 일제 강점기에 창간되어 파란만장한 격동의 현대사를 기록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유도하고, 권력의 탄압에 저항하면서 독자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왔다.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한 감시 기능을 잃지 않고,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온 78년의 역사를 정리했다.
‘민족의 지성’ 신동아 600호의 언론사적 의미
신동아’가 지령 600호를 발행하여 우리 잡지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 창간되어 78년 동안 파란만장한 격동의 현대사를 기록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유도하는 특종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의 탄압과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고 독자와 함께하는 동안 잡지 역사에 큰 봉우리로 우뚝 선 것이다.

잡지 지령이 100호를 넘겨도 신문 문화면에 뉴스로 취급되던 시대가 있었다. 지령 10호를 넘기기도 어렵던 시절의 일이다. 100호 발행의 기록을 깨는 잡지들은 1969년 말까지 20여 종이 나왔다. 시사 종합잡지 ‘사상계’를 비롯하여 학생잡지 ‘학원’, 여성 교양지 ‘여원’, 문학잡지 ‘현대문학’, 대중오락지 ‘아리랑’ 같은 잡지였다.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치는 시기를 대표하던 사상계는 1969년 12월에 지령 200호의 고지를 넘었으나 이듬해 5월 205호를 끝으로 강제폐간 당했다. 17년 동안 최장기의 발행실적을 남긴 종합잡지였지만 권력의 손에 목숨이 끊어졌던 것이다. 월간 ‘세대’(1963.6 창간)는 1971년 11월 통권 100호를 발행하였으나 1979년 1월부터 발행을 중단하여 20년을 넘지 못했다. 우리의 잡지 발행 여건이 매우 어려웠음을 증언하는 아쉬운 사례들이다.

위 잡지 가운데 지금까지 발행되는 잡지는 현대문학이 유일하다. 1955년 1월에 창간된 현대문학은 2004년 12월에 지령 600호를 넘어섰고, 이듬해 1월에 창간 50주년을 기념한 장수 잡지다. 2009년 8월 현재 지령 656호를 발행하고 있지만 종합잡지로서 600호를 발행하는 것은 신동아가 처음이다.

신동아는 일제 강점기에 창간되어 1936년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폐간되었다가 28년의 공백기를 거친 뒤에 다시 살아났으니 현존하는 종합지 가운데 가장 먼저 태어난 잡지이기도 하다. 힘든 장정(長程)을 걸어오며 잡지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신동아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잡지 저널리즘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짚어본다.

일제의 만주침략 직후 창간

신동아는 1931년 11월에 창간되었다. 일제가 만철선(滿鐵線) 폭파사건을 조작하여 만주사변을 일으킨 날은 창간 직전인 9월18일이었다. 만주사변은 1929년부터 불어닥친 세계의 경제공황을 타개하는 한편으로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침략전쟁의 전초전이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독재정권을 수립하는 등 세계는 점차 전쟁의 위협으로 인한 긴장과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동아일보 사장이자 신동아 발행인이던 송진우는 창간사에서 “조선 민족은 바야흐로 대 각성, 대 단결, 대 활동의 이른 새벽[曉頭]에 섰다”고 말하고 신동아의 사명은 ‘특색 있는 모든 사상가, 경륜가의 의견을 민족대중의 앞에 활발하게 제시하여 비판하고 흡수케 하여 민족대중이 공인하는 가장 유력한 민족적 경륜이 발생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민족이 나아갈 길의 대 경륜을 제시하는 전람회요 토론장이라는 것이었다. 신동아는 개인의 주장이 논조를 좌우하는 소규모 잡지와는 달리 동아일보의 사시를 반영하는 제작방침을 견지했다. 또한 당시의 다른 민간 신문사들의 잡지발행을 자극하여 이른바 ‘신문잡지시대’를 선도하였다.

창간호는 발매 부수가 2만부를 돌파하여 당시로선 파격적인 판매실적을 올려 절판되었고, 제2호는 3판까지 발행하여 1만5000부 내외, 제3호부터는 9000~1만부 선에 고정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발행해오던 잡지들의 발행부수는 많아야 2000~3000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동아일보를 포함한 일간지들의 발행부수가 10만을 넘어본 적이 없었던 사정과 비교한다면 이 같은 잡지 판매 부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여세를 몰아 동아일보가 1933년 1월 여성지 ‘신가정(新家政)’을 창간하자 신동아 등 두 잡지의 제작을 위해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신동아 창간 2주년이던 1933년 11월 두 잡지를 제작할 잡지부를 신설했다. 일간지가 발행하는 독립된 첫 잡지부였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이광수(李光洙), 편집국장대리 설의식(薛義植)이 있었고, 잡지부에는 주요섭(朱耀燮), 이은상(李殷相), 고형곤(高亨坤), 변영로(卞榮魯)를 비롯한 문인, 언론인, 미술가들이 근무했거나 거쳐갔다.

신동아 독자 투고란을 거쳐 문인이 된 사람 가운데는 이화여전을 졸업한 모윤숙(毛允淑), 이화여전 재학생 노천명(盧天命), 평양 숭실학교 3학년 황순원(黃順元)도 있었다. 그러나 만 4년2개월 통권 59호를 발행한 신동아는 1936년 8월26일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정간 당하여 더 이상 잡지를 발행할 수 없게 되었다. 자매지 신가정도 함께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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