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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⑨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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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의 한국 영화에는 멋지고 화려한 주인공들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최근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주인공들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의 낙오자들이다. 그런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비주류 스포츠를 만나 진정한 운동선수로 멋들어지게 변신한다. 그리고 관객은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소박한 염원이 스크린 속에서 충족되는 광경을 보며 주인공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영화 ‘국가대표’는 비인기 종목인 스키점프에 대한 이야기다. 불과 다섯 명으로 이뤄진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기상천외한 훈련 모습이 절로 웃음을 선사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발달해왔다. 맨 처음 이야기는 신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구원해낸, 인간을 초월한 신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 다음은 영웅이었다. 혈통도 인격도 완벽한 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오이디푸스도, 햄릿도 모두 ‘왕자’들이었으니까. 그 후부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점점 평범해지기 시작한다.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 감자를 훔치는 복녀, 너무나 순진해서 괴로운 테스까지. 근대 이후, 현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녀라든지 거지, 사회의 하층인물인 경우가 더 많았다. 사실 주인공은 대부분 현실 속에선 별 볼일없는 인물이 더 많다.

루저 - 새로운 주인공들

그런데 최근의 영화들은 별 볼일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낙오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곤 한다. 삼류 깡패, 나태한 형사, 뚱뚱한 여자, 약물중독으로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 국가대표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거나 무시당하는 인물들이다. 직업도 변변치 않고 직업이 있다 해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들을 보면 이러한 특성들이 더욱 두드러진다.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한 무능한 형사가 얼결에 희대의 탈주범과 맞닥뜨리고, 끝내 탈주범을 잡는 과정을 그린 영화 ‘거북이 달리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적 낙오자들은 독립영화의 시선으로 바라봐주어야 했던 약자들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촌구석을 떠도는 그룹 멤버나 직업전선에 뛰어든 젊은 여성들은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상업영화는 루저(loser)들을 불러내 농담하는 주체들로 내세운다. 그들은 종종 마지막에 가서 성공을 거두고 루저의 모습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또 많은 이가 그저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꼭 세속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도 아니다.

루저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최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균 이하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버라이어티 쇼의 홍보문구도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버라이어티’임을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시사적이다. 사실 실패한 낙오자들이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주목받는 인물들로 성장할 때, 우리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설사 그들이 세속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일희일비하는 세상의 장삼이사와 닮은 낙오자 주인공들은 우리의 팍팍한 삶에 한 줄기 위안을 선사한다. 어쩌면 정말 사람다운 사람처럼 보이는 주인공이야말로 루저일지도 모른다.

집념의 아저씨, 조필성

아저씨는 아줌마만큼이나 편견이 많은 호칭이다. 아저씨는 배가 나오고, 굼뜨고, 어딘가 조금 변태스럽고 뻔뻔한 남자들을 지칭한다. 아저씨라는 호칭 속에는 수줍은 소년도, 멋진 훈남도 없다. 섹스어필은 가장 먼저 휘발된다. 아저씨는 대한민국 불쌍한 아빠들의 공공의 낙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아저씨라고 불리는 순간, 남자로서의 한 사람은 지워진다. 아저씨 조필성은 잘하는 일도, 열심히 하는 일도 없는 형사다. 네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지만 집에서는 오래돼 소음만 심한 냉장고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동네 사람들과 협잡해 푼돈이나 얻어먹던 필성은 이 사실이 밝혀져 불명예스럽게도 정직당한다. 능력 없는 남자는 자존심도 센지라, 아내의 쌈짓돈을 훔쳐 소싸움에 건다. 어, 그런데, 이런! 조필성이 딴다. 게다가 판돈의 여섯 배나. 문제는 운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것. 필성은 운 없는 놈의 대명사라 1800만원을 땄는데 만져보지도 못하고 전부 도둑맞는다. 게다가 상대는 희대의 탈주범. 필성은 돈만 뺏기는 것이 아니라 실컷 얻어맞고 형사 이름에 먹칠까지 하게 된다. 가장으로서, 형사로서 수모를 당한 필성은 이제 인생의 목표를 바꾼다. 탈주범 송기태 잡기!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기기밖에 못하던 거북이가 끝끝내 토끼를 잡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기면서 달리는 토끼를 잡아내는 형사 조필성의 이야기는 무능한 아버지의 일화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는 경찰서에 있으나마나한 무용지물 형사이기도 하지만 집안에서도 역시 오래 묵어 쓸모없는 가구보다 더 천대받는다. 돈도 못 벌어다주고 주변머리도 없는 조필성은 아버지로도 그리고 남편으로도 낙제감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거북이 달리다’에서 조필성이 변모하는 과정이다. 조필성은 대오각성한 후 멋지게 탈주범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늘 하던 대로 엉뚱하고 띄엄띄엄한 방식으로 해낸다. 그가 변모한 점이라면 절실히 그를 잡고 싶어했고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끈덕지게 그를 쫓은 결과, 잡아낸 것이다. 말 그대로 거북이가 토끼가 된 것이 아니라 거북이 근성 그대로 토끼를 잡는다.

조필성의 끈질김은 충남 예산이라는 배경을 통해 구체화된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끈덕진 조필성의 캐릭터는 예산이라는 촌의 정서로 수식된다. 영화 초반 늘 2등이라고 멸시받던 ‘곰이’가 유력 후보 ‘태풍’을 물리치고 우승 소가 되듯이 실패한 아버지 조필성은 날고 뛰는 송기태를 잡아 영웅이 된다.

영화 ‘거북이 달리다’는 소싸움, 그리고 충청도라는 코드를 통해 끈질기게 오래, 천천히 해내는 근성을 그려낸다. 그리고 마침내 그 근성으로 낙오자 조필성은 멋지게 제복을 차려입은, 권위 있는 아버지 조필성으로 돌아온다. 속옷 차림으로 쫓겨났던 필성이 멋지게 제복을 입고 돌아오는 것이다. 필성은 범인을 잡고 영웅이 돼 가족에게 귀환한다. 딸들과 아내는 멋진 사회적 제복을 입고 돌아온 아빠를 환대한다.

‘아버지’는 속옷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이나 계층을 나타내는 상징적 옷이다. 제복을 입고 있을 때에야 아버지로서 대우받을 수 있다. 일일교사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아빠, ‘거북이 달린다’에는 아빠, 남편으로서 당당히 걸어오고 싶은, 이 시대의 낙오자 아버지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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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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