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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섬 민통선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강사 koyou33@empal.com│

분단의 섬 민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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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영욕의 강산’에서 돋보이는 문화유적지는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에 있는 덕진산성. 민통선 북부에 있기에 군부대 승인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광해군을 내쫓은 반정 병력이 이 산성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당시 장단부사 이서(李曙·1580~1637)는 비밀리에 군사 700명을 키웠다. 이들은 1623년 3월12일 밤에 이곳을 떠나 13일 새벽 창덕궁을 급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새 임금으로 추대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은 구석구석에 야사(野史)를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데 이서의 아내에 관한 애달픈 사연도 전한다. “거사에 성공하면 나룻배에 붉은 깃발을, 실패하면 흰 깃발을 달고 돌아오겠다”고 말한 이서는 약속대로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뱃사공이 흰옷을 벗어 붉은 깃발 위에 걸어놓았다. 멀리서 흰 깃발을 본 이서의 아내는 남편이 반정에 실패해 대역죄인이 된 줄 알고 자결했다.

1500년 역사를 지닌 대규모 사찰 건봉사(강원 고성군). 신라 법흥왕 때 혼혈 스님인 아도화상이 창건한 이 절에서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가 승병 700명을 훈련시켰다. 640칸 규모의 최대 사찰이자 호국불교의 상징이었다. 건봉사의 비극에 관해 저자는 이 책의 제4부 ‘믿음의 성지’에서 비감한 심경으로 서술했다.

6·25전쟁 때 남한을 침공한 북한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하면서 건봉사에 집결했다. 유엔군은 포탄 10만발을 발사해 이곳을 초토화시켰다. 국보 412호 금니화엄경 46권과 사명대사의 유물이 모조리 사라졌다.

신라의 마지막 왕은 경순왕이다. 경순왕은 재위 9년 때인 935년 10월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겼다. 이에 앞서 927년 11월 경애왕은 후백제의 지도자 견훤이 경주에 쳐들어왔을 때 포석정에서 술잔치를 벌인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제5부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이견을 제시한다. “경애왕이 추운 겨울에, 국난에 빠진 상황에서 술판을 벌였겠느냐”는 의문을 던졌다.



저자는 경순왕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자리 잡은 경순왕릉을 찾아간 방문기가 흥미진진하다. 농가 사이를 지나 좁은 길 양쪽에 달린 ‘지뢰’라는 살벌한 표지판이 보인다. 길이 끝나는 곳에 야트막한 언덕이 펼쳐지면서 경순왕릉이 나타난다. 왕릉비는 6·25전쟁 때 총탄을 맞아 곳곳이 파였다. 이 왕릉은 1973년 1월 관할 중대장이던 여길도 대위가 발견했단다.

경순왕이 마의태자의 읍소를 뿌리치고 고려에 손을 든 것은 백성의 희생을 막기 위한 애민정신의 발로라는 것. 결사항전한다면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그럴 경우 백성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겠는가. 경순왕은 왕건으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고려 수도 개경에 머물렀다. 통일신라가 망한 후에도 43년간이나 살았고 왕건보다도 35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

경순왕은 사후에 고향에 묻히지 못했다. 신라 유민들이 경주에 능지를 잡았으나 고려 조정은 긴급 군신회의를 열어 “왕의 운구는 100리를 넘지 못한다(王柩不車百里外)”고 결정했다.

이 책은 경순왕과 관련한 이곳 전설을 소개했다. 경순왕이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해서 이름 붙은 곳이 도라산(都羅山)이라는 것.

동의보감은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파주에 있는 의성(醫聖) 허준 선생의 묘는 어느 서지학자의 10년간의 집념 어린 추적 끝에 발견됐다. 서지학자 이양재씨는 1982년 한 골동품 거간꾼에게서 허준 선생의 친필 편지를 건네받았다. 이를 계기로 허준의 묘소를 찾아 나섰다. “파주 장단 하포 광암동 동남쪽에 있으며 무덤은 쌍분(雙墳)”이라는 ‘양천 허씨 족보’ 내용을 토대로 삼았다. 후손들을 만나고 토지대장을 뒤졌다. 후손 대부분이 이북에 살아 어려움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 7월 땅속에 묻힌 허준 비석을 발견했다. 비석은 두 동강 난 상태였다.

이 책은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된 허준 선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파헤쳤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동의보감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출판돼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제6부 ‘전쟁의 그늘’은 6·25전쟁의 잔혹함을 기술하고 역사적 교훈을 강조한다. 적군과 아군을 합쳐 1만8000여 명이 숨진 백마고지 전투. 그 처절한 싸움이 벌어진 철원군 고암산은 궁예의 도성이 자리 잡았던 곳이기도 한 역사 유적지다.

답사여행을 함께 하며 전문가로서 조언을 준 이재 국방문화재연구원장은 추천사에서 “양구 해안분지, 연천 임진강변의 적석총들, 오두산성, 덕진산성, 경순왕릉, 허준 묘 등은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거의 숨겨진 채로 남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드디어 제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면서 “비무장지대 및 민통선 일원의 주요 유적들을 깊이 있고 흥미롭게 다룬 사실상 최초의 유적 답사기”라고 평가했다.

60년 가까이 인적이 끊어진 비무장지대는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지역이다. 자연생태계 측면에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 거대한 역사, 생태의 보고(寶庫)가 됐다. 이 책은 그런 가치를 일깨워주는 격조 높은 길라잡이 구실을 한다. 맛집 안내책자를 들고 쏘가리 매운탕집을 전전하는 것보다 이 책과 더불어 임진강, 한탄강변 역사기행을 하면 좋을 터!

‘분단의 섬 민통선’ 이기환 지음/책문/488쪽/1만8500원

신동아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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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강사 koyou3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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