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⑩

골계 열전

인기와 성공 안겨주는 유머의 법칙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골계 열전

1/5
  • 골계는 ‘우스꽝스러움’ ‘익살’ ‘유머’를 의미한다. 기지 풍자 반어 해학을 품고 있다. 숭고함이나 비장감의 대척점에 있다. 때론 권위를 조롱하고, 엄숙한 상황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헐렁하게 만든다. 현대는 유머의 시대이고 유머를 잘 구사해야 성공하기 쉬운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계 열전
유머는 디지털 신호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웃음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린다. 내가 기계가 아니고, 정보가 아니고, 노예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을 웃음을 통해 확인한다. 유머는 인간의 표정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미묘하다.

웃음은 타인과 교감하는 신호이고 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내뿜는 생명감이다. 하루하루 각박한 일상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유머는 일종의 보약이다. 유머는 인체에 꼭 필요한 비타민처럼 생활의 활력소다.

유머가 곧 실력이다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는 ‘스타’들 중 개그맨 출신이 많다. 대학교수나 정치인 중에서도 유머가 있는 사람이 권위적인 사람보다 인기가 있다. 실력 있다고 평가된다. 남녀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재미있는 이성에게 더 호감을 갖는 법이다. 처음에야 서로의 외모에 끌리거나, 조건을 보고 반하거나, 순간적으로 혹하겠지만, 재미있는 사람과는 애정의 깊이가 더 깊어지기 쉽다.

유머가 없는 세상은 사막과도 같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유머에는 상중하의 층위가 있다. 지나치게 감정만을 자극하여 폭소를 자아내는 것은 저급하다고 볼 수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면 정서가 불안해진다. 지나친 즐거움은 폭풍 같아서 지나간 다음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웃음도 적당한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지나친 웃음을 금기시했다. 웃음에도 건강하고 밝고 아름다운 웃음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웃음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사기열전에는 사마천이 편찬한 세 명의 골계열전과 후대의 인물인 저소손이 덧붙인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기지와 재치, 웃음을 통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 절대왕정 시대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왕이 자신의 실정(失政)을 반성하게 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의 문장은 쉽고 아름다워 듣는 이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대나무처럼 올바른 지적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면 지적하는 사람의 의도가 바로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반발만 사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상대에 따라 처신을 달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사람이 잘사는 길이기도 하다.

왕에게 낸 수수께끼

중국의 춘추전국, 진나라, 한나라 시대엔 데릴사위의 지위가 매우 낮았다고 한다. 법적으로도 공개적으로 무시를 당할 정도였고, 죄수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마천은 제나라 사람인 순우곤이 데릴사위 출신이라고 밝힌 뒤, 골계열전의 문을 연다. 순우곤은 비록 출신은 비천했지만, 신분의 결점을 잘 극복하고 산 귀인이었고 재상까지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왕 바로 옆에서 의견을 밝힐 수 있을 정도의 지위에 올랐다. 그가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유머 넘치는 충언 덕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멈추어 있으면서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

순우곤이 이 수수께끼를 감히 제나라 위왕에게 낸 것은, 위왕이 국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나라가 엉망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데도 대신들이 직언을 하지 못하고 왕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순우곤은 왕이 평소에 수수께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때를 기다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수수께끼’로 만드는 기지를 발휘한다.

왕은 수수께끼를 푸는 심경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자가 네가 3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하게 생활을 해서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재미있다. 그래, 나는 대붕이다. 그렇다면 멋진 답을 주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는지, 이렇게 대답한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요즘 정치인과는 달리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고대 중국의 왕은 과연 그 다음부터 다른 행동을 했다. 순우곤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는 위왕은 자신이 국정을 소홀히 했을 때 각 지방의 책임자를 다 불러 모아 심사한 뒤 한 사람은 사형시키고, 모범적인 관리에게는 상을 주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왕이 쉬는 동안 할 일을 한 사람과 그때를 노려 횡포를 부린 자를 처단하여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다.

순우곤이 기지를 발휘하여 수수께끼를 내지 않고, “왕이시여, 당신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안 국정은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습니다”라고 직언했다면 왕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쾌락에 빠져 있던 왕의 눈에 그는 무례한 인물로 비쳐 엄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우곤의 기지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목숨을 내놓고 직언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순우곤은 수수께끼라는 장치를 통해 왕의 심경을 움직였다. 그리고 병사를 움직여 그동안 제나라의 땅을 빼앗았던 주변국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국토는 다시 회복되었고, 이후 36년간 제나라는 번성했다.
1/5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목록 닫기

골계 열전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