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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클래식으로 세상읽기 ②

교육자를 양성하지 말고 아티스트를 양성하라!

  •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교육자를 양성하지 말고 아티스트를 양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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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술교육이다. 한국의 음악교육은 세상에 나가면 필요 없는 것, 필요하면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을 배우는 것은 그것을 통해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인생의 깊이를 맛보기 위해서다. 좋은 음악은 인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표피적인 교과과정을 혁신해 누구나 악보읽기에 능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교육자를 양성하지 말고 아티스트를 양성하라!
콰르텟엑스는 자주 지방의 분교를 찾아다니며 공연한다. 우리를 초청한 분들 뒤에는 언제나 음악선생님이 있다.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음악교사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학교에 음악교사는 한 명이 채 안 된다. 한 명의 교사가 한 학교에 상주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결국은 여러 학교를 돌면서 가르친다. 다른 과목에 밀려 예체능 수업이 홀대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 정도라면 반드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요즘처럼 영어교육이 강조된 적은 없었다. 영어 제일주의 교육을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세계화를 위해 언어장벽을 해결해야 한다” “영어만 잘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문제없다” “높은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기 위해서 원서를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한정된 수업시간 때문에 다른 분야, 특히 예술 분야 수업이 터무니없이 줄어들었다는 데 있다. 수업이 배정되어도 아이들은 대학입시에 이것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안다. 혹은 필요해도 필요한 만큼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당연히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어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철학이나 인문, 과학이나 예술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수업시간이 너무나 부족하지 않았을까?

‘참교육’ 열풍이 분 적이 있다. 나는 참교육은 한 번의 열풍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영원히 추구해야 할 가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한때 지나가는 열풍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론 사람들 사이에서 그 단어를 들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자를 양성하지 말고 아티스트를 양성하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참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교과서 안에서 해결돼야

1992년 개봉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키팅 선생. 당시만 해도 이분은 참교육의 상징이었다.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이 유행어가 되었고, 각 중·고등학교에는 키팅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한두 분 계셨다. 그분이 전근이라도 가시는 날에는 학생들은 책상 위에 올라가서 배웅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나라는 그토록 진짜 교육을 열망했던 나라였기에 영화에 대한 반응이 더욱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많은 사람이 ‘카르페 디엠’이나 ‘책상 장면’ 등 명대사 명장면을 외우고 있지만, 나도 쉽게 지나쳐버린 장면이 있었다. 나중에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발견하고야 말았다. 선생님이 책상 사이에 앉아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얘기해주는 장면인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변호사, 의사와 같은 직업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좋은 수단이 된다. 하지만 시나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은 인생의 목적 그 자체다.”

위인전에 나오는 수많은 작곡가의 부모는 자식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고 법률이나 의학을 공부하도록 강권했다. 이러한 풍토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안정된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강했고, 그것은 다시 말해 경제적인 안정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으로서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정신적인 풍요는 예술로서, 혹은 다른 분야에서 예술적 경지에 이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에 그들은 도전했다.

그렇다면 예술, 특히 음악교육의 오늘날 형편은 어떨까? “이제까지 교육에서 예술은 항상 등한시되어왔다.” 이 말을 쉽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올바른 예술교육을 위해 몸 바쳐왔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이러한 현실은 외국이나 국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는 우리의 음악 혹은 예술교육의 현실과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나갈지를 짚어볼 것이다.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더 나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교육을 떠올린다면 우선 크게 학교에서 배우는 일반 음악교육과 전문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전공자 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럼 먼저 우리가 배워온 일반 음악교육 얘기를 해보자.

정규 교과과정이 전 국민을 클래식 전문가나 애호가로 만들기 위한 교육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것에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것, 그리고 훌륭한 예술가가 등장했을 때 그를 알아보고 지원하는 문화 만들기는 교과서 안에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남의 나라에서 먼저 알아본 예술가를 뒤늦게 초청하는 나라가 되지 않기 위해선 초중고 음악 교육과정을 발전시켜야 한다.

감상이 아닌 암기 교육

현재의 수업방식은 이론과 실기, 그리고 감상이 분리되어 있다. 이론은 악기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작곡가들에 대한 개요로 이루어진 음악사이며, 악보를 이해하는 과정은 초기에 끝나고 이후부터는 노래를 부르는 수업으로 대체된다. 그런 다음 수많은 사람에게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으로 기억되는 감상수업이 진행된다.

결과는 어떠한가? 작곡가들에 대한 정보는 그들의 음악을 상상할 수 없는 개요 그 자체다.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는 작곡가라는 사실은 알아도 그의 음악의 발전과정은 전혀 확인할 수 없다. 그 인물의 전기를 읽게 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악보는 음악을 바라보는 설계도다. 하지만 음악 전공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기초적인 동요 수준의 악보만을 이해한다. 이것은 색깔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을 이용한 그림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악보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국민의 예술성은 더욱 빨리 높아질 것이다. 감상수업을 예로 들어보자. 수십 곡의 음악을 틀어주고 제목을 외운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음악을 다 들려줄 수도 없다. 앞부분이나 중요 부분만 들려주고 그 곡의 제목만 말해준다. 그것은 감상이 아니라 암기다. 예술가의 삶과 분리된 음악은 그냥 살아가면서 알아야 하는 것, 세상에 나가면 필요 없는 것, 필요하면 다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그 음악이 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교육은 그 음악선생님의 교양과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더 불행한 사실은 그 음악선생님이 받은 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문화를 가르쳐주려는 선생님들을 보고 있으면 존경스럽고, 또 이러한 현실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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