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人命在妻

  • 박종관 전북대 의대 비뇨기과 교수 rain@chonbuk.ac.kr

    입력2009-12-09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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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命在妻
    53세의 남성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긴장해서인지 얼굴색이 붉었다. 마치 달리기를 한바탕 하고 난 어린아이 같았다. 그는 전체적으로 매우 뚱뚱했다. 아랫배도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내과에서 “비뇨기과로 가보라”고 해 왔다고 한다. 환자의 기록을 보았더니, 5년 전부터 당뇨가 있었으나 치료를 받지 않다가 최근 1년 전부터 증세가 심해졌다. 당뇨 수치가 300mg/dl(정상 110mg/dl 이하)로 매우 높았고, 중성지방도 790mg/dl(정상 200mg/dl 이하)로 매우 높았다. 남성호르몬은 1.2ng/ml(정상 2.5ng/ml 이상)로 매우 낮아 대사증후군(이상혈당 증가, 고지혈, 고혈압, 복부 비만 등이 겹쳐서 나타나는 질환)과 남성호르몬 결핍 증상이 있었다.

    “부인 근처에 못 가본 지 오래”

    그는 “힘이 갑자기 빠져 계단을 몇 개만 올라가도 숨이 차고 기운이 없어 주저앉을 정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한다. 아랫배가 너무 나와 쭈그리고 앉아 양말을 신기도 힘들다”고 했다. 부부관계를 묻자 “성욕도 없고, 어쩌다 생각이 있어 해볼라치면 겨우 올라왔던 성기가 어느새 죽어 부인 근처에 못가본 지 오래됐다”고 답했다. 옆에 있던 부인이 “기억력도 나빠져 주머니에 안경을 챙겨 넣고서도 안경을 찾는 일이 허다하다. 내 몸도 시원치 않은데 남편까지 저러니 힘들어 죽겠다. 몇 년 전부터 남남으로 지낸다”고 거들었다.

    당뇨 환자의 약 50%는 발기부전을 경험한다. 21~33%는 남성호르몬 부족으로 고생한다. 남성호르몬이 부족하면 수면장애, 골다공증, 심혈관 질환으로 삶의 질이 나빠진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대사증후군은 성인 인구의 30%에서 나타나고 있다. 당뇨병도 남성호르몬이 충분해야 치료가 잘된다. 역으로 당뇨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남성호르몬 결핍이 자주 나타난다. 두 질환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병인지도 모른다.

    오기는 간 데 없고…



    현재 남성호르몬은 먹는 경구용, 바르는 젤형, 붙이는 패치형, 주사형으로 다양하게 보급되고 있어, 환자의 편의에 따라 선택 사용할 수 있다. 그중 주사형은 한 번의 주사로 3개월간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병원에 자주 오가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적격이다. 이 남성은 허리둘레 104㎝, 몸무게 70.2kg, 신체비만지수(BMI) 27.8로 남성호르몬 투여가 필요했다. 환자에게 “음식 조절과 운동을 잘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 후 남성호르몬 주사를 처방했다.

    6주 후 환자가 왔다. 그는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아졌다. 뱃살도 많이 빠졌다. 당도 조절이 잘되어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발기력도 향상되어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볼라치면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당뇨병 환자는 혈당 조절이 안 되고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더라도 성기능이 쉽사리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환자는 약하지만 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의 성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될지 모르지만 흔한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요즘 나이가 들어 병원을 찾는 남성 중 상당수는 부인의 부축을 받는다. 이들은 온순하게 변해버렸다. 투정을 하고 옹고집을 부리던 오기는 남성호르몬 감소와 더불어 다 사라져버렸다. 이들 사이에서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이 아니라 인명재처(人命在妻)”라는 말이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이 부인에게 달려있단다. 하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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