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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해인사 솔숲에서 겸재와 고운을 만나다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해인사 솔숲에서 겸재와 고운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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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주변을 뜯어고치려는 개발계획이 쏟아져 나온다. 이미 아파트와 빌딩 숲에 익숙해졌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정서적 풍광이 파헤쳐지는 현실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수백 년 고유의 풍광을 지켜온 산사의 숲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숲 전문가 전영우 교수와 산사의 숲을 거닐다보면, 개발 만능주의가 마수를 뻗지 못하는 신성한 보루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해인사 솔숲에서 겸재와 고운을 만나다

보현암 동편 산록에서 겸재의 시점으로 바라본 해인사 풍광.

2009년 가을, 조선의 화성(畵聖) 겸재 정선(1676~1759) 서거 25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天地造化’ 특별전이 열렸다. 전시된 겸재의 그림을 순례하던 나는 ‘해인사도’ 앞에서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진경산수의 대가답게 겸재는 해인사 주변 풍광을 자기 눈앞에 펼쳐진 그대로 화폭에 담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290년 전 겸재가 그린 해인사의 풍광과 오늘날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 겸재 당시의 숲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일까? 겸재가 그림을 그린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그 얼마 후 나는 새벽부터 서둘러 해인사를 찾았다. 손에는 겸재의 부채그림 복사본이 한 장 들려 있었다.

겸재가 해인사와 가까운 하양의 현감(1721~1726)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이 부채그림에는 290여 년 전 해인사 풍경이 선면(부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인사의 가을 풍광을 담은 겸재의 해인사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절집의 가람 배치였다. 그림 속 가람 배치는 오늘날의 해인사 가람 배치와 흡사해 가장 위에 자리 잡은 장경판전으로부터 절 입구의 홍하문(紅霞門)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겸재의 그림에는 절집 주변의 나무와 숲과 산의 풍광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절집의 누군가에게 겸재의 부채그림을 보여주면 겸재가 그림을 그린 장소를 알려줄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만일 그 장소만 알 수 있다면, 숲의 변화에 대한 내 궁금증도 바로 풀 수 있기에 궂은 겨울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인사를 향한 것이다.

겸재가 그림을 그린 장소를 대강이라도 짐작해보려고 먼저 그림의 시점(視點)부터 살펴보았다. 그림 속에 나타난 홍하문에서 장경판전이 시곗바늘 방향으로 약 15。기울어진 것을 보면 그림 그린 장소는 건너편 산록으로 추정되었다. 해인사 경내는 물론이고 주변의 부속 암자들의 위치가 사실적으로 그려진 안내도를 참고해 건너편 산록의 암자들을 찾아보니 금선암과 보현암이 유력한 대상지였다. 먼저 금선암을 찾아가봤지만 큰절(해인사)과 너무 가깝고 위치도 높지 않아 제외하기로 하고, 다음 후보지인 보현암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보현암의 비구니 스님께 겸재의 부채그림을 보여드리고, 그림 속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주변에 있는지 여쭈었다. 큰 기대 없이 혹시나 하고 드린 질문이었는데 고대하던 답변이 바로 나왔다. 암자 동편의 능선 길을 따라 10분여 올라가면 그림 속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나의 어림짐작이 맞다니! 기쁜 만큼 발걸음도 빨라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능선 길을 올랐지만 빽빽한 수풀이 시야를 가려 건너편 풍광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어느 순간 눈앞에는 겸재의 부채그림에 담긴 그대로의 모습이 펼쳐졌다. 겸재가 그림에 담은 풍광은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새벽같이 절집 숲을 찾아 나선 여정의 고단함이 단숨에 가셨다.

절집 숲은 전통 경관의 보고

우리 산하의 숲이 세월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막연한 호기심과 소망을 겸재의 그림이 충족시켜주었다. 사진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조선 중기에, 조선의 한 천재 화가가 그림으로 남긴 해인사의 풍광을 참고해 숲의 변화된 모습을 추적해보려 한 나의 시도는 다소 무모하기는 해도 아주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겸재의 부채그림을 통해 29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해인사 주변 풍광은 변한 곳도 많지만 변하지 않은 곳도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천수백 년 동안 불교가 우리 문화에 미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 불자(佛子) 여부를 떠나 유서 깊은 명산대찰이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오랜 세월 동안 지키고 계승해온 소중한 공간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산림 전문가로서 이러한 문화유산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구한 세월 동안 지켜온 산사의 경관이다. 이 땅 대부분의 산사는 천수백 년 전 풍광이 아름다운 명산에 터를 잡은 이래,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려 풍토성이 높은 독특한 경관을 만들고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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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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