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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한국 소설로 들어오다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베를린, 한국 소설로 들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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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한국 소설로 들어오다

‘북쪽 거실’
배수아 지음, 문학과 지성사, 287쪽, 1만원

베를린행(行) 비행기 티켓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다. 한국 소설계에서 언제부터 배수아 하면 베를린이 떠오르게 된 것일까. 그러니까 언제부터 배수아의 소설에 베를린이라는 낯선 이국의 도시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 병무청 소속 계약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소설을 쓰던 그녀가 그 자리마저 접고 훌쩍 베를린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들은 것이 2000년 어름. 같은 대학 출신이자 동년배 작가인 나로서는 그녀의 베를린행 소식이 뜬금없으면서도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1998년 9월 나는 독일로 떠나는 길에 김포공항에서 그녀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출국하는 한국 청년들의 서류에 병역 확인 스탬프(도장)를 찍어주는 일을 하느라 공항에 파견근무 중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내 모습이 문단 모임에서와는 다른, 후일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파리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여자’처럼 여행자의 차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모자를 벗자 그녀는 단박에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동창을 만난 듯 내 이름을 길고 진하게 부르며 반겼다. 우리는 얼떨결에 두 손을 맞잡았고, 그리고 공항 식당에 올라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설렘과 안도가 공존하는 곳

그녀는 공항에 파견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볼 뿐 한 번도 비행기를 타고 이국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시무룩하게 말했다. 일산 호수공원 옆에 살면서 나는 호수공원 너머 한강과 김포 벌판 위로 비행기가 선회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먼 곳으로의 떠남을 동경하곤 했었기에 공항에 붙박인 그녀의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공항이란, 열차역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매혹적인 공간인가. 낯선 공기를 머금은 이방인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곳. 슬픔과 기쁨, 떠남의 설렘과 귀환의 안도가 공존하는 곳…. 그러니 공항 예찬자인 에세이스트 알랭 드 보통이 아니더라도 공항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사색가가 되고,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지 않던가.

그날 공항에서 배수아 작가와의 만남은 극적이었고, 그런 만큼 짧았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입국장으로 들어서며 나는 그녀와 아쉬움이 뒤섞인 즉흥적인 이별을 했고, 이후 시간은 흘러 우리는 21세기로 진입했다. 그때 나의 유럽 여행은 길지 않았고, 귀국 후 가을 동안 두어 번 일산에서 그녀와 재회했다. 그런데 무엇이 공항에서의 반갑고도 아쉬운 만남을 이어가게 놔두지 않았던지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이전의 무연했던 상태로 돌아갔고(나는 경주로, 파리로 어린 아들을 끼고 떠돌아다니기 일쑤였다), 문단의 여느 문인 소식처럼 지인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띄엄띄엄 듣게 되었다.

그 소식 중에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 그녀의 베를린행이었다. 나는 순간 공항에서의 극적인 만남과 그녀의 얼굴에 어리던 먼 곳에의 동경을 떠올렸다. 그녀는 형광등 불빛이 희미한 공항 구석의 병무청 창구에 붙박여 있기에는 이방인의 자유로운 피와 작가만의 반항적인 혼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공항의 만남에서 공유했던 오래된 동창의 친숙함과 낯선 흥분을 ‘베를린의 배수아’에서 느꼈다. 마치 배수아를 위해 베를린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고, 이제 나는 불온한 여행자, 베를린의 이방인 배수아의 소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우리는 이바나와 함께 있었다. 나는 K와 함께 있었고 K는 잠과 함께 있었다. K는 잠을 원했고 나는 침묵을 원했다. 길을 걷다가 가끔 멈추어 선 채 이바나, 하고 중얼거린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쳐다본다. 우리가 이바나, 하고 말하는 것은 집시, 라고 불리는 한 마리 개와, 그리고 나머지 분석되지 않은 체험을 의미한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났고 아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것은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저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용하는 이방인이 간다. -배수아, ‘이바나’에서

이방의 공간들

배수아의 베를린뿐만 아니라 21세기 들어서면서 작가에게 장소, 특히 이국의 공간이 갖는 메타포(은유)의 울림은 매우 크다. 지난 세기 작가의 독창성을 규정하는 것은 작가의 태생지에서 연유하는 언어, 곧 삶의 언어(사투리)적인 의미가 컸다. 리얼리스트냐 모더니스트냐의 구별도 따지고 보면 그 작가의 언어 감각과 언어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서울토박이의 삶과 의식을 서울말로 그려낸 리얼리스트 염상섭과 소설(‘삼대’), 1930년대 근대 식민지의 수도 경성의 모던 보이의 근대적인 삶과 형식을 근대어로 창조한 모더니스트 박태원과 이상의 소설들(‘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날개’), 충청도의 순진하면서서도 의뭉스러운 심성을 장삼이사들의 입을 통해 구수하게 불러낸 리얼리스트 이문구의 소설들(‘관촌수필’, ‘우리동네 이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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