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흑두루미 날갯짓에 녹색관광 메카로 부상한 ‘순천’

  • 이형주|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peneye09@donga.com |

    입력2010-03-04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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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 인심이 살아있고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생태의 보고 순천이 에코투어(녹색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순천을 찾은 관광객들은 흑두루미가 날고 짱뚱어가 뛰는 생태수도 순천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다.
    흑두루미 날갯짓에 녹색관광 메카로 부상한 ‘순천’
    2월9일 전남 순천시 해룡면 용산전망대. 전망대에 서자 실안개가 피어 오르는 순천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갯벌 가운데 동천 강물과 남해 바닷물이 만나 길게 S자를 그려낸 물길이 이채롭다. 때 묻지 않은 2800㏊(약 840만평)의 드넓은 갯벌과 4㎞ 길이의 갈대밭이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순천만에는 간척지(논)와 염전, 갯마을, 낮은 구릉이 흩어져 있다. 드넓은 갯벌과 나지막한 산이 함께하는 경관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순천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겨울의 진객 흑두루미

    순천만 중앙에 있는 들녘 대대들에는 큰 새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순천만의 귀한 손님(진객·珍客)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다. 흑두루미는 학이라고 불리는 두루미 5개종 가운데 하나다. 흑두루미는 몸짓이 크고 화려하며 우아하다. 러시아 시베리아와 우수리강, 아무르강에서 번식하고 한국, 일본에서 겨울을 난다.

    흑두루미는 순천만 철새 도래지를 찾는 철새 가운데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키는 1m, 양 날개를 편 길이가 2m 정도로 순천만 철새들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다. 흑두루미는 논에 흩어진 낟알을 쪼아 먹거나 갯벌에서 조개, 짱뚱어를 잡아먹는다. 간혹 순천만에 독수리가 나타나지만 의외로 철새들은 평온하다. 덩치 큰 흑두루미 무리 아래서 평화가 지켜진다. 또 순천만 독수리나 큰말똥가리, 쇠황조롱이는 동물 사체를 먹고, 노랑부리저어새는 물고기를, 개리는 갈대 뿌리를 먹고 산다. 각자의 먹이사슬이 다르다.

    김인철 순천시 철새담당은 “흑두루미가 순천만 철새들의 공존 공간의 꼭대기에 있다”며 “간혹 나타나는 독수리조차 흑두루미가 만들어놓은 평화를 깨지 못한다”고 말했다. 흑두루미는 또 철새들의 쉼터이자 식량창고인 순천만의 논이나 갯벌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생태 다양성의 기준이 되고 있다.



    철새 낙원 된 순천만

    흑두루미 가족이 순천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때는 1996년 11월16일. 당시 순천만에서 겨울을 지낸 흑두루미는 모두 59마리였다. 올해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는 모두 440마리로 14년 만에 7.4배가량 늘어났다. 특히 올해에는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11마리와 천연기념물 405호인 검은목두루미 5마리도 함께 왔다. 이로써 순천만을 찾은 두루미는 3개종 456마리에 달하고 있다.

    순천만은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이즈미(出水)시에 이어 세계 두 번째 흑두루미 서식처다. 김진한 국립생물자원관 조류연구담당은 “순천에서 편안하게 겨울을 보낸 흑두루미들이 친구들을 계속 데려오고 있다”며 “흑두루미 북방한계선인 순천만은 5년 안에 흑두루미 1000마리가 겨울을 나는 철새 낙원이 될 것”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관은 “일본 이즈미시에는 너무 많은 흑두루미가 몰리고 있다”며 “순천만이 적정한 흑두루미 개체수를 유지하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서식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흑두루미 이외에 희귀 철새들까지 순천만을 찾아오면서 이제 순천만은 명실상부한 철새 낙원이 되고 있다. 노랑부리저어새, 개리 등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는 희귀철새는 2007년 6종 400마리에서 올해에는 16종 900마리로 증가했다. 올해 순천만은 철새 85종 1만800여 마리가 월동을 할 정도로 새들의 천국이 됐다.

    전봇대 뽑기 프로젝트

    세계 5대 연안습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순천만은 2006년 1월 국내 연안(갯벌)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습지보호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순천시와 시민들은 이를 계기로 순천만의 자연을 더욱 풍요롭게 살리기 위한 친환경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흑두루미 날갯짓에 녹색관광 메카로 부상한 ‘순천’

    친환경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으면서 순천만을 찾는 관광객 수가 부쩍 늘었다.

    먼저 철새 질병을 막고 탐방객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부터 취했다. 순천만 773㏊(약 230만평)의 갯벌을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뒤 오리사육농장 1곳과 식당 6곳을 인근 마을로 옮겼다. 서식처 조성을 위해 2008년부터 2년 동안 순천만의 메마른 땅 30㏊(약 9만평)를 물웅덩이인 ‘둠벙’ 5곳으로 회복했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걸려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전봇대 283개 제거작전을 벌였다. 순천만 친환경 프로젝트의 백미(白眉)인 전봇대 뽑기의 첫 난관은 농민들의 반발이었다. 순천시 공무원은 전봇대 뽑기 설명회를 진행하다 흥분한 농민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전봇대를 뽑아 농사도 못 짓게 하려 한다”며 격앙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차츰 “전봇대를 뽑고 친환경 쌀을 재배해 흑두루미가 살 수 있는 순천만을 만들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진심 어린 설득을 받아들였다.

    최덕림 순천시 경제환경국장은 “한전에서 순천만 전봇대를 뽑는 것을 반대하자 농민들이 스스로 전기사용 철회 신고서를 냈다”며 “농민들이 순천만을 살찌우는 일등공신이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흑두루 영농단을 결성해 흑두루미 안전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흑두루 영농단은 지난해 봄 순천만 들녘 60㏊(약 18만평)에 일반 쌀과 검정쌀을 함께 심었다. 가을이 되자 순천만에 거대한 흑두루미 그림이 그려져 환상적인 경관을 선사했다.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쌀 250t을 수확해 50t은 철새먹이로, 남는 200t은 관광객에게 판매했다. 들녘에는 볏짚을 썰어 그대로 나둬 철새 둥지로 제공했고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갈대로 만든 350m 길이 불빛 차단막도 설치했다.

    친환경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6년 당시 순천만을 찾은 관광객은 32만명이었다. 친환경 프로젝트가 열매를 맺으면서 관광객 수는 부쩍 늘었다. 2007년 180만명, 2008년에는 262만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233만명이 순천만을 다녀갔다. 지난해 신종 플루 여파로 순천만 갈대축제가 진행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방문객 수가 증가한 것이다.

    순천만 탐방객이 늘면서 인근 식당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순천만 입구에서 장어구이 식당을 운영하는 서구원(56) 대대선창집 사장은 “흑두루미 개체수가 늘면서 외지 손님이 서너 배 늘었다”며 “생태보고 순천만이 지역 경제를 살찌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순천시는 흑두루미 경제파급효과가 연간 2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생태수도 매력에 관광객 대폭 늘어

    순천만에서 북쪽으로 30㎞를 가면 조계산(884m) 품에 천년고찰 송광사와 선암사가 안겨 있다. 송광사는 고려 때 보조국사가 창건한 곳으로 국가나 임금의 스승이 되는 국사(國師) 16명을 배출한 삼보(三寶) 사찰 중 하나다. 조계산 동쪽 기슭에는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중창한 태고종 본산 선암사가 있다. 순천시는 이밖에도 향림사를 비롯해 정혜사, 동화사 등 많은 사찰과 국가지정 문화재 62점을 보유한 문화의 도시다. 또한 고인돌 공원에서는 신석기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선사시대 순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순천 시내에서 서쪽으로 22㎞ 가면 22만㎡(약 6만8000평) 넓이의 옛 성이 나온다. 조선시대인 태조 6년(서기 1397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쌓은 낙안읍성이다. 인조 때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흙성 위에 다시 돌을 쌓았다. 3m 높이 1395m 길이의 성곽 위를 둘러싸는 고추줄 엮기에 성공해 세계기록도 세웠다. 낙안읍성 안에는 객사, 동헌, 낙풍루 등 조선시대 관아 92채가 있고 초가집 등 옛날 가옥 216채가 남아있다.

    낙안읍성을 찾은 관광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즐거워한다. 저녁이 되면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 오른 연기가 낙안읍성을 뒤덮는 데, 마치 시간이 멈춰선 기분마저 들게 한다. 순천시 왕조동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도 관광객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SBS ‘사랑과 야망’이나 MBC ‘에덴의 동쪽’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된 곳이다.

    공용자전거 온누리

    순천시는 지형이 평평한데다 시내를 따라 남북으로 흐르는 동천이 순천 도심에서 순천만까지 연결돼 둑이나 둔치에 자전거도로가 발달해 있다. 관광객들은 순천 시내 5개 보관대에 비치된 공용자전거 온누리를 타고 순천만을 둘러볼 수 있다. 관광객은 1000원만 내면 하루 동안 자전거를 타고 순천 관광을 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순천만, 낙안읍성, 송광사·선암사, 드라마 촬영장을 돌아보는 시티투어도 매일 진행되고 있다.

    에코투어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2층 버스를 타고 1박2일간 순천’을 도는 것이다. 순천만에서 펼쳐지는 갈대소리 포크페스티벌이나 낙안읍성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등 느긋함을 만끽할 수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순천에는 남도의 맛을 자랑하는 전통 한정식집이 즐비하다. 한상 가득 차려지는 한정식은 게장, 홍어삼합, 주꾸미, 꼬막, 젓갈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나물, 구이, 고기요리가 함께 나온다. 특히 순천만 인근에서는 짱뚱어탕과 장어구이가 유명하다.

    국제정원박람회

    순천만과 도심 중간지역 152만7000㎡(약 46만평)에는 다양한 국제정원이 꾸며진다. 생태보고 순천만과 도심 사이에 거대한 생태정원이 조성되는 것이다. 순천시는 이달부터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 부지에 대한 토지보상 업무를 시작했다. 박람회장에는 꽃과 화초류 1000만본이 심어져 상습 침수 저지대가 거대한 숲과 꽃동산으로 변한다. 순천시는 박람회가 열리는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관광객 468만명이 순천을 찾아 466억원의 입장료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람회가 끝나면 순천은 세계 최고의 생태정원을 보유하는 명품도시가 돼 명실상부한 생태수도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인터뷰 | 노관규 순천시장

    “순천만 생태관광의 완성판은 국제정원박람회”


    노관규 순천시장은 한보 사건과 김현철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수사한 베테랑 검사 출신이다. 그런 그가 시장에 당선된 이후 생태 예찬론자가 됐다. 그는 순천의 미래 성장 동력은 생태자원이라고 강조한다. 순천만과 동천, 조계산 등 타 지역과 차별화된 생태자원을 특화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고도 했다. 노 시장은 “순천만 생태관광의 완성판은 국제정원박람회가 될 것”이라며 성공적인 개최를 다짐했다.

    흑두루미 날갯짓에 녹색관광 메카로 부상한 ‘순천’

    노관규 시장은 흑두루미를 위해 전봇대 283개를 뽑아냈다.

    -생태관광에 몰두하는 이유는 뭔가.

    “국민이 문화재를 둘러보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생태관광은 이제 막 시작단계다. 유럽에서는 철새 탐조가 고급레저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해 순천만의 장점을 살리는 생태관광에 주목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 독립군의 비장한 마음으로 생태관광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웃음). 순천만과 2013국제정원박람회는 순천에 대기업 두세 개를 유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생태관광은 순천의 미래 성장 동력이다.”

    -2013국제정원박람회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에는 세계에 자랑할 것이 세 가지 있다고 언급했다. 바로 순천만과 비무장지대(DMZ) 그리고 전남 신안군 증도다. 순천이 제1회 생생도시 평가에서 대통령표창을 수상한 것은 대한민국 생태수도 도시로 공식 인정을 받은 셈이다. 국제정원박람회장은 도심을 정비하고 순천만 동선을 길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도시의 축이 변해 시민 행복지수도 쑥쑥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각국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기 위해 관광객도 몰릴 것이다. 순천의 미래인 국제정원박람회를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순천만이 빚어낸 자연과 국제정원박람회 생태 숲 등은 시민들에게 유럽이나 서울에서는 보지 못한 장관과 가치를 선사할 것이다.”

    -순천만 보전을 위해 다각도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던데….

    “환경문제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편차가 크다. 토론을 하면 지혜가 모아진다. 환경문제를 풀려면 또 공부를 해야 한다. 고집만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 시민단체, 농민, 학자도 마찬가지다. 순천만 보전을 위해 환경운동연합과 협력해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환경 문제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듣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순천만 전봇대를 뽑은 사연은 뭔가.

    “흑두루미에게 제일 위협이 되는 것은 전깃줄이다. 흑두루미를 위해 전봇대 283개를 뽑아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대불공단 민원을 받아 규제완화 차원에서 전봇대 2개를 뽑았는데 나는 흑두루미를 지키기 위해 전봇대 283개를 뽑았다(웃음). 순천만이 개발이 되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 생태를 보전하는 데 더 많은 돈이 든다. 오히려 포클레인으로 미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개발이 아니다. 21세기 도시의 키워드는 생태와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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