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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을 지닌 유기체, 인체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인격을 지닌 유기체, 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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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을 지닌 유기체, 인체

‘인문의학, 21세기 한국 사회와 몸의 생태학’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엮음/ 휴머니스트/ 222쪽/ 1만2000원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병원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환자는 제 돈을 내고도 의사에게 푸대접받기 일쑤다. 특히 환자들이 몰려드는 종합병원에서는 적잖은 의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환자를 맞는다. 환자가 병세를 자세히 물으려 하면 짜증을 내는 의사가 한둘이 아니다. 반말을 일삼는 의사도 있다. 이런 횡포를 따지면 으레 “의사도 사람이어서 너무 바쁘다보니 그렇다”고 변명한다. “험한 꼴 당하기 싫어서라도 아프지 말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의료계 내부의 폭력을 추방하자고 외치는 단체가 있어서 의아하게 여겼다. 엘리트 집단이라는 의사세계에서 웬 주먹질? 알고 보니 어떤 의과대학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몽둥이질을 하는 게 전통이라고 한다. 일부 종합병원에서는 교수가 전공의나 수련의를 손찌검한 사례가 드러났다. 때리는 사람은 “인명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방심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둘러댄다. 한국의 의사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단 말인가. 미국의 명문 의과대학인 존스홉킨스대학 같은 곳에서도 때리면서 가르치나?

한국에서 의사는 ‘고소득 직업인’으로 통한다. 공부 잘하는 고교생들이 기를 쓰고 가는 곳이 의과대학이다. 우수한 이공계 대졸자는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간다. 의사를 보고 허준, 화타, 편작, 히포크라테스 등 명의를 연상하는 환자는 거의 없으리라. 의술을 인술(仁術)로 여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물론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일하는 의사가 적지 않겠지만….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술에서 정작 인간의 존엄성을 망각한 탓이다. 병균 퇴치에 초점을 둔 나머지 사람 몸 전체와 인격을 도외시한 결과다. 의사란 직업을 밥벌이로만 좁게 본 자가당착의 결과다. 의학에서 인문학이 실종된 후유증이다.

외부 관찰자로서 한국 의료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터에 ‘인문의학, 21세기 한국 사회와 몸의 생태학’이란 책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가 전문 의학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을 위해 엮은 출판물이다. 인체를 단순한 몸뚱어리로 보지 않고 인격이 담긴 육체로 보는 관점이 책 전체에 담겨 있어 독자로서는 흐뭇하다.

이 연구소는 앞서 ‘인문의학, 인문의 창으로 본 건강’과 ‘인문의학, 고통! 사람과 세상을 만나다’라는 책을 내놓았다. 2007년 8월 문을 연 이 연구소는 의학을 인문학의 시선으로도 바라보아야 한다며 ‘건강한 삶’이란 화두를 탐구해왔다. 연구소는 동과 서, 고(古)와 금(今), 의학과 인문학 사이에 새로운 소통 경로를 열고 건강, 질병, 치유의 새로운 지평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연과 몸은 상호되먹임의 관계

강신익 연구소장은 서문에서 “서양의 근대의학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방법을 찾아 인류를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구해냈지만 우리 자신이 그 세균과 맺고 있는 ‘관계’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했다”면서 “그 결과 슈퍼박테리아와 여러 신종 전염병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치과 의사로 20여 년간 활동한 강 소장은 신경생리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에서 의료인문학으로 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는 ‘몸의 살림살이: 건강생태학과 생태의학’이라는 글에서 “몸의 살림살이에서는 자연에서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취하기도 하고, 그 대사산물을 자연으로 돌려주기도 한다”면서 “자연과 몸은 상호되먹임의 관계로 엮인 공동운명체이며 몸은 작은 자연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생태의학은 ‘참여의 의학’이라는 강 소장의 주장에 눈길이 끌린다. 건강을 원하는 당사자의 적극적인 의지, 몸을 구성하는 면역세포들의 참여, 가족의 보살핌, 건강보험과 같은 공적 부조 등이 조화를 이루지 않은 상황에서 암 덩어리만 제거한다고 해서 건강이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필자의 논문, 에세이, 대담 등을 묶은 것이다.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그러나 가볍게 읽히는 건강상식 따위는 아니어서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정독해야 어울린다. 동양의학에 대한 글은 음양오행 원리에 관한 기초지식을 갖추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생태학과 경제학의 만남: 생태경제학’이란 논문에서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생태경제학을 소개했다. 자연생태계와 사회경제시스템은 물질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공생하는 공동운명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문제는 모든 학문 분야가 협력해서 풀어야 할 지구적 과제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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