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입력2010-04-06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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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의 독기가 빠질 무렵 사람들의 관심은 남녘으로 옮아간다. 남보다 먼저 봄을 누리려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만 기다린다. 탐매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호남오매(湖南五梅) 중 으뜸인 선암사의 늙은 매화는 올해도 상춘객을 들뜨게 한다. 600년 묵은 매화와 더불어 야생차밭과 편백숲도 선암사의 자랑이다.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선암사 팔상전 뒤편의 600년생 선암매(천연기념물 488호).

    우수 경칩을 지나면 탐매(探梅)꾼들의 마음이 바빠진다. 봄을 여는 향기를 남보다 먼저 즐기고자 언제 어디로 걸음을 나설지 궁리하느라 말이다. 너무 일찍 서두르면 꽃망울 맺힌 매화를 만날 뿐이고, 너무 늦게 나서면 수많은 상춘객의 소음으로 때 묻은 매화를 만나게 마련. 탐매꾼들은 한매(寒梅), 동매(冬梅), 설중매(雪中梅)를 더 귀하게 여기는지 모른다. 덜 풀린 날씨 때문에 번잡하지 않을 때 눈 속에서 인동(忍冬)의 세월을 지나 꽃을 피운 봄의 전령 매화를 오롯이 독차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탐매나 심매(尋梅) 행각은 예부터 격조 높은 봄맞이 행사(迎春)였다. 혹한의 세월을 견뎌내고, 은은한 향기와 고아한 아름다움으로 누구보다 먼저 봄소식을 전하기에 매화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탐매에 빠진 애호가들은 취향에 따라 각기 백매, 청매, 홍매의 아름다움을 최고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산속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야매(野梅), 굽은 가지에 내려앉은 푸른 이끼가 감싸고 있는 고매(古梅), 달밤에 핀 월매(月梅)는 물론이고 시로 보고 그림으로 읽는 매화를 통해서 봄의 향기를 감상하기도 했다.

    오늘날도 산청삼매(山淸三梅)나 호남오매(湖南五梅)가 탐매꾼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산청삼매란 지리산 자락의 산청을 중심으로 자라는 세 종류의 매화를 가리킨다. 고려 말의 세도가 원정공 하즙이 심었다는 원정매(元正梅), 강희안이 단속사에서 공부하며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 남명 조식의 남명매(南冥梅)가 여기에 속한다. 호남오매는 백양사의 고불매, 선암사의 선암매, 가사문학관 뒤편 지실마을의 계당매, 전남대의 대명매, 소록도 중앙공원의 수양매를 일컫는다.

    정보통신 혁명의 광풍이 숨 가쁘게 몰아치는 바쁜 세태 속에서도 탐매 행각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치 느리게 사는 삶의 전형인 양 속도전의 치열한 경쟁에 초연한 듯, 매화를 찾는 즐거움으로 마음의 풍요를 얻는다.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지리산 자락의 산청을 먼저 찾기도 하고, 정자골인 담양 소쇄원 백매와 식영정 홍매가 꽃눈을 터뜨릴 때만 애타게 기다리는 탐매꾼도 있다. 국가에서 자연유산으로 지정한 매화 중에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천연기념물 484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녘의 절집에 터를 잡고 있다. 바로 화엄사 길상전 앞의 백매(천연기념물 485호),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천연기념물 486호),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천연기념물 488호)가 그것들로, 절집과 매화 사이에 얽힌 사연도 예사롭지 않다.

    20여 그루의 늙은 매화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선암사의 무우전 고매들.

    지난 수백 년 동안 봄의 전령 노릇을 해온 선암사의 600년 묵은 늙은 매화는 올해도 변함없이 꽃을 피웠다. 이즈음 각황전에 모셔둔 철불(鐵佛)의 미소가 더욱 정겨운 까닭은 무우전(無憂殿) 돌담길을 따라 무리지어 핀 고매(古梅)의 꽃망울이 터지는 합창에 취한 덕분일 것이다. 아니면 백매화가 내뿜는 암향(暗香) 때문일 것이다. 선암사의 매화가 전국의 탐매꾼들에게 무우전매로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우전은 선암사에서 가장 외진 곳이랄 수 있는 대웅전의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뒷마당에 철불이 봉안된 각황전이 있고 그 옆 마당에 달마선원이 있다.

    선암사의 매화가 탐매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또 있다. 무우전매가 한두 그루가 아닌 20여 그루를 칭하기 때문이다. 늙은 매화 한 그루만 있어도 그 향취와 자태를 즐기려는 탐매꾼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데, 수백 년 묵은 고매가 20여 그루나 있으니 이 좋은 기회를 탐매꾼들이 놓칠 리 없다.

    옛 문인들은 가지에 붙은 꽃이 많지 않고(稀), 나이를 먹어(老), 줄기와 가지는 마른(瘦) 매화의 꽃봉오리 형상(?)으로 등위를 매겼다. 무우전 돌담 곁에서 400~500년 묵은 매화들은 고매가 지녀야 할 이런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 늙은 등걸에서 용틀임하듯 기이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가지가 힘차게 뻗어 나와 점점이 붉은 꽃과 흰 꽃을 피워내는 자태는 탐매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중 2007년 11월에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된 매화는 무우전 건너편 호남제일선원과 팔상전 사이의 통로에 있는 600여 년 묵은 백매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소나무가 간직한 품격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거기에 비례해 안목도 높아지듯 매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데도 세월이 필요하다. 몇 번이나 이런저런 절집을 들락거렸지만, 젊은 시절엔 매화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절실하게 담질 못했다. 나이 들어 새삼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봄에 경험한 매화의 향기 덕분이다. 새벽같이 서둘러 길을 나선 덕분에 이른 아침 시간에 절집에 당도했다. 언제나처럼 번잡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지 하는 조급한 마음에 무우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인적 없는 곳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자리를 옮길 때,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아련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탐매꾼들이 은은하게 풍겨오는 이 암향을 ‘봄을 부르는 손짓’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그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늙은 매화나무 아래에서 홀로 암향을 즐긴 이른 아침의 도락(道樂)은 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온 여정의 피로를 단숨에 보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매화를 담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것에 더없이 기뻤다. 꽃이 핀 시간과 공간의 절묘한 조화로움이 베푼 마법을 즐길 때의 감동은 거창하고 화려하며 현란한 인공적인 즐거움과는 품격이 달랐다. 자연이 창조하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우리네 삶이 더 풍요로워지리라.

    달마수각의 아름다움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선암사 달마수각.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는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529년에 창건했다. 그때 이름은 해천사(海川寺).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도선이 비보도량을 세워 삼층석탑(보물 제 395호)을 비롯해 7점의 보물과 함께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료, 일주문 등 지방문화재 12점도 보유하고 있다. 흔히 방문객들은 선암사를 들르면 꼭 봐야 할 3가지로 ‘건너면 속세의 때를 벗고 신선이 된다’는 ‘승선교’(보물 400호), 화장실로서는 유일하게 문화재(자료 214호)로 지정된 해우소, 그리고 무우전 돌담가의 늙은 매화나무를 든다. 하지만 스님들은 오히려 늙은 매화와 함께 1000년 세월을 버텨온 차나무와 달마선원의 수각(水閣)을 더 큰 자랑거리로 여긴다.

    야생차밭을 사진에 담고자 겨울 선암사를 찾았을 때, 포행 중인 스님을 찍어드린 덕분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무우전 내 달마전 선방과 그 안마당에 있는 수각도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각이라는 스님의 자랑처럼 달마선원의 수각은 흔히 볼 수 있는 수각이 아니었다. 일명 ‘칠전(七殿)선원 수각’으로 알려진 이 수각은 다양한 크기의 돌로 깎은 함(석함·石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수각의 바깥에 바로 무우전 매화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스님은 선암사의 천년 야생차밭에서 흘러내리는 달마수각의 약수로 끓인 차를 대접하면서 매화와 함께 수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물을 담는 돌함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크기가 다른 4개의 자연석을 깎아 만들었고, 물통마다 통나무와 대롱을 이어 차례로 물을 아래로 흘러내리게끔 되어 있다. 차나무 밭에서 흘러나온 약수 중 맨 위에 있는 가장 큰 사각형 석함에 담긴 것은 상탕(上湯)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나 차를 끓일 때 사용하며, 두 번째에 있는 타원형 석함의 물은 중탕(中湯)으로 스님과 대중의 음용수로 사용된다. 세 번째 아담한 크기의 동그란 석함의 하탕(下湯)은 밥을 짓고 과일과 채소를 씻는 데 사용되며, 마지막으로 곁가지를 내어 만든 듯한 가장 작은 석함의 물은 허드레 탕으로,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할 때 쓰는 물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야생차밭에서 흘러나온 약수가 통나무와 대롱을 타고 수백 년의 세월은 족히 견뎌냈음직한 돌항아리에 차례로 흘러내리는 수각은 선암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예스러운 풍경임에 틀림없다. 돌함에 흘러내리는 물이야 다 같은 물일 텐데도 제각각 의미를 달리 부여한 선방 스님들의 의도가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여쭈어보질 못했다.

    달마수각의 아름다움과 함께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승방의 문고리를 한번 잡아보라던 스님의 권유다. 스님의 권유는 진지했다. 그 진지함에 이끌려 나는 선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스님의 설명인즉 수많은 수행자가 밤낮으로 선방을 들락거릴 때마다 문고리를 잡았기 때문에 선방의 문고리에는 선승의 기(氣)가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자들이 선방의 문고리를 잡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고 한다. 선방 문고리의 효험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은 없지만, 용맹정진에 힘썼던 수행자들의 생기(生氣)를 문고리를 통해 전수받는다는 기분에 나는 처음 생각보다 오랫동안 문고리를 쥐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이 만든 스님과의 인연의 고리는 선방 문고리를 잡아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차 문화의 뿌리는 절집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선암사의 1000년 세월을 지켜온 야생차밭.

    다시 무우전 돌담길을 지나 달마전 뒤편 차밭으로 걸음을 옮긴다. 엄동설한을 거뜬히 이겨낸 푸른 차나무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생명력이 질긴 조릿대에 서식공간을 빼앗겨 생장이 불량한 삼인당 옆의 차나무들과 달리 달마전 뒤편의 차나무들은 다행스럽게도 튼실해 보였다. 직사광선을 좋아하지 않는 차나무에 그늘을 드리워주는 은행나무, 단풍나무, 삼나무 따위의 큰나무(喬木)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모습이 인공 차 재배지와 다른 풍경이다.

    야생차밭 넘어 전각 지붕들이 겹겹이 펼쳐진 모습이 아름답다. 사철 변치 않는 녹색으로 절집을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풍광은 이 땅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선암사만의 비경이다. 그 독특한 풍광이 새로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외래식물인 차나무(매화도 2000여 년 전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식물이다)가 어떤 연유로 선암사에 자리 잡았을까? 차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됐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차나무가 전래된 시기는 신라 흥덕왕 때다. 당나라에 갔던 사신 김대렴이 차나무 열매를 가져왔으며, 흥덕왕이 그 열매를 지리산 남쪽에 심게 했던 것에서 이 땅의 야생차가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차는 사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나라를 왕래했던 스님들의 차에 대한 관심과 애정 덕분에 이 땅에 자리 잡은 차나무는 불가와 독특한 인연을 이어왔다. 불교의 진흥에 따라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민간에까지 성행했고, 그 흔적은 ‘다반사(茶飯事)’ ‘차례(茶禮)’라는 용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와 선비들도 차 문화를 즐겼다. 하지만 불가에서만큼 튼실하게 맥을 잇지는 못했다.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나라 전역에서 성행하던 차 관련 풍습이 쇠퇴했지만, 차와 관련된 문화의 맥은 불가를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졌고, 그에 얽힌 이야기가 오늘날도 회자되고 있다.

    예부터 스님의 수행생활과 차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닦고 번뇌 망상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고요와 안정이 필수적인데, 차를 마시면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또 찻잎에 함유된 각성제 성분이 잠을 쫓고, ‘살생을 말라’ ‘훔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사음(邪淫)하지 말라’ ‘술을 먹지 말라’는 다섯 계율 중에 마지막 계율을 지키는 데 좋은 대체 수단이 된다. 불가오계에 따라 차는 스님들끼리는 물론이고, 손님을 맞을 때도 술을 대신해 훌륭한 음료이자 기호식품으로 쓰였다. 차는 부처님께 올리는 중요한 공양물이기도 하다. 차 공양 자체가 공경의 표시이자 불법(佛法)을 따르겠다는 수행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차 문화가 새로이 개화하고 있는 이면에는 수백 년 이어온 불가의 풍습과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차나무 꽃이 절집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대부분 초목이 엄동설한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데, 차나무 꽃은 서리가 내리는 10월부터 12월까지 핀다. 꽃은 불가에서 등, 향, 차, 곡식, 과실과 함께 6법공양물의 하나다. 차나무의 청초한 흰 꽃은 꽃이 없는 동절기에 꽃 공양의 훌륭한 대상이 되기에 이런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

    차나무 꽃잎이 다섯 개인 데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섯 꽃잎이 차나무가 품은 다섯 가지 맛, 고(苦) 감(甘) 산(酸) 신(辛) 삽(澁)을 상징한다는 것. 인생을 너무 힘들게(澁), 너무 티를 내면서(酸), 너무 복잡하게(辛), 너무 쉽고 편하게(甘),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苦)도 살지 말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선승이 차를 참선수도의 벗으로 삼았던 이유나 차의 경지와 선의 경지가 같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이 싹튼 연유를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이야기다.

    야생차밭을 지켜온 저력

    차 문화와 관련 있는 남녘의 사찰들이 차밭을 지켜내지 못한 와중에 유독 선암사가 1000년 세월 동안 야생차밭을 지켜온 저력은 무엇일까? 조계산 자락의 자연 환경이 중국에서 전래된 야생차나무가 자라는 데 알맞아서일까? 경북대 임학과 박용구 교수는 선암사의 차나무가 유전적으로 일본 소엽품종의 혈통이 섞이지 않은 야생종이라고 밝혀낸 바 있다. 박 교수는 화분비산(花粉飛散)으로 종자를 맺는 차나무의 특성과 결부지어 선암사가 야생차나무를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조계산 등 주변 산에 둘러싸여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선암사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다른 지역에서 재배되던 일본 차나무의 꽃가루에 오염되지 않고 야생의 혈통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호남제일의 선원이라는 자긍의 맥을 잇는 데 차가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선방 스님들의 자각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해석이나 추측과 상관없이 선암사의 차나무들이 각별한 이유는 숭유억불의 험한 세월과 일제강점기에도 야생차밭을 지켜온 선대 스님들의 지극한 정성 때문이다.

    곡우(穀雨)에서 입하(立夏) 사이에 차나무의 새잎을 따서 만든 첫차는 흔히 작설차로 알려져 있다. 2008년 5월 초, 선암사 다각(茶角·절에서 차를 가꾸고 만들며 차에 대한 모든 일을 맡는 사람)스님이 첫물의 야생차 잎을 따는 현장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30여 년째, 차 잎을 딴다는 스님의 말씀은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 있는 절집의 위상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이 땅의 사찰들이 수많은 문화유산의 보고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그에 못지않게 귀중한 자연유산의 보고임을 인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선암사의 야생차나무는 사찰이 문화유산의 창조자이자 계승자일 뿐만 아니라 자연유산의 보호자임을 오늘도 말없이 전하고 있다.

    “곧은 것만이 최고가 아니다”

    봄소식을 먼저 전할 욕심으로 경내 무우전 돌담 곁의 매화와 달마전 뒤편 야생 차나무에 대한 설명이 앞섰지만, 선암사의 비경으로 승선교가 자리 잡은 들머리 숲과 조계산 자락에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삼나무와 편백 숲을 빼놓을 수 없다.

    선암사의 들머리 숲길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덧칠된 여느 사찰과 달리 비포장으로 남아 있어 반갑고 정겹다. 매화가 피는 3월 하순(선암사 홈페이지는 ‘선암홍매화 詩·畵 템플스테이’를 3월19일부터 21일까지 개최한다고 공지하고 있다)은 들머리 숲의 활엽수들이 꽃눈과 잎눈을 펼치기엔 이르지만, 4월의 신록과 함께 가을의 단풍 숲이 절경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조만간 기온이 더 올라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형형색색의 꽃잎을 한 순간에 펼치고 연두색과 녹색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색으로 무장한 잎들이 하루하루 크기를 키워가면서 외칠 생명의 소리를 상상하면, 환희의 합창이 들려오는 듯하다.

    선암사 들머리 숲의 비경은 계곡 길을 따라 오르다 모퉁이를 돌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신선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승선교 주변의 풍경이다. 아래쪽의 작은 홍예교를 건넌 후, 걸음을 승선교로 옮겨 계곡을 다시 건너서면 속계에서 선계(仙界)로 들어서는 셈이다. 계곡 옆으로 난 활엽수 숲길을 따라 인간계를 지나 선계를 거쳐 마침내 불계에 들어서도록 만든 들머리 숲의 멋진 행로는 선암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배치다. 자연을 정화공간으로 활용했던 조상의 지혜를 헤아리면 다시 한 번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기회를 얻는다. 덧붙여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계곡 아래로 내려서서 아치형 승선교 밑을 통해 계곡 위쪽의 강선루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대부분의 절집이 누문을 일주문 안쪽에 두는 데 반해 선암사는 누문을 일주문 밖 계곡 곁에 두고 있다. 공간을 파격적으로 배치한 조상의 안목이 절묘하다.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불교의 근본교리를 나타내는 삼인당.

    걸음을 조금 더 옮기면 신라의 도선(道詵·827~898)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 삼인당이 나타난다. 이 연못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함),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인연으로 생겼으며 변하지 않는 참다운 자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삼계(三界)에 윤회하는 모든 중생을 적정(寂靜)의 경계에 들게 하기 위해 열반의 진리를 말함)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의 밑바탕이 되는 근본교리를 나타내는 셈이다. 절집 앞을 지키고 있는 타원형의 연못에 이렇게 심오한 불교적 사상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삼인당을 수호신장마냥 지키고 있는 연못 주변의 전나무들은 언제나 당당하다.

    일주문을 지나 삼성각 앞의 누운 소나무(臥松)에게 눈길을 주는 것도 좋다. 선암사 스님들은 이 와송을 침굉송(枕肱松)이라고 부르는데, 조선 숙종 때 와선(臥禪)으로 법을 깨친 현변 주지 스님의 호가 침굉이었기 때문이다. “곧은 것만이 최고가 아니며, 쓰일 곳이 없는 굽은 나무가 오히려 장수하고 운치를 더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오늘까지 전해온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다.

    삼나무와 편백 숲의 유래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선암사 편백 숲.

    선암사를 감싸 안은 녹색의 안온함은 삼나무와 편백에서도 유래한다. 삼나무와 편백도 이 땅에서 자생하던 수종이 아니다. 차나무와 달리 선암사 주변의 삼나무와 편백은 일제강점기에 식재된 것으로 종묘의 원산지는 일본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용재(用材)수종인 삼나무와 편백은 습기가 많고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 그래서 일제는 주로 따뜻한 남부지방에 이들 나무를 심었다. 일제강점기에 심은 삼나무나 편백은 오늘날 남부지방 여러 곳에 좋은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중 선암사처럼 사찰도 적지 않다. 사찰에 심은 삼나무와 편백을 생각하면, 외래수종이라거나 일제의 잔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지만 나무가 무슨 죄일까? 불교라는 종교 자체도 실은 외래종교가 아니었던가. 삼나무나 편백은 목재의 재질이나 그 용도가 다양해서 오늘날도 남부지방의 주요한 조림수종으로 식재를 권장하고 있다.

    삼나무 숲은 삼인당에서 일주문 사이, 그리고 대각암이나 소장군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도 만날 수 있는 반면 편백 숲을 보려면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 하지만 걸음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단언한다. 많은 이가 선암굴목치를 넘어 송광사를 가는 것도 편백 숲의 아름다움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숲인들 계절에 따른 독특한 아름다움이 없으랴만 온 산이 회색으로 황량한 계절에 만나는 푸르고 푸른 편백 숲은 우리에게 색다른 정취를 안긴다. 편백 숲의 또 다른 정취는 5~6월에 더 확실하게 즐길 수 있다. 이때 나무들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기에 숨구멍을 활짝 열고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한껏 흡수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만큼 산소를 내뿜는 것은 광합성의 당연한 이치다. 이때 산소만 내뿜는 것이 아니고 편백의 고유 향기도 내뿜는다. 이름하여 편백 고유의 테르펜(terpene) 향기다. 편백이 내뿜는 독특한 향기를 체험하기 위해 일본행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선암사 편백 숲은 꼭 한번 찾아볼 만한 숲이다. 국내 유명 온천장들이 편백나무 원목으로 탕을 마련해둔 이유도 마찬가지다. 편백나무는 일본어로 히노키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檜’라고 표기한다.

    봄을 부르는 선암사 고매(古梅)
    全 瑛 宇

    1951년 경남 마산 출생

    고려대 임학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석사, 박사

    現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저서: ‘숲과 한국문화’ ‘나무와 숲이 있었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숲 보기 읽기 담기’ ‘한국의 명품 소나무’ 외 다수


    여느 절집과 마찬가지로 선암사의 절집 숲도 사계절이 다 좋다. 산문(山門)에서 승선교를 거쳐 절집에 이르는 숲길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긴다. 봄철의 신록, 여름철 계류와 녹음, 가을철 단풍, 겨울철 야생차밭이 만드는 녹색의 세상은 별천지가 따로 없다.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원통전 뒤편과 무우전 돌담길의 매화와 별개로 절집 곳곳의 화목들이 꽃을 피우는 4,5월은 또 다른 풍광을 선사한다. 선암사를 우리 전통 조경의 보고라고 상찬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때다.

    철 따라 바뀌는 절집의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에 담는 일은 단순하다. 가는 길을 멈추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자연을 찬미할 줄 아는 감성만 있으면 된다. 봄을 부르는 손짓, 매화가 기다리는 절집으로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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