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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드라마 ‘추노’의 정치학

권력은 정의롭지 못하고, 정의는 권력을 잡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분투

  • 위근우│ 기자 eight@10asia.co.kr│

드라마 ‘추노’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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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영 내내 3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사극 ‘추노’가 최근 막을 내렸다. 몰락한 양반 출신 추노꾼 대길과 도망 노비가 된 무사 태하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 계급 갈등을 정면으로 다룬 이 드라마는 화려한 영상미,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결코 가볍지 않은 정치적 함의로도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추노’의 정치학
“저태양은 우리 거야. 우리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높이 솟은 태양을 보며 도망 노비 초복은 역시 도망 노비인 은실에게 말한다. KBS 드라마 ‘추노’의 마지막 장면이다. 초복의 말은 이 작품의 플롯을, 그리고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비록 추노꾼 대길(장혁)과 전직 엘리트 무관이자 도망 노비인 송태하(오지호)의 추격전이 전면에 깔리지만 사실 ‘추노’는 쫓고 쫓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저 태양을 가져본 적 없는 자들과 그것을 가지고 있고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자들의 투쟁을 그린 작품에 가깝다.

태양은 행복이나 자유로운 삶과 같은 어떤 보편적 가치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권력이다. 영화적인 영상과 야마카시(맨손으로 건물이나 다리, 벽 등을 오르거나 뛰어넘는 행동)가 녹아 있는 액션 장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늦은 것’이라는 현대의 유행어 등 수많은 요소가 섞인 하이브리드적인 작품임에도 ‘추노’가 정치 사극인 건 이 때문이다.

물론 거의 모든 사극의 주인공들은 권력을 추구한다. 멀게는 ‘조선왕조 오백년’의 왕족들이 그러했고, 가까이는 ‘태조 왕건’ ‘대조영’ 같은 건국 사극의 주인공과 그 라이벌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 다툼이라는 것은 누가 주인이 되는지에 집중될 뿐이다. 그에 따른 정치 시스템의 변화는 추구되지 않는다. 가령 ‘태조 왕건’에서 궁예와 왕건은 후삼국의 패권을 잡기 위해 다툰다. 절대 왕권 왕좌에 어느 영웅이 올라갈 것인지에 대한 싸움이다. 하지만 ‘추노’의 그것은 다르다. 노비가, 전직 엘리트 무관이, 은둔 선비가 권력을 추구할 때 그것은 개인적인 다툼인 동시에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을 의미한다. 여기서부터는 누가 더 영웅다운지가 아닌, 누구의 정치적 의견이 더 옳은지, 또한 그 의견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현재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위해 순순히 자리를 내놓을 것인지에 대한 복잡한 질문이 따라온다.

정치 시스템의 변화

‘추노’의 시대적 배경이 인조 재위 시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시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조선 히어로물 ‘최강칠우’의 대본을 쓴 박상연 작가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난세’를 찾았다. 그런데 조선의 난세라면 더 볼 것도 없이 인조 시대가 1위였다. 병자호란 이후 나라가 정말 개판이더라”고 말한 바 있다. ‘최강칠우’와 같이 2008년에 방송된 또 다른 히어로물 ‘일지매’ 역시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양반들의 횡포와 법과 제도의 붕괴 때문에 괴로워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시대상으로 담았다. 광해군의 외교 노선에 반대해 청과 대립했다가 병자호란을 겪은 난세 중의 난세, 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영웅이 필요한 시대. 흥미로운 건 탐관오리가 부당하게 취한 재물을 빼앗아 백성에게 나눠주는 일지매나,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의뢰인을 위해 악인을 암살하는 칠우 모두 처음에는 제 구실을 못하는 공권력을 보완하는 일종의 자경단이었다가 점점 왕권을 위협하는 혁명가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이다.

본래 자경단은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시대의 영웅이다. 인조 시대는 무능하고 도덕적 결함을 지닌 왕에게 권력이 집중돼 혼란스러운 시대다. 대길이 같은 노비 사냥꾼이 등장할 수 있는 건 노비를 관리해야 할 공권력이 무너져서이고, 태하가 소현세자의 아들(석견)을 찾아 옹립하려는 건 이 난세가 왕의 무능 탓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초반, 쫓고 쫓기는 두 인물은 한 시대가 낳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들이자 난세를 견뎌내는 방식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이다. 순리대로 살며 허물어진 국가 시스템을 순간순간 보수해야 하는가, 커다란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을 성군을 앉혀야 하는가.

여기에 노비당의 업복이(공형진)는 또 하나의, 더 전복적인 질문을 추가한다. 폭군 때문에 혼란스러운 시대라면, 폭군이 군림할 수 있는 왕권 시스템 자체를 뜯어고치고 낮은 곳에 임한 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들이 가진 욕망과 지향점 안에 현재의 정권하에 사는 수많은 ‘우리’를 투영시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사극으로서의 ‘추노’는 현재를 비추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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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기자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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