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조윤범의 클래식으로 세상읽기 ⑨

황당하고 재미있는 고(古)음악 이야기

  •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황당하고 재미있는 고(古)음악 이야기

1/3
  • 클래식 애호가들 중엔 유독 고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태어나기도 전, 중세시대를 거쳐 르네상스시대와 초기 바로크시대 음악을 말한다. 혹자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교회음악’으로 치부하지만, 실상 원초적이어서 쉽고, 혁신적이어서 듣는 이를 흥분시킨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멜로디를 악보에 담아냈던 옛날옛날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황당하고  재미있는 고(古)음악  이야기
서기 590년, 그레고리우스 1세가 교황으로 즉위한다. 세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음악을 아주 좋아하고, 신을 찬양하는 가장 위대한 방법이 음악이라고 여기며 수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온 단편적인 음악들을 악보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이미 종교의식에서 사용되던 것도 있고, 또 그만한 가치를 지닌 세속음악도 있었다. 그는 이 악보들을 다시 정리하고 교회예식에 사용될 수 있도록 집대성했다.

훗날 13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이 미사나 그 밖의 종교의식에 쓰이는 음악들을 누가 정리했는지 밝혀내다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업적이라고 결론짓고, 그 음악들에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교황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10세기 이후의 수도사들이 6세기 이후의 음악을 정리해온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레고리안 성가’라고 부른다. ‘여러 수도사의 성가’보다는 더 ‘있어’ 보이니까.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징은 선율이 하나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부르거나 여러 사람이 부르거나 하나의 멜로디를 노래하는 ‘단선율’이다. 1980년대까지 스피커 한쪽으로만 나오는 소리를 ‘모노’라고 했는데, 단선율은 ‘모노포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모노포니에 선율 여러 개가 겹쳐 다성 음악, 즉 ‘폴리포니’ 시대가 열렸다.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1300~1377)는 당시 신음악운동이었던 ‘아르스 노바’를 이끈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시인이자 작곡가였는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 것은 흔한 일 같다. 굳이 우리가 존경하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중세시대의 예술가들은 일명 ‘음유시인’이라고 하여 작사와 작곡을 겸했을 뿐 아니라 노래와 연주까지 직접 소화해냈다. 어찌 보면 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표현능력을 갖고 있는데, 현대에 올수록 그것을 전문화하다보니 숨겨진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밀린 월급 좀 주세요”

아무튼 기욤 드 마쇼는 재능이 많은 음유시인이었다. 그는 ‘모테트’라고 불리는 곡들을 주로 만들었는데, 그레고리안 성가의 수많은 멜로디 중 하나를 기본 멜로디로 하면서 거기에 여러 개의 다른 선율이 추가된 형태다. 이런 음악은 교회 미사에서 기도와 기도 사이에 짧게 불렸다. 마쇼는 미사의 전체 구성을 감안해 음악을 만든 최초의 작곡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미사’ 같은 음악을 들으면 성당의 웅장한 건축물이 연상될 것이다. 마쇼는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 배우는 당김음, 즉 리듬의 강약 위치를 변화시키는 리듬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중음악은 곡 전체에 걸쳐 당김음을 사용하고 있다. 듣기에 좋고 부르기 편하지만 악보로 옮기면 복잡해지는 당김음의 원조가 바로 마쇼다.

당시 음유시인 중 상당수가 플랑드르지방 출신이었다. 플랑드르는 지리적으로 벨기에에 속하지만, 넓게 네덜란드와 프랑스까지 포함해 플랑드르악파라고 한다. 르네상스시대에 플랑드르악파 출신의 천재가 있었다.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s·1440~1521)는 프랑스 출신이다. 하지만 어떤 악파라도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는 음악의 본고장 이탈리아를 한번쯤 가봐야 했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합창단원을 지내고 최고의 보수를 받는 궁정음악가가 되어 귀족과 교회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보통 음악이 아니었다. 그의 미사음악 중에 ‘라솔파레미’라는 작품이 있다. 당시에도 곡명에 계이름을 그대로 붙이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음악을 들어보면 선율이 ‘라솔파레미’ 음계에 맞춰 진행된다. 가사가 있는데도 왜 음계를 제목으로 했을까? 이 곡의 음계는 원래 ‘Lascia fare a me’ 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말뜻은 “밀린 월급 좀 주세요”다. 그 어감과 비슷한 음계를 골라 곡에 사용한 것이다. ‘팡게 링구아 미사’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는데, ‘혀로 말하다’라는 의미다. 고음악에선 말과 음악의 관계가 꽤 밀접했다. ‘올라간다’라는 가사에선 음계도 올라가고, ‘땅으로 평화가 퍼진다’ 같은 가사에서는 음이 내려가는 걸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종교와 음악

프랑스 음악의 대두에 충격을 받은 영국도 위대한 작곡가를 내놓기 시작했다. 토머스 탈리스(Thomas Tallis·1505~1585)는 영국의 수도원에서 활동한 작곡가다. 토머스 탈리스는 훗날 본 윌리엄스라는 20세기 작곡가에 의해 본격적으로 알려진다. 역시 영국 작곡가인 본 윌리엄스는 르네상스시대 선배인 탈리스가 만든 성가의 멜로디를 사용해 멋진 현악오케스트라용 작품을 완성했다. ‘토머스 탈리스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다. 이 곡은 러셀 크로가 주연한 항해영화 ‘마스터 앤 커맨더’의 주제곡으로 사용될 만큼 웅장하다. 토머스 탈리스는 영국이 종교개혁으로 혼란을 겪을 때 활동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집권하면서 개신교를 국교화하려고 했고, 구교와 신교의 대립으로 숙청과 화형이 난무한 시대다. 토머스 탈리스는 이런 변화의 시대에 잘 적응했다. 가톨릭을 위한 라틴어 노래와 개신교를 위한 영어 노래를 모두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인 ‘스팸 인 알리움’은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무려 40개나 합쳐지는 놀라운 곡이다.
1/3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목록 닫기

황당하고 재미있는 고(古)음악 이야기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